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 50대 남성 불자입니다. 특별한 동기가 없이 사찰에 다니게 되었는데, 요즘 절에서 하는 의식이나 법회에 참여해 보면 어렵기도 하고 분위기 적응을 잘하지 못합니다. 스님들의 법문도 어렵게 느껴집니다. 나이 때문일까요? 젊었을 때처럼 빠른 이해도 안 되고 답답합니다. 좋은 신행 방법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답변 : 사실 불교의 신행(信行)은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머리가 나쁜 것과 나이가 많은 것하고는 상관없지요. 머리 회전이 느린 사람이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식으로 이해하지 말고 단순하고 쉽게, 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한마음 한 생각으로 몰입하면 그것이 오히려 큰 가르침을 줄 수도 있습니다. 머리가 좋은 것은 장점도 되지만 수행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이나 조건에 걸리지 않고, 게으름도 피우지 않고 무엇이든 일념(一念)으로 매진할 수 있다면 지혜의 눈은 언제든지 열릴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 ‘주리판타카’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경전에 쓰여진 대로라면, 정말로 머리가 나빳던 제자로 등장합니다. 요즘 표현으로 돌머리라고 하나요? 몇 달이 걸려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게송 하나를 외우지 못해 쩔쩔맸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마하판타카’라는 이미 출가한 형이 있었는데, 그는 일찍이 부지런히 정진해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형은 동생을 깨우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은 포기하고 동생을 다시 집으로 돌아가도록 합니다. 실의(失意)에 빠진 동생 ‘주리판타카’는 이리저리 방황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주리판타카’를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그리고는 빗자루 하나를 주며 청소하는 일에만 전념하라는 가르침을 주시지요. 그는 부처님의 보살핌과 격려에 힘입어 아무 잡념 없이 부지런히 청소에 열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리판타카’는 청소하면 주변이 깨끗해지듯이 사람의 마음도 깨끗이 하지 않으면 더러워지기 쉽기 때문에, 먼저 마음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맑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요즘 많은 사찰이 정기적으로 ‘템플스테이’를 진행합니다. 진행 순서에 스님과 차담(茶啖)을 하는 시간이 있는데 이 시간에는 불교에 대한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질문과 대답이 주로 이루어집니다. 그중에서 지금 절에 다니고 있는 불자들에게 불교에 대한 입문 동기를 물으면 의외의 답변이 나와서 재미있습니다.
특이한 점 중 하나는, 특별한 동기나 생각 없이 절에 오게 되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절밥이 맛이 있어서 자주 먹다가 절에 오게 되었다는 분, 그냥 어머니 손을 잡고 절에 오다가 다니게 되었다는 분, 산을 좋아해서 산에 오다가 절이 있어서 잠깐씩 쉬었는데 그러다 보니 절에 친숙해졌다는 분도 있고 남성 불자님들 중에는 부인을 절까지 자동차로 데려주다가 어느덧 같이 절에 오게 됐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다양한 동기를 가지고 절에 옵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는 절에서 하는 의식이나 법회, 각종 행사에 잘 적응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질문하신 불자님처럼 어렵게 느끼고, 분위기를 힘들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법문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옛 어른들의 말씀에, 법문을 들을 때는 두 가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는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고 또 하나는 너무 쉽다는 생각입니다.
어려워도 자꾸 들으면 조금씩 알게 됩니다. 전체를 다 이해하는 것보다는 한 가지라도 마음에 와서 닿는 부분이 있으면 그 말씀을 자꾸 새겨야 하겠죠. 또 법문이 쉬워도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쉬운 법문도 자꾸 들어서 실천에 힘써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사실 법문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몸과 마음의 수행이 아닌 기계적인 이론이나 논리에 집착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많이 아는 것이 자랑거리는 아닙니다. 오히려 잘 모르더라도 진리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순일(純一)하고 진실한 마음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