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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이미령의 본생경 이야기

죽은 쥐로 거부가 된 남자 이야기

  • 입력 2022.03.01

오랜 옛날, 인도 갠지스강 근처 바라나시에 부유한 상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현명해서 작은 사물을 보고도 어떤 징조를 알아 맞혔습니다. 어느 날, 부유한 상인이 왕을 수행하며 길을 가던 중에 죽은 쥐 한 마리를 보더니 별자리를 점치고서 말했습니다.

“누군가 지혜로운 사람이 이 쥐를 가져가면 큰돈을 벌어 가정을 잘 건사하겠구나.”

때마침 곁을 지나던 영락(零落)한 양가집 아들이 이 말을 듣고 생각했습니다.

‘이 부호상인이 아무 것도 모르고서 이런 말을 할 리가 없다.’

그는 쥐를 집어 들고 어느 가게로 가서 고양이 먹이로 팔고 돈 몇 푼을 벌었습니다. 그 푼돈으로 사탕을 산 뒤 사탕물을 만들어서 숲으로 갔습니다. 숲에서 화환을 만드느라 땀을 흘린 일꾼들에게 사탕물을 한 국자씩 나눠 주자 일꾼들은 답례로 꽃을 한줌씩 주었지요.

그는 그 꽃을 팔아서 다음 날에도 사탕물을 준비하여 일꾼들에게 주었고 일꾼들은 작업하고 남은 꽃더미를 그에게 주고 갔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순식간에 8카하파나를 벌었지요.

비바람이 심하게 불던 어느 날, 왕궁 정원에는 어마어마한 삭정이와 나뭇잎이 수북하게 떨어져 나뒹굴었습니다. 정원지기가 나무 쓰레기를 보고서 난감해하고 있을 때 남자가 다가와서 제안했습니다. 

“제게 이 나뭇가지와 잎을 다 주신다면 이곳을 깨끗하게 치워드리겠습니다.”

정원지기가 흔쾌히 승낙하자 그는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며 왕궁 정원에서 나온 나뭇가지며 잎들을 긁어모으게 한 뒤에 정원지기 집 문 앞에 쌓아놓았습니다.

마침 그때 왕가에서 일하는 도공이 도기를 구울 땔감을 구하러 나왔다가 이 나뭇가지 더미를 보고 사들였습니다. 그날 남자는 나무를 팔아서 16카하파나의 현금과 함께 항아리 등의 다섯 가지 도기를 손에 넣었지요. 이렇게 해서 24카하파나를 모으자 그는 다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성문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물병을 하나 놓고, 풀 베는 사람들 5백 명에게 물을 주었습니다. 갈증을 달랜 사람들이 보답하려 하자 말했습니다. 

“내가 나중에 꼭 부탁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도와주십시오.”

그 후 남자는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육로로 오가는 상인과 수로를 오가는 상인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어느 날 육로의 상인이 넌지시 일러주었습니다.

“내일 이 도시에 말 중개인이 말 5백 마리를 끌고 올 것이오.”

이 말을 들은 남자는 풀 베는 사람들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오늘 내게 풀을 한 짐씩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부탁이 있습니다. 내가 그 풀을 다 팔기 전에 여러분의 풀을 팔지 말아 주십시오.”

사람들이 승낙하고서 풀 500짐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한편, 말 중개인은 도시 한복판에서 말 5백 마리에게 먹일 풀을 구할 수 없자 하는 수 없이 그에게 1천 카하파나를 주고서 그 풀을 샀습니다.

다시 며칠이 지나 수로의 상인인 친구가 “항구에 커다란 화물선이 왔다”고 일러주자 그는 8카하파나를 들여 모든 장비를 갖춘 화물수레를 빌려서 선주에게 화물 전부를 사들이겠다고 약속하고 멀지 않은 장소에 커다란 천막을 치고 그 안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한편 커다란 화물선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백 명의 상인들이 몰려 왔습니다. 그런데 상인들은 화물선 선주에게서 “이미 물건을 사기로 예약해놓은 상인이 있어 당신들에게는 팔 물건이 없소.”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상인들은 남자가 설치한 천막으로 찾아와 각자 천 카하파나를 내서 그와 배의 공동소유자가 되었고, 나아가 각자 천 카하파나를 더 내어서 그에게 소유권을 포기하고 물품을 자신들에게 넘기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20만 카하파나라는 거금을 번 남자는 고향으로 돌아와 부호상인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말을 듣고 딱 4개월 동안에 부자가 됐습니다. 그 돈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죽은 쥐의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사이에 일어난 모든 일을 들려주었습니다. 부호상인은 남자의 말을 듣고 감탄하며 요령 있고 대범한 이 청년을 사위로 삼고서 자신의 전 재산을 다 주었습니다. 훗날 남자는 부호상인이 죽은 뒤에 그 지위를 물려받았습니다. 

죽은 쥐를 보고서 예언을 한 부호상인은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그 말을 듣고 어마어마한 재산을 모은 뒤에 나아가 부호상인의 뒤를 이은 남자는 바로 츌라판타카(주리반특)였습니다. 부처님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뒤 다음의 시를 읊으셨지요.

“밝은 눈을 가진 현자는/푼돈을 가지고도/자신의 몸을 세우니/작은 불씨를 불어서 크게 키우듯이.” (본생경 4번째 이야기)

 

이 이야기는 불교 역사에서 가장 우둔한 수행자였던 주리반특(츌라판타카)의 전생담입니다. 주리반특에게는 형이 있었지요. 형은 그와 달리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일찍이 출가해서 스님이 된 형을 따라 주리반특도 그 아래에서 출가하였지요. 

주리반특은 머리가 나빠도 그렇게 나쁠 수가 없었습니다. 형은 동생을 의젓한 스님으로 만들고자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며 부처님 법문을 들려주고 설명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네 구절로 이뤄진 시 한 수를 들려주고 그것만이라도 외우라고 했습니다. 

“향긋하고 그윽한 붉은 연꽃이/이른 아침 눈부시게 피어나듯이/창공에서 빛나는 태양처럼/찬란한 부처님을 보아라.”

하지만 주리반특은 단 한 구절도 외우지 못했습니다. 넉 달이 지났지만 말이지요. 어쩌다 가까스로 첫 번째 구절을 왼 뒤 두 번째 구절을 외려는 순간, 첫 번째 구절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형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너처럼 무지하고 아둔한 자를 본 적이 없다. 시 한 수를 넉 달에 걸쳐도 외지 못하니 너 같은 자는 절에 머물 수 없다. 나가라. 집으로 돌아가서 그냥 살아라.”

형 한 사람만 믿고 출가한 주리반특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비참한 마음으로 터덜터덜 속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데 부처님이 길목에서 그를 보고 물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그대는 어디로 가려고 절을 나섰는가?”

“형님에게 쫓겨나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풀이 죽은 그에게 부처님은 말했지요.

“주리반특이여, 그대는 내게서 출가를 했다. 그대의 형이 내쫓았을 때 왜 내게 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를 데리고 절에 돌아가서 깨끗한 헝겊 하나를 내밀고 말했습니다.

“자, 이 헝겊을 받아라.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동쪽을 향해 앉아서 그저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먼지닦이, 먼지닦이’라고 말하기만 해라.”

이렇게 말씀하신 뒤 부처님은 절에 있는 모든 수행자들과 함께 신자의 아침공양 초대를 받고서 떠났습니다. 텅 빈 사원에 주리반특 홀로 남았습니다. 그는 부처님의 제안대로 새하얀 헝겊을 만지작거리며 ‘먼지닦이, 먼지닦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그가 만지작거리던 헝겊은 어느 사이 지저분해졌습니다. 무심코 헝겊을 바라보던 그는 새삼 놀랐습니다.

‘이런, 헝겊이 변했네. 그렇게나 깨끗하던 것은 어디로 갔을까?’

주리반특은 지저분해진 헝겊을 들여다보며 처음의 그 하얀 본성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왜 그것이 이리 쉽게 변해버렸는지, 그렇다면 세상 모든 것도 이렇게 달라지고 변하는 것인지… 깊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생각은 점점 더 깊어졌고, 마침내 그는 세상 모든 것이 헝겊처럼 변하고 달라지고 반드시 소멸하고 만다는 이치를 사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신자의 집에서 아침 공양을 하시던 부처님은 주리반특의 깊은 사유를 아시고 삼매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서 이렇게 일러주셨지요.

“더러워지고 오염되는 것은 이 헝겊만이 아니다. 그대 내면에는 탐욕이라고 하는 때가 있다. 그대 내면의 분노가 더러운 때요, 어리석음이 더러운 때다. 그것을 제거하여라. 외부의 먼지가 때는 아니다. 바로 이 더러운 세 가지 때를 버린 수행자는 번뇌의 때를 떠난 붓다의 가르침이 있는 곳에 머문다.”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 주리반특은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을 관찰하고 마음을 더럽히는 세 가지 번뇌를 비추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번뇌 하나하나의 성품을 관찰하면서 마음에서 더러운 때를 완전히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는 성자가 되었습니다. 

한편 부처님은 마을 신자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는 절의 모든 스님들을 초대했지만 훌륭한 성자 한 사람이 아직 절에 남아 있습니다. 그를 불러 주겠습니까?”

그러자 주리반특의 형이 말했습니다.

“부처님, 절에는 수행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형의 생각에 동생 주리반특은 환속했으니 혹여 절에 남아 있더라도 스님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심부름꾼이 절에 달려가서 주리반특을 모셔왔지요. 사람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넉 달에 걸쳐도 쉬운 시 한 구절도 외지 못하는 어리석고 아둔한 자를 부처님은 훌륭한 성자라 부르며 그를 정중하게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부처님은 위에서의 본생담을 들려주었던 것이지요. 

넉 달이란 긴 시간 동안 시 한 수도 외지 못했다고 비난받고 쫓겨났지만 그에게 넉 달은 마음에 오직 그 시 한 수만이 담겨 있던 집중의 시간이었지요. 몰락한 가문의 자제가 죽은 쥐 한 마리로 시작해서 넉 달 만에 거부가 되었다는 전생이야기는 바로 그것을 말해줍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화려한 스펙을 내놓으라고 하지만 주리반특 이야기는 그 결이 사뭇 다릅니다. 세상의 요구는 거대하지만 죽은 쥐 한 마리가 큰 재산으로 이어지고 작은 불씨가 큰 불로 커지는 법이지요. 처음부터 거창하고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언제까지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춰야 할까요? 나는 차라리 시 한 수를 외려고 넉 달 동안 안달복달한 주리반특을 배우렵니다.

 

 

이미령 (경전 이야기꾼, 불교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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