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코로나 팬데믹 속에 맞이하는 세 번째 해가 밝았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임인년 새해에는 용맹한 호랑이가 나타나 세상에 드리운 재앙을 물리치고 국태민안을 이룩해 주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팬데믹을 물리칠 호랑이를 기다리며
태양을 중심으로 보면 1월은 새해의 첫 달이지만 달을 중심으로 보면 1월은 여전히 해가 바뀌지 않은 섣달이다. 1년 중 해가 가장 짧은 날인 동지는 12월에 들어있지만 달을 기준으로 볼 때 가장 춥고 음기가 강한 달은 섣달이다. 그럼에도 불자에게 섣달은 특별하다. 한 해를 시작하는 달이기 때문이 아니라 성도광명절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불자에게 이 날은 깨달음의 빛으로 새로운 한 해를 여는 순간이다.
일조량이 줄어들면 날이 어두워지고, 한파가 닥쳐오듯이 우리의 마음도 빛이 없으면 내면이 어둡고 추워진다. 그렇게 마음을 어둡고 춥게 만드는 것은 빛이 없는 ‘무명(無明)’ 때문이다. 부처님은 바로 그 무명이 모든 고(苦)의 근원이라고 하셨다. 무명이 뿌리가 되어 늙음과 죽음[老死], 근심과 슬픔[憂悲], 고통과 번뇌[苦惱] 같은 삶의 고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겨울의 추위를 녹여주는 것이 따사로운 봄볕이듯 무명이라는 내면의 어둠과 추위를 없애주는 것도 빛이다. 참다운 진리에 대한 깨달음의 빛은 내 속의 어둠을 밝히고,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고, 삶을 지탱하는 에너지가 된다. 불자에게 그 깨달음의 빛은 원대한 부처님의 깨달음으로부터 시작한다. 부처님은 부다가야에서 모든 마군들을 항복받고 위대한 깨달음을 성취하시니 그날이 바로 음력 12월 8일 성도광명절이다.
§어둠을 제압하는 성도(成道)의 빛
성도광명절은 인간 고타마 싯달타의 삶에서 성자 고타마 붓다의 삶으로 전환되는 날이다. 싯달타 태자는 생로병사라는 인간의 한계상황을 목도하고 그 근원적 고를 해결하고자 출가했다. 6년에 걸친 지난한 수행은 성도광명절 새벽에 얻은 깨달음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여러 스승을 찾아 가르침을 받던 사문 고타마는 스승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배움이 더 이상 없음을 깨닫는다. 그 길로 수많은 고행자들이 수행하던 고행림(苦行林)으로 들어가 피골이 상접하도록 극심한 고행을 했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그 때 사문 고타마는 고행이 깨달음을 여는 문이 아님을 깨닫고 가야산을 내려와 네란자라 강변에서 고행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깨끗이 씻는다. 그리고 우루벨라 마을로 들어가 수자타로부터 우유죽 공양을 받고 기력을 회복한다.
원기를 회복한 사문 고타마는 최후의 결전장으로 향하는 장수처럼 마음을 굳건히 다지고, 사자와 같이 당당한 자세로 황소처럼 굳건한 걸음으로 핍팔라 나무 밑으로 갔다. 그리고 목동 솟티야에게 꾸사풀(吉祥)을 얻어 보리수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동쪽을 향해 정좌했다.
사문 고타마가 최후의 결전을 다짐하고 보리수 아래에 정좌하자 욕계를 지배하던 마왕(魔王) 파순의 궁전이 크게 흔들렸다. 놀란 마왕은 “고오타마는 법의 갑옷을 입고, 욕망을 제압할 활을 들고, 지혜의 화살로 중생을 항복시키며 나의 경계를 무너뜨리려 한다.”며 불안에 떨었다. 파순은 고타마의 수행을 막기 위해 세 딸을 보내 유혹하게 했다. 하지만 고타마는 “칼날에 발린 꿀은 혀를 다치게 하고, 오욕은 뱀의 머리와 같아 쾌락에 빠지는 것은 불구덩이에 들어감과 같다.”고 꾸짖으며 그녀들의 유혹에 현혹되지 않았다.
그러자 마왕은 18억 마군의 무리들을 대동하고 다시 나타났다. 그들은 흉측한 악마와 추악한 괴물의 형상을 하고 온갖 무기를 들고 공격했다. 그 때 고타마는 두려움에 떨지 않고 “열 가지 수행덕목만이 나의 힘센 군대이며, 몸을 지키는 보검이며, 견고한 방패”라고 생각하고 십바라밀 수행으로 마군들과 맞서서 그들을 물리쳤다.
갖은 유혹과 공격에도 고타마가 무너지지 않자 파순은 전략을 바꾸었다. 전륜성왕이 되어 온 세상을 차지하라고 꾀고, 그것도 부족하면 제6천의 하늘세계를 모두 주겠다고 유혹했다. 그러나 바위처럼 굳건한 고타마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마왕은 깨달음의 성취는 금생의 수행만으로 불가하며, 아득한 세월에 걸친 공덕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 고타마는 대지를 가리키며 공덕의 증인이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자 땅이 여섯 갈레로 진동하더니 대지의 신이 나타나 “나라와 성이며 권속과 재산을 헤아릴 수 없이 보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머리와 눈과 골수며 팔다리조차도 보시하였다. 그 피가 지금도 대지에 침윤되어 있다.”며 억겁에 걸친 고타마의 공덕을 생생히 증언했다. 인간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대지의 생생한 증언을 듣고 마침내 마왕은 물러가고 온 천하가 고요해졌다.
사문 고타마는 깊은 선정에 들어 네 가지 선정[四禪]과 여섯 가지 신통을 차례대로 성취하고 동쪽하늘에서 반짝이는 새벽 별을 보고 마침내 ‘무상정등정각’으로 불리는 위대한 깨달음을 성취했다. 사문 고오타마는 “일체의 마군을 항복받고, 삼독의 독한 가시를 빼내고, 승리의 깃발을 높이 올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자의 포효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이제 어둠의 세계는 타파되었다!”고 선언했다. 억겁에 걸친 어둠은 사라지고 찬란한 깨달음의 광명으로 가득한 여래의 세계를 선포하니 사문 고타마는 고타마 붓다, 즉 고타마족 신의 성자 부처님이 되셨다.
§성도절의 의례와 십바라밀 돌기
불교는 바로 이 날 밤 붓다의 위대한 성도로부터 시작된 종교이다. 룸비니 동산의 탄생이 인간 고타마 싯달타의 탄생이라면 부다가야에서의 깨달음은 부처님의 탄생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예로부터 성도재일은 초파일 등과 함께 불교의 사대명절 중 하나가 되었고, 부처님의 깨달음을 기념하는 의례들이 행해졌다.
성도재일을 기념하는 의례는 ‘성도회’라는 이름으로 행해져 왔는데, 이 날은 부처님의 행업을 찬탄하고, 부처님을 따라 수행하는 날이 되었다. 성도재일이 되면 승속을 막론하고 철야정진을 하는데 이를 ‘성도재산림식’이라고 한다. 특히 성도재일은 십바라밀 돌기를 하는데 이는 부처님이 십바라밀의 수행으로 마왕의 군대를 물리쳤기 때문이다. 『본생경』에 따르면 마군이 공격할 때 고타마는 깊은 선정에 들어 십바라밀을 관하여 마군을 물리쳤다.
그밖에도 법계도 돌기, 1천배 정진, 좌선과 염불 등을 하며 부처님이 마왕과 맞서 싸우던 그 시간에 불자들도 뜬 눈으로 철야정진을 이어갔다. 또는 성불도 놀이를 하며 깨달음을 향해 치열하게 수행했던 부처님의 여정을 따라 가기도 했다.
§마왕을 항복받고 승리하는 새해
성도재일의 철야정진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부처님의 정신과 정진력을 내 삶 속에 실현하고자 하는 수행이다. 따라서 불자에게 성도재일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띠고 있다.
첫째, 부단한 정진의 힘을 본받아 실천하는 날이다. 마군을 물리치고 깨달음의 광명을 밝힌 근본은 부단한 정진의 힘이었다. 깨달음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단호한 결단과 지난한 정진의 산물이었다. 부처님과 같은 정진의 힘으로 어둠을 이겨내고 지혜광명의 새날을 여는 것이 성도광명절의 의미이다.
둘째, 마왕을 항복받고 승리를 얻는 순간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보리수 아래서 마왕을 항복받는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으로 표현된다. 그 날 밤 부처님이 물리친 무수한 마왕들은 바로 우리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번뇌와 고통을 상징한다. 십바라밀의 실천을 통해 모든 번뇌를 항복받고 중생의 삶을 여래의 삶으로 전환하는 날이 성도재일이다.
셋째, 깨침을 통한 인식의 전환과 광명의 삶이다. 참다운 지혜를 깨달을 때 새로운 안목이 열리고, 깨달음을 통한 빛으로 내면의 어둠을 밝히는 것이 성도재일이다. 성도재일은 우리도 부처님과 같이 거룩한 깨달음을 얻겠다는 원대한 서원을 세우는 날이다. 그런 서원의 힘이 우리를 거룩한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깨달음의 빛은 에고의 어두운 방에서 벗어나 드넓은 광명의 세계로 우리를 나가게 한다.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가까운 법이다. 성도재일은 깨달음의 빛으로 칠흑 같은 섣달의 어둠을 밝히고 새해를 맞이하는 날이다. 섣달의 혹독한 추위를 넘겨야 새봄이 오고, 번뇌의 어둠이 사라져야 깨달음의 광명이 온다. 온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고통 받고 있다. 하지만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이에 있는 법이다. 우리도 부처님처럼 단호한 결단력과 황소 같은 정진의 힘으로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한 모든 재앙을 물리치고, 마침내 승리하는 찬란한 광명의 새날을 맞이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