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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행운에 관한 이야기
옛날 카시왕국의 바라나시에서 보리살타는 대상(隊商)의 우두머리 집안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가업을 물려받아 대상의 우두머리가 되어 수많은 상인을 거느리고 장사를 하였습니다. 바라나시에는 또 한 사람의 대상 우두머리가 있었는데 그는 어리석고 무능하고 기략을 지니고 있지 못했지요.
어느 날 보리살타 우두머리와 어리석은 우두머리는 각각 바라나시에서 값비싼 물품을 오백 대 수레에 가득 싣고 장사를 하러 떠날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때 보리살타는 생각했습니다.
‘이들과 동시에 길을 나서면 천 대나 되는 짐수레가 같은 길을 가게 된다. 그러면 길도 무너지고 땔감이나 물을 얻기도 어려울 것이다. 차례를 두고 떠나는 편이 낫다. 저 우두머리에게 순서를 정하자고 해야겠다.’
그 어리석은 우두머리는 ‘우리가 먼저 가면 이로운 점이 아주 많다. 일단 길이 무너져 있지 않을 것이요, 소가 먹을 풀도 무성할 것이고, 무리들이 끓여먹을 나물도 지천에 널렸을 것이다. 맑은 물이 있을 것이고, 게다가 먼저 가서 우리 마음대로 물건 값을 매겨서 팔 수도 있다.’고 생각한 뒤에 말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겠소.”
반면 보리살타는 뒤 따라 가는 것이 더 이롭다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출발한 자들이 울퉁불퉁한 길을 평평하게 다듬을 것이니 우리는 저들이 지나간 길을 가면 된다. 앞서 출발한 소가 묵은 잎을 먹어치우면 우리가 몰고 가는 소들은 새롭게 자라난 싱싱하고 여린 풀을 먹을 수 있다. 저들이 묵은 잎을 따서 먹은 뒤에 새로 자라난 싱싱한 풀을 뜯어서 국을 끓여 먹으면 더 좋고, 물이 없는 곳을 지나가면서 저들이 우물을 파놓으면 그곳에서 우리는 쉽게 물을 얻을 수 있다. 장사를 할 때 물건 값을 정하려면 사생결단을 해야 하지만, 우리 상인들은 뒤따라가기 때문에 저들이 정해놓은 그 값으로 장사를 하면 된다. 좋다. 저들이 먼저 출발하게 하자.’
한편, 어리석은 우두머리는 5백 대의 수레와 상인들을 이끌고 출발했습니다. 이윽고 마을을 빠져나가 험하고 외진 곳 언저리에 도착했지요. 그곳은 악귀가 출현하고 물이 없는, 60요자나에 달하는 험지였습니다. 어리석은 우두머리는 커다란 물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 짐수레에 싣고서 험지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험지에는 저들의 목숨을 노리는 야차 무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야차들은 귀족의 모습으로 변장하고서 흰 소가 끄는 화려한 수레에 타고 맞은편에서 다가갔지요. 야차들은 금방이라도 물벼락을 맞은 것처럼 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레에 바퀴는 온통 진흙투성이인데다가 손에는 싱싱한 연꽃을 한 아름씩 들고 있었는데 그들이 야차 무리인 줄 알아차리지 못하고 어리석은 우두머리가 물었습니다.
“지금 당신들이 지나온 길에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까? 연꽃이 가득 핀 연못도 있습니까?”
야차가 대답했습니다.
“저런, 저기 짙푸른 숲이 보이지 않습니까? 저곳에는 숲 전체라 해도 좋을 정도의 커다란 호수가 있습니다. 언제나 비가 내리고, 계곡 틈에서도 물이 흘러나오고, 호수 이곳저곳에는 온갖 빛깔의 연꽃이 가득 피어 있지요. 저 수레에 큼직한 물 항아리는 깨버리시지요. 저 앞에는 물이 아주 많으니까요.”
야차가 이렇게 말하고서 떠나가자 저 어리석은 대상의 우두머리는 이내 상인들에게 명하여서 물항아리를 깨뜨려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전부 쏟아 붓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는 길에는 비와 연못은커녕 물을 한 방울도 만날 수가 없었지요. 물을 마시지 못한 채 종일 달려간 상인들은 굶주림과 목마름에 지쳐 쓰러졌고 깊은 밤에 몰려온 야차 떼에게 고스란히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어리석은 우두머리 한 사람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파멸에 이르렀고, 오백 대 짐수레는 짐을 가득 실은 채로 버려졌습니다.
한편 지혜로운 우두머리인 보리살타는 저들이 출발한 지 한 달 반이 지나서 오백 대 짐수레와 상인들을 거느리고 도성을 출발했습니다. 이윽고 험지 입구에 도착한 보리살타는 물을 가득 채워 넉넉하게 준비시키고서 상인들에게 고했습니다.
“앞으로 내 허락 없이 단 한 방울의 물도 함부로 써서는 안 됩니다. 먹어본 적이 없는 잎이건 꽃이건 과일이건 내 허락 없이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일러둔 뒤에 오백 대의 짐수레와 함께 험지로 들어가자 야차들이 앞에서와 똑같이 물방울을 뚝뚝 떨구며 모습을 드러내고서 물을 버리고 가볍게 길을 가라고 조언했습니다.
“저 우거진 숲에 드넓은 연못이 있고, 게다가 지금 저곳에는 큰 비가 내리고 있소.”
보리살타는 그들을 보는 순간 눈치 챘습니다.
‘이 험지에는 물이 없다. 게다가 이 자는 두 눈이 벌겋고 심지어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틀림없이 앞서 출발한 상인들은 이들에게 속아 물을 전부 쏟아 붓고서 잡아먹혔을 것이다.’
그는 야차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들 갈 길을 가시지요. 우리는 장사꾼입니다. 물을 발견한 장소에 이르면 그때 이 물을 쏟아 붓고 수레도 가볍게 해서 앞으로 나아갈 참입니다.”
한편, 야차가 떠나가자 상인들이 우두머리인 보리살타에게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대장! 저들이 일러준 대로 이 물을 쏟아 붓고 가벼워진 수레로 좀 빨리 달려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보리살타가 물었습니다.
“그대들은 ‘이 험지 안에 연못이나 호수가 있다’라고 들은 적이 있습니까?”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곳은 물이 없기로 유명한 험지입니다. 앞서 저들이 ‘저 짙푸른 숲 쪽에 비가 내리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비바람은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서부터 맞게 됩니까?”
“1요자나 정도의 거리에서 비바람을 몸에 맞을 수 있습니다.”
“그대들 중에서 몸에 비바람을 맞은 이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뭉게구름은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보입니까?”
“1요자나 정도 떨어진 곳이면 보입니다.”
“그대들 가운데 뭉게구름을 본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다.”
“번개는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서 보입니까?”
“4,5요자나 떨어진 거리에서 보입니다.”
“그대들 가운데 번갯불이 번쩍이는 걸 본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다.”
“우레는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들립니까?”
“1,2 요자나 떨어진 거리에서 들립니다.”
“그대들 가운데 우레 소리를 들은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대들은 앞서 지나간 그 사람들을 잘 압니까?”
“아뇨, 모릅니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야차입니다. 우리에게 물을 다 버리게 해서 목이 말라 지쳐 쓰러지게 한 다음에 잡아먹으려고 나타난 귀신입니다. 앞서 출발한 대상의 우두머리는 틀림없이 저 야차의 꾐에 빠져서 잡아 먹혔을 것입니다. 자, 이제 한 방울의 물도 낭비하지 말고 서둘러 수레를 달립시다.”
그리하여 그들 모두는 쏜살같이 수레를 타고 앞으로 내달렸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다가 버려진 오백 대의 수레를 발견했고, 그 둘레에 소와 사람의 뼈가 흩어져 있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지혜로운 우두머리가 이끄는 상인들은 그날 밤 안전하게 야영을 한 뒤에 내버려져 있던 짐수레에서 값비싼 물건들을 추려내 싣고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두 배, 세 배의 값으로 물건을 팔아 큰돈을 번 뒤에 고향으로 안전하게 돌아갔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어리석은 대상의 우두머리는 데바닷타요, 그를 따라나선 바람에 불행을 겪은 5백 명의 상인들은 데바닷타를 추종하는 무리들이요, 지혜로운 보리살타는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보리살타를 따라 큰 재산을 모아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 이들은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본생경 1번째 이야기)
본생경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 547편을 모은 이야기책입니다. 한결같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부처 되기 전생에 어떤 일을 겪었고 그때 어떻게 지혜를 발휘했는지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547편이나 되는 방대한 이야기책을 읽어가다가 문득 가장 첫 번째 등장하는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들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 첫 번째 이야기가 본생경(자타카)의 주제와 그 기획의도를 고스란히 드러내주고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이지요.
과연, 첫 번째 이야기는 바른 스승(리더)을 따르는 일이 얼마나 복을 불러오는 일인지를 단적으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좋은 가르침’을 듣는다고 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목숨을 잃을 뻔한 험난한 곳도 안전하게 건너고, 목숨을 빼앗으려 덤비는 야차의 꾐에도 빠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인들이 목표로 하는 막대한 부를 움켜쥐고 게다가 안락한 고향으로 안전하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해봅니다. 물도 없고 귀신이 득실거리는 험지는 바로 이 거친 사바세계요, 목마른 중생을 덮쳐서 목숨을 빼앗는 야차는 바로 우리 마음에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번뇌요, 그에 목숨을 빼앗긴다는 것은 생사윤회를 되풀이하는 우리 모습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바른 스승을 만나 그 가르침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인생 최고의 행운을 거머쥔 것입니다. 단단하고 확실한 지혜를 지닌 부처님을 따를 것인가, 단순히 억측하고 귀가 얇아 끝내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그릇된 신앙을 따를 것인가. 선택은 자신의 몫이지요. 하지만 이왕 부처님과 인연이 닿았다면 세상에서 가장 알차고 확실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고 믿고 안심해도 좋을 듯합니다.
이미령 (경전 이야기꾼, 불교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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