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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알아두면 쓸데있는 불교 공부

생명살림으로 회향하는 기도공덕

  • 입력 2022.02.01

2019년 조계사 동안거 회향 생명살림기도


임인년 새해를 맞이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훌쩍 흘렀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에는 코로나19 상황이 호전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저마다 신년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오미크론 변이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다시 암담해지고 있다. 해가 바뀌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낙담으로 변하면서 신년 벽두에 다짐했던 계획들도 힘이 빠지고 있는 시절이다.

 

 

◆한 번 더 맞이하는 새해

세월은 화살처럼 빨리 지나가고, 삶에는 연습이 없다지만 다행이 우리에겐 다시 새해를 맞이하고, 희망을 설계할 기회가 한 번 더 남아 있다. 우리에게는 아직 설날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음력과 양력을 함께 세는 덕분에 우리는 두 번의 새해를 맞으며 일종의 예행연습을 경험하게 된다. 달을 기준으로 보면 2월 1일 설날, 2월 4일 입춘(立春), 2월 15일 정월대보름으로 이어지고 있어 새 생명이 움트는 새해는 2월부터 실질적으로 시작되는 셈이다.

대부분의 불교명절도 음력을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설이 되면 사찰에서는 세알(歲謁) 법회를 갖는다. 해가 바뀌고 새해가 밝았기에 부처님께 새해맞이 예불을 올리고, 신도들은 스님들께 세배하고, 대중들도 상호간에 세배하며 모든 대중들이 새해맞이 인사를 나누는 것이 세알법회다. 모든 대중들이 새해 인사와 덕담을 나누고, 복된 새해를 기원하기 때문에 ‘두루 인사를 아뢴다’는 뜻에서 통알(通謁) 법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설이 되면 민간에서는 한 해의 운수를 미리 알아보기 위해 ‘신수점(身數占)’을 보는 풍습이 있었다. ‘신수(身數)’란 사람의 운수를 말하는데, 한 해의 운세를 미리 점쳐보고 흉한 것은 피하고, 좋은 쪽으로 쫓아가기 위함이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타고난 운명을 믿지 않는다. 부처님은 자신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자신이 짓는 업(業)에 달려 있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한 해의 운수를 알기 위해 점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악업을 참회하고, 선업을 짓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불자들은 설이 되면 새해맞이 의례로 다니는 절을 찾아가 신수기도를 올렸다. 지난 한 해 지은 악업을 참회함으로써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막고, 기도라는 선업을 통해 자신이 받을 복을 스스로 짓는 것이 신수기도에 담긴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신수점이 단지 자신의 운수를 알고자 하는 것이라면 신수기도는 기도공덕을 통해 스스로 한 해의 복과 행운을 만드는 선업을 짓는 것이다.

 

 

◆둥근 빛으로 완성되는 기도공덕

설을 맞아 불자들이 기도정진으로 복과 행운을 비는 그 시간에 전국의 선방에서는 동안거(冬安居) 수행이 막바지를 향해 정진의 열기를 더해간다. 이렇게 새해를 맞이한 불자들의 기도와 수행자들의 정진이 깊어갈 즈음 차가운 겨울 달도 점차 둥글게 차올라 정월대보름이 된다. 지난 해 시월 보름에 입제에 들어갔던 전국 선원의 동안거 대중들은 석 달간의 고된 정진을 마치고 정월대보름날 마침내 해제의 기쁨을 맞이한다.

전통적으로 정초기도가 끝나고 동안거가 해제하는 정월대보름에 맞춰 방생법회를 갖는 사찰이 많았다. 정월보름에 방생(放生)하는 것은 선행의 실천과 기도의 회향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선행의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사람의 운명은 스스로의 업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불교의 업설이다. 따라서 기도를 통해 악업을 참회하고, 선업을 쌓는 것이 복을 짓는 바른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을 살리는 방생은 불살생(不殺生)을 제일의 실천윤리로 삼는 불자에게 최고의 선업이므로 방생이라는 선업을 통해 한 해를 살아갈 복덕을 짓고자 했다.

둘째, 회향(回向)이라는 측면이다. 자신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위해 기도했지만 불교에서 모든 기도와 의례는 회향으로 마무리된다. 대승보살의 열 가지 서원과 실천을 담고 있는 보현행원의 마지막 단계는 ‘널리 공덕을 회향’하는 ‘보개회향(普皆回向)’이다. 갖가지 힘든 보살행을 통해 얻은 공덕을 자신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들에게 두루 돌려줄 때 비로소 참다운 공덕을 짓게 된다는 것이다.

회향의 의미는 다음과 같은 회향게에 잘 담겨 있다.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 我等與衆生 當生極樂國 同見無量壽 皆共成佛道).”로 되어 있는 회향게의 의미를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원컨대 이 공덕이 모든 이에게 두루 미쳐 나와 중생들이 반드시 극락세계에 태어나 다함께 아미타불을 친견하고, 모두 함께 성불하여지이다.”

이처럼 내가 지은 공덕은 남에게 돌려줄 때 비로소 나의 공덕이 완성됨으로 불교에서 하는 모든 기도와 불사는 회향으로 끝을 맺는다. 불사는 자기중심적 집착을 키우고, 소유와 축적을 늘려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 공덕을 돌려주는 나눔과 공유로 귀결된다. 자신이 쌓은 선근(善根)과 공덕(功德)을 일체 모든 중생들과 함께 나누고, 궁극적으로 다 함께 성불의 기쁨을 공유하는 것이 회향에 담긴 정신이다.

자신이 복을 받고자 기도하고, 자신이 행복하고자 수행했지만 정말 복을 받고 행복하려면 그 공덕을 두루 회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향에 담긴 이런 정신은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는 연기(緣起) 사상을 근간으로 한다. 일체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에 나와 남은 불이(不二)이다. 그러므로 남이 불행하면 나 혼자 행복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남들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할 수 있고, 모든 중생이 복되어야 나도 복을 누릴 수 있기에 성철스님은 ‘남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다.

흔히 기도는 부처님께 자신이 받을 복을 비는 것이므로 타력신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도의 바른 의미를 알고 회향이라는 과정을 거치면 기도의 의미는 달라진다. 기도를 통해 연기의 진리를 체득하게 되고, 모든 중생을 내 몸처럼 보살피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보살행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수기도를 통해 한 해를 살아갈 복덕을 쌓고, 그 공덕을 모든 중생에게 회향함으로써 기도를 완성하는 의례가 생명을 살리는 방생(放生)이다. 이렇게 보면 방생은 새해를 맞이하여 기도의 공덕과 동안거를 통한 수행의 공덕을 생명살림으로 승화키는 불교의 새해맞이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위기와 생명살림의 신행

불자들은 새해맞이 기도를 통해 내가 건강하고, 내가 행복하고, 나의 소원성취만을 빌지 않았다. 그런 기도는 욕망을 공고히 하고 자신만이 잘 살고자 하는 것이므로 오히려 자비에서 멀어지는 길이다. 내가 행복하려면 남이 행복해야 하고, 인간이 행복하려면 동물이 행복해야 하며, 생명이 행복하려면 생명 없는 무정물과 자연이 행복해야 한다. 그래서 기도는 나의 공덕으로 나와 남을 함께 살리는 회향으로 이어져야 하고, 그 살림의 실천이 바로 방생이다.

전통적 의미에서 방생이란 죽을 운명에 놓인 목숨을 살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방생법회에서는 죽어갈 물고기를 사서 강에 풀어주는 방식으로 행해졌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의 방생은 전통적 개념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는 모든 생명의 존속과 지속가능성의 토대가 무너지는 것이다. 기후위기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서식지가 사라지면서 무수한 생명들이 죽고 멸종하는 재난이 닥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생도 물고기 방생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실천으로 의미를 확장해야 한다. 즉, 소욕지족의 정신으로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고 소비를 줄이는 삶, 에너지를 아껴 쓰고 탄소배출을 줄여 탄소제로 사회를 앞당기는 실천, 사방승물의 정신을 본받아 함께 나누고 공유하며 생산과 소비를 줄이는 생활방식, 불살생의 정신으로 다른 생명의 희생을 전제로 한 음식을 자제하는 채식운동, 발우공양의 정신으로 소박하게 먹고 음식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실천, 자연과 무수한 존재들에게 감사하는 삶 등이 그것이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이와 같은 삶의 전환과 실천이야말로 나와 남이 함께 행복해 지는 연기의 지혜를 실천하는 것이며, 기도를 통해 쌓은 공덕을 모든 생명에게 돌려주는 회향이며, 새로 맞이한 한 해의 신수를 훤하게 여는 길이다.

 

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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