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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이미령의 본생경 이야기

이미령의 본생경 이야기

  • 입력 2022.01.01

화관을 얻으려던 사제 이야기 

 

 

갠지스 강변 바라나시에 아주 성대한 축제가 열렸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도시는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흥겨운 음악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환호성이 파도처럼 도시의 이곳저곳을 휩쓸었습니다. 축제 분위기가 하늘에까지 미쳤는지, 하늘의 신들도 구경하러 내려왔지요. 도리천에 살고 있는 네 명의 신이 하늘하늘 내려왔습니다.

신들은 모두 도리천에만 피는 칵카루 꽃으로 만든 화관을 머리에 쓰고 있었는데 그 향기가 여간하지 않았습니다. 도시 전체에 꽃향기가 퍼졌고 축제 분위기에 휩쓸려 웃고 떠들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그윽한 꽃향기에 휘감겼습니다.

“대체 이 꽃향기는 어디서 나는 거지? 난 지금까지 이렇게 향긋한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어.”

“정말 그래. 향긋하기 이를 데 없는데 독하지도 않아. 달콤하지만 상큼하고, 그러면서도 향기가 우아하네. 대체 누가 이런 꽃향기를 풍기는 걸까?”

“분명 누군가가 화관을 쓰고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나 향기로울 수가 있을까.”

사람들은 코를 킁킁거리며 꽃향기의 소재를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하늘의 신은 사람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들이 말했지요.

“사람들이 우리를 찾고 있다. 이제 모습을 드러내볼까?”

신들은 왕궁으로 날아갔고 왕궁의 정원 한 가운데 허공에 두둥실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러자 왕과 귀족들, 대신들이 모두 몰려나와 이 장관을 보고 감탄하며 물었습니다.

“그대들은 어느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우리는 도리천에서 이곳 바라나시의 축제를 즐기러 내려왔습니다.”

왕이 꽃향기에 반해서 신들에게 청했습니다.

“신이시여, 지금 머리에 쓰고 계신 그 화관을 제게 주실 수 없습니까? 하늘에는 또 다른 아름다운 꽃들이 많이 피어 있을 테니까 그 꽃으로 새로 화관을 만들어 쓰시지요. 참으로 아름답고 향기로운 화관입니다. 제게 주십시오.”

체면을 무릅쓰고 왕이 신들에게 하늘의 꽃 칵카루로 만든 화관을 달라고 애원했지요. 그런데 신들은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이것은 천상의 신들이나 머리에 쓸 수 있는 꽃입니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불에 타고 있는 세속 사람들이 이 화관을 머리에 썼다가는 곤욕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들 중에서도 천상의 신과도 같은 자질을 갖춘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이 화관을 써도 괜찮습니다.”

신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첫 번째 신이 거듭 노래로 화관을 소개했습니다.

 

남의 것을 함부로 가져가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영예를 얻어도 그에 취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칵카루 화관이 어울립니다.

 

이 노래를 듣자 궁중의 모든 사람들이 조용해졌습니다. 스스로를 돌이켜보니 도저히 이 꽃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제 한 사람은 달랐습니다.

‘쳇, 뭐야?! 저런 자질을 다 갖춘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자기가 그런 자질을 갖췄다고 나서는 이가 하나도 없잖아. 에라, 모르겠다. 일단 저 화관부터 챙기고 보자. 저 향기로운 화관을 쓰면 사람들이 나를 훌륭한 사람이라 여기고 섬기겠지.’

사제는 불쑥 앞으로 나가서 첫 번째 신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제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니 신의 머리에 있는 그 화관을 저는 쓸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자 첫 번째 신은 머리에서 칵카루 화관을 벗어 사제에게 주었습니다. 사제는 곧이어 두 번째 신에게도 손을 내밀어 화관을 달라고 청했습니다. 두 번째 신이 노래했지요.

 

정당하게 부를 구하고

거짓으로 재물을 취하지 않으며

재산을 얻고도 그에 탐닉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칵카루 화관이 어울립니다.

 

노래가 끝나기 무섭게 사제가 말했습니다.

“바로 접니다.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니 화관을 제게 주십시오.”

두 번째 신도 조용히 머리에서 화관을 벗어 사제에게 주고 물러났습니다. 모두가 숨죽이고 바라보는 가운데 사제는 하늘의 신에게나 어울리는 화관을 아무런 장애 없이 두 개나 가졌지요. 그는 이왕이면 다 갖겠다는 생각에 세 번째 신에게도 손을 내밀었습니다. 세 번째 신이 노래했습니다.

 

그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고

믿음이 퇴색하지 않고

이익을 독차지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칵카루 꽃이 어울립니다.


“제게 화관을 주십시오. 바로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사제는 세 번째 신에게서 화관을 챙겨들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신에게도 손을 내밀자 네 번째 신이 노래했습니다.


상대방 앞에서나 뒤에서나

선량한 사람을 비난하지 않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라면

이 칵카루 꽃이 어울립니다.

 

“제가 바로 그런 자질을 갖춘 사람입니다. 그 화관도 제게 주십시오.”

사제가 이렇게 말하자 네 번째 신도 자기 머리의 화관을 벗어 그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온 도시 사람들을 황홀하게 만들었던 향기로운 화관이 전부 사제 한 사람에게 건네졌고, 네 명의 신들은 조용히 도리천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신들이 떠나간 뒤 갑자기 사제가 화관을 쓴 제 머리를 감싸 쥐고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악, 머리야. 머리가 아파서 견딜 수 없어. 왜 갑자기 두통이 생기는 거지?”

누군가 날카로운 칼로 머리를 저미기라도 하는 듯 사제는 머리를 감싸 쥐고 연신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는 온힘을 다해 화관을 벗으려고 했지만 아름답고 향기로운 화관은 머리를 옭죄는 쇠고리가 되어버린 듯 벗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길로 궁을 빠져나가 사방을 헤매며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반미치광이가 되어 몸부림을 쳐대는 사제를 보고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사제는 소리쳤습니다.

“내게 그런 자질이 없었는데도 화관이 탐나서 거짓말을 했지요. 아마 그 벌을 받나 봅니다. 제발 이 화관을 좀 벗겨주시오, 제발 좀!”

사람들이 들러붙어서 벗겨내려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극심한 두통을 못 이겨 몸부림치는 사제를 집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그저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사제는 7일이나 지독한 두통에 시달렸고, 급기야 왕이 나섰지요.

“저 사제를 도울 방법이 없겠소? 어서 경들은 대책을 세워보시오.”

대신 한 사람이 나서서 제안했습니다.

“폐하. 다시 한 번 대대적인 축제를 열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하늘의 신들이 구경하러 내려올 것이고, 그때 저 사제를 보여주고서 도와달라고 청하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라나시에서는 다시 한 번 축제가 열렸고, 앞서 도리천의 신 네 명도 축제를 구경하러 천상에서 내려와서 왕궁 정원의 허공에 머물렀습니다. 신하들이 서둘러 지독한 두통에 시달리는 사제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사제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애원했지요.

“신들이시여. 제발 저를 살려주십시오.”

그러자 신들이 말했습니다.

“그대처럼 그릇된 성품을 지닌 자에게 하늘의 화관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알고서 미리 경고했는데 그대는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화관을 챙겼습니다. 우리를 그럴듯하게 속여 넘겨서 좋았습니까? 하지만 정작 거짓말의 과보는 고스란히 그대를 찾아왔습니다.”

신들은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사제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의 머리에서 화관을 벗겨낸 뒤에 도리천으로 올라갔습니다. 가장 나이 많은 첫 번째 신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이요, 나머지 신들은 각각 가섭, 목건련, 사리불의 전생이고, 거짓말을 했다가 호되게 봉변을 당한 사제는 데바닷타의 전생이라고 본생경은 끝을 맺습니다.(본생경 326번째 이야기)  

 

데바닷타는 불교역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악인이지요. 대중의 존경과 공양을 받고자 깨달음을 얻었다고 거짓말을 한 바람에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전생에도 거짓말을 해서 괴로움을 자초했네요. 어찌되었거나 사제 머리에서 화관이 벗겨졌으니 천만다행입니다. 

도리천 신들이 노래한 네 개의 게송은 천상의 신이라 해도 좋을 아름다운 인간이 갖추는 품격을 일러줍니다. 몸과 입과 뜻으로 악업을 짓지 않고 설령 자기가 남보다 우월해도 교만하지 않으며 다른 이의 행복을 함께 추구하는 사람은 천상의 신과 다르지 않으니, 탐진치 삼독에 휘말려 살아가는 세속의 보통 사람은 절대로 이겨내지 못할 하늘의 꽃도 아주 멋지게 소화해서 탈이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거짓말을 하는 사제를 보시지요. 분명 신들은 그 사제의 거짓말을 알고 있었을 텐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에게 화관을 넘겨준 장면이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굳이 신들이 “이 사람이 우리를 속였으니 천벌을 내리겠다”라고 하지 않아도 거짓말의 대가는 그 행위자를 찾아온다는 것이지요. 착한 일하면 부처님이 상을 주고, 나쁜 일하면 염라대왕이 벌을 준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있을까요? 상벌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가 무르익으면 당연히 저절로 찾아온다는 사실을 도리천의 신들이 일러줍니다. 온 세상 사람들을 다 속이고, 하늘의 신들까지 속일 수 있을지라도 딱 한 가지 속일 수 없는 것은 바로 선업이건 악업이건 업을 지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자업자득인 것이지요. 

우리는 이따금 ‘뭐 어때, 누가 알겠어?’라며 그릇된 일을 하거나 대충 덮어놓고는 어물쩍 넘어가려 합니다. 하지만 업보는 정확하게 찾아오니 아무리 세상 유혹이 커도 “아닌 건 아닌 것”이라고 금을 긋고 절제할 줄은 알아야겠습니다. 

 

 

이미령 (경전 이야기꾼, 불교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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