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한참이나 껄껄대며 웃으셨다.
남편과 아내의 대화가 무척 마음에 드셨나 보다.
“나이가 들면 사랑스러운 애인보다는 허물없는 친구가 낫지요. 두 분은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군요.”
아내도 부처님을 따라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남편은 심각했다. 그런 남편의 표정이 신경 쓰였는지, 아내가 팔꿈치로 남편을 툭 쳤다.
“뭔 심각한 일이 있다고 그렇게 인상을 써요? 당신도 참.”
남편이 굳은 얼굴을 펴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부처님.”
부처님은 딱 개구쟁이 표정이었다.
“왜요? 또 뭐가 문제입니까?”
“두 분은 서로 뭔가 통하는 것 같은데… 저는 솔직히 확연하질 않습니다.”
부처님이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맞받았다.
“모르면 모르는 거지. 그게 왜 문제가 됩니까?”
남편의 목소리에 살짝 날이 섰다.
“두 분은 알고, 저만 모르지 않습니까? 친구는 무슨 친구입니까? 이젠 부처님에다 한 사람 더해 선생님을 두 분 모셔야 할 판인데요.”
“아, 그래서 쌤통이 났군요. ‘두 사람은 나보다 높고, 나는 두 사람보다 낮다’ 이거지요?”
부처님께서 또 깔깔대며 웃으셨다.
“여태 거사님 성함도 물어보질 않았군요. 거사님의 성함은 무엇입니까?”
“저는 성재헌입니다.”
“거사님의 아내 분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제 아내요? 이진옥입니다.”
“자, 그럼 또 묻겠습니다. 성재헌은 이진옥보다 높습니까, 낮습니까? 성재헌은 이진옥보다 지혜롭습니까, 어리석습니까?”
“그게….”
부처님께서 틈을 주지 않고 다그치셨다.
“지금 기분이 어떻습니까?”
남편이 고개를 돌렸다.
“사실, 좋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지 않은 그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남편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저도 아내처럼 뭔가 깨달아야겠지요.”
“성재헌이 이진옥보다 나아야 속이 시원하겠다 이거지요?”
“누가 나아야겠다고 했습니까? 똑같이 깨닫고 싶다고 했지요?”
“좋습니다. 그럼 똑같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지금 이렇게 답답한 것 아닙니까?”
남편의 대답엔 신경질이 잔뜩 묻어있었다. 부처님의 추궁이 남편에겐 놀림으로 느껴졌나 보다. 부처님께서 어린 손자를 다독이듯 따뜻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거사님, 흥분을 가라앉히세요. 저는 거사님을 놀리는 것도 아니고, 꾸짖는 것도 아닙니다. 제 이야기를 무조건 믿고 따르라는 것도 아니고, 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저를 인정하고 존경해 주길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횡설수설 온갖 이야기를 늘어놓은 까닭은 단 하나입니다. 혹시라도 거사님의 보다 경쾌한 삶에 보탬이 될까 싶어서입니다.”
남편이 머쓱했는지 빈 찻잔을 들고 훌쩍거리는 시늉을 했다.
“부처님 마음이야 제가 모를 리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 방에 몇 사람이나 있습니까?”
남편이 한결 수그러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처님과 아내와 저, 세 사람이요.”
부처님께서 남편을 불렀다.
“거사님!”
“네.”
“누가 대답했습니까?”
“제가요.”
“그 ‘저’가 누구입니까?”
“성재헌이지요.”
부처님께서 또렷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거사님, 성재헌으로 살지 말고, 텅 빈 거울로 사세요. 그러면 삶이 훨씬 수월하답니다.”
남편의 눈빛이 반짝였다. 부처님께서 말씀을 이어가셨다.
“거사님,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이야기에 주의력을 기울여 주세요. 지금 이 순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부처’와 ‘성재헌’과 ‘이진옥’이라는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부처와 성재헌과 이진옥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성재헌은 이진옥보다 못하다’는 생각, ‘그래서 불쾌하다’는 기분, 그런 생각과 느낌 역시 ‘성재헌’이라는 독립된 실체가 있어 그것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사실은 텅 빈 거울에 비친 그림자처럼 인연 따라 일어난 현상일 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많은 시간 공들여 긴 이야기를 나누었고, 거사님께서도 동의하셨습니다. 인정하십니까?”
남편이 갑자기 허벅지를 쳤다.
“아, 알겠습니다.”
“조금 전에는 ‘나만 모른다’고 짜증을 부르고, ‘나도 알아야겠다’고 생떼를 부리더니, 지금 도대체 무엇을 알았다는 것입니까?”
남편이 대답했다.
“바로 그것을 알았습니다. 모르는 것이 ‘나’이고, 알고 싶은 것이 ‘나’이고, 그래서 답답한 것도 ‘나’이고, 통쾌하고 싶은 것도 ‘나’라고 여겼는데…”
“그런데요?”
“그것이 몽땅 거울에 비친 그림자처럼 인연 따라 끝없이 변화하는 생각일 뿐이고, 느낌일 뿐이었네요.”
부처님께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남편에게 되물으셨다.
“생각과 느낌이 몽땅 거울에 비친 그림자와 같다면, 그 거울은 도대체 뭡니까?”
남편이 싱긋이 웃었다.
“이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앞서 부처님께서 이를 두고 ‘원만한 깨달음’이라 하셨지만, 이름이란 생각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생각이 이미 그림자이니, 이름은 그림자가 낳은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를 실체로 안 탓에 ‘깨닫지 못했다’고 짜증을 부리고, ‘깨달아야겠다’고 생떼를 쓰는 바보짓을 했는데, 이제 또 ‘깨달았다’고 유난을 떨고, 그것도 ‘내가’라며 우스꽝스러운 잘난 체까지 해야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럼 ‘어떤 이름도 붙일 수 없는 무엇’이라고 하면 될까요?”
남편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혹시라도 사람들이 ‘이름 붙여진 것’과 전혀 다른 무엇이 따로 있는 것으로 여길까 염려스럽군요.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거울은 존재하지도 않고, 그런 거울이 존재한다면 그건 온전한 거울이라 할 수도 없지요?”
“그럼, 그 거울에 이름을 한번 붙여보세요.”
부처님께서 목소리를 높여 남편을 불렀다.
“거사님.”
“네.”
“누가 대답했습니까?”
“성재헌이라고 해도 괜찮고, 이진옥이라 해도 괜찮고, 부처님이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부처님께서 손뼉을 치며 환하게 웃으셨다.
“그렇습니다. 성재헌이 본래 그렇고, 이진옥이 본래 그렇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