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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할의 메시지
가을이 깊어가면서 하늘은 더 파래지고 높아만 가며, 드문드문 떠가는 구름 마저 덩달아 높이 더 높이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무더운 계절을 지나오느라 잠시 밀쳐두었던 사색과 사유도 다시 끌어당기게 하는 ‘가을’이라는 계절에는.
가을을 나타내는 별칭도 많죠.
높고 파란 하늘을 보노라니 맑고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말도 살이 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는 표현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며 말(馬)과 관련된 사자성어 하나가 떠오릅니다.
‘주마가편(走馬加鞭)’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더한다는 뜻이지요.
이미 달리고 있는 말을 향해 더 빨리 달리라고 채찍을 가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지금은 모두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삼남매가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엄마인 저는 아이들에게 기회만 되면 무언가를 원하고 요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받아쓰기 시험지를 갖고 왔을 때 백점이 아니면 맞춘 문제보다 틀린 문제가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의 과정을 마치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더 높은 점수, 더 나은 성적을 기대하고 주문하면서 나름 열심히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좀 더 잘하라고, 좀 더 분발하라고 다그쳤습니다.
힘을 다해 달리고 있던 말에 자꾸만 채찍을 가했던 것이죠.
남편이 청소기를 돌려주면 걸레질까지 해주길 바라고, 건조기 안의 빨래도 꺼내서 정리해주길 바랍니다. 한 가지를 도와주면 다른 것도 슬쩍 내밀며 만족하며 멈추어야 하는 지점을 자주자주 통과합니다.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이 생각납니다. 술을 줄이는 잔이라 하여 절주배(節酒杯)라고도 불린다지요. 고대 중국에서 하늘에 정성을 드리며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의식용 그릇에서 유래되었다는 그 잔은 잔의 7할이 넘으면 잔이 쓰러지거나 잔 밑바닥에 나 있는 구멍으로 흘러내려 결국은 빈 잔이 되어버리고 만다고 합니다.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하고 과한 것을 조심하라는 선현들의 가르침이 담겨있는 그 잔이 만들어진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계영배를 가까이 두고 스스로 과욕(過慾)을 절제하고 경계하였다고 합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소욕지족(少欲知足)….
예로부터 욕심을 조심하고 절제하라는 성현들의 고언이 많습니다. 살면서 욕심부리는 것을 조절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뜻이겠지요.
주어진 7할은 당연시하며 소유하지 못한 3할에 대해 결핍감을 느끼면서 시비하고 질투하느라 스스로 고(苦)의 지수를 올려댔습니다.
좀 더 힘을 내서 더 빨리 달리자고 더 멀리 달리자고 앞만 보며 달리는 동안 무얼 놓치고 왔는지, 무얼 두고 왔는지 돌아봅니다. 되돌아가 가져올 수도 없습니다. 채찍질을 해대는 동안 저 자신도 말도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고(苦)가 탐진치(貪瞋痴)에서 비롯된다고 괴로움의 원인을 명백하게 밝혀주셨습니다. 그 셋 중에서 탐(貪)이 첫 번째로 언급되는 것은 고통이 시작되는 근원이 탐(貪)이라는 준엄한 가르침이 아닐런지요.
오래 전 어느 법회에서 들었던 스님의 법문이 떠오릅니다.
‘기도는 없는 것을 불평하며 구하고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 감사하는 것’이라는…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새파란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노라니 7할이 아니라 6할이어도, 5할이어도 아니 3할이어도 만족하며, 다만 주어진 1할에도 감사하는 기도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가슴 깊이깊이 울려 퍼집니다.
김문주 (혜명심, 신도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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