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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부처가 있네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내 집 가까이서 쓰여진 시행(詩行)’에는 이런 시구들이 있다. “누이여!(내 소원인 바)/ 이제 우리 아침식사 마쳤으니,/ 서두르라, 그대의 아침 일 접어두고,/ 이리 나와 햇볕을 느껴보라.// 에드워드도 그대와 함께 나오리니, 자,/ 서둘러 나들이 옷 걸쳐 입고/ 책은 들지 말라, 오늘 하루만은/ 한가로이 노닐 테니// 그 어떤 음울한 형상도 억누르지 못하리/ 생명력 넘치는 우리의 시간을” 이 시를 읽으면 집 가까이로 막 산책을 나서는 한 가족의 풍경이 떠오른다. 아침을 먹고, 오랜만에 한가로운 마음으로, 음울한 생각을 벗고, 햇볕 좋은 공간으로 나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도 이 시에서처럼 가끔은 집 가까이에 있는 신선한 곳으로, 새의 노랫소리가 있으면 더욱 좋을 곳으로 가벼운 산책을 해도 좋을 일이다. 워즈워스는 이런 시간을 “지금은 느껴야 하는 시간”이라고도 썼다.
나도 집 가까운 곳으로, 마을로 나가 골목을 걷는다. 얻어온 강아지를 데리고 간다. 강아지는 나보다 더 훨씬 호기심이 많아서 아직 마르지 않은 풀이며 아직 떨어지지 않은 꽃에 코를 연신 갖다 대기도 한다. 때론 막 내달리기도 한다. 걸어가면서 만나는 동네 분들께 인사를 건네면 밝은 얼굴로 하는 인사가 되돌아온다. 어제는 귤 창고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귤을 사서 오기도 했다. 낡은 귤 창고에는 싱그러운 귤들이 가득했다. 귤의 크기에 따라 가려내는 작업을 한 후 박스로 포장해서 시장으로 낼 거라고 했다. 한 박스를 샀더니 덤으로 더 얹어주었다. 내친 김에 귤 밭을 잠깐 둘러보기도 했다. 막바지에 이르렀는지 이제 귤나무에는 드문드문 귤이 매달려 있었다. 노랗게 익은, 달콤한 귤들은 각각의 높이에 매달려 있었다. 그 귤들을 보는 순간 나는 개개의 귤이 하나의 음악처럼 느껴졌다. 햇살을 잘 받는 쪽에, 서로 조금씩 떨어진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익은 귤에게선 흥겨운 음률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고, 행복감 같은 것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 겨울 귤 밭이 무엇보다 한적해서 고요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사는 집 앞집에는 민박을 하는데 날마다 손님들이 와서 하루씩 묵고 간다. 무화과 밭을 뒷마당으로 두어서 오는 손님들이 무화과 밭에 의자를 내놓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나는 몇 차례 보았다. 요즘은 이 집에 딸린 작은 공간을 새롭게 고치느라 톱을 켜는 소리와 망치질 소리가 들려온다. 가끔 이 집의 아주머니를 보게도 되는데 대개는 손님들이 퇴실한 방을 청소하는 때가 많다. 비와 쓰레받기를 들고 있는 때가 많다. 이 집 아저씨는 목공과 조경에 솜씨가 있어서 나는 가끔 이 집의 살림 도구를 보면서 내 집 살림에 그것을 따라해 장만하기도 한다.
마당을 잘 가꾸는 집도 있다. 특히 잔디를 잘 가꾸는 집이 있는데, 나는 또 잔디 깎는 도구에 관심이 가서 그 구입처를 알아두었다. 값이 꽤 높아서 돈을 모아 올해 봄에는 나도 그것을 좀 샀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동네에는 담을 잘 쌓은 집이 있고, 담 밖 화단을 잘 가꾼 집이 있고, 옷감에 감물을 잘 들이는 집이 있고, 마당에 우람한 하귤 나무가 서 있는 집이 있고, 말을 잘 알아듣도록 개를 잘 기른 집이 있다. 집마다 눈에 띌 정도로 부러운 보물을 하나씩 갖고 있다. 나는 신년에 한 스님으로부터 “집집마다 부처가 있어요. 그걸 잘 기억하세요.”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어쩌면 집집마다 갖고 있는 부러운 보물이 곧 부처요, 집집마다 사는 사람들 모두가 부처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국숫집에 가는 일은 즐겁다. 이 집의 주인은 인심이 넉넉하다. 손도 크다. 무엇이든 내 줄 때에 충분히 내어 놓는다. 반찬이며 밥이며, 말씀이며 모두가 풍성하다. 그래서 이 집에는 사람들이 붐빈다. 자리가 모자라 바깥에서 기다리는 때가 잦다. 동네 사람들이 와서 국수를 먹기도 하지만 대개는 동네 주변에서 노동을 하는 분들이 찾아온다. 노련한 목수, 집 짓는 곳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 브로콜리 농사 품삯을 받는 사람 등등 하는 일들이 다 다르지만 이 국숫집에서는 하나같이 즐겁다. 그래서 국숫집은 웃음이 크게 나고, 시끌시끌하다. 나도 혼자 가서 국수 한 그릇을 먹을 때가 더러 있는데 이때는 내 마음에 거슬림이 없이 흐뭇하고 기쁜 때이다. 이 사람들 속에 있다 보면 좀 서운하던 일도 없어지고, 좀 슬픈 일도 덜해지고, 꽤 심각하던 일도 조금은 가벼워진다. 최근에 읽은 심재휘 시인의 시편들 가운데 ‘행복’이라는 시를 읽었는데, 이런 대목이 있다. “매일이 보람차다면/ 힘겨워 살 수 있나// 행복도 무거워질 때 있으니// 맹물 마시듯/ 의미 없는 날도 있어야지/ 잘 살려고 애쓰지 않는 날도 있어야지”라고 시인은 썼다. 이 시구처럼 국숫집에 앉아 있으면 보람도 없이 맹물을 마시게 된 날에도 행복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던하게 사는 날에 행복이 있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지금은 느껴야 하는 시간”을 갖는 일은 필요하다. 그것은 맑은 산소 같은 시간이다. 묶인 나를 풀어주는 시간이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다른 삶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보물이 있고, 집집마다 부처가 있고, 모든 사람들이 곧 부처라는 생각에 이르게 하는 시간이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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