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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알아두면 쓸데있는 불교 공부

이대남 싯타르타 태자의 출가와 3월

  • 입력 2022.03.01

조계사 대웅전 벽화. 유성출가상, 쌍림열반상

가지 끝에 이는 바람이 한결 부드럽게 느껴지는 3월이다. 불자들에게 3월이 특별한 것은 출가재일(3월 10일)과 열반재일(3월 17일)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출가재일은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가 깨달음을 얻고자 출가한 날이고, 열반재일은 부처님께서 사라쌍수 아래에서 입멸에 드신 날이다. 출가재일과 열반재일은 성도재일과 부처님오신날과 함께 불교의 4대 명절로 기념하고 있다. 불교의 시작과 끝이 모두 봄이 오는 3월에 들어있는 셈이다.

 

■출가재일과 열반재일이 있는 3월
‘좋은 비는 때를 안다(好雨知時節)’는 두보의 시구처럼 3월이 되면 봄비가 촉촉히 대지를 적시고, 따사로운 햇살 아래 만생명이 소생한다. 『화엄경』에 따르면 진리는 눈부신 태양에 비유되고, 『법화경』에 따르면 부처님의 자비는 크고 작은 초목을 생장시키는 빗물에 비유된다. 따사로운 햇살은 얼어붙은 동토에서 생명을 싹트게 하는 마법을 지녔고, 빗물은 그런 생명을 양육하는 힘을 지녔다. 봄비와 햇살이 동토에서 생명을 소생시키듯이 중생의 ‘마음 밭[心田]’도 지혜광명을 만나면 불성이 싹을 틔우고, 자비의 비가 내리면 선근의 열매가 영그는 법이다.
3월이 춥고 어두운 잿빛 겨울에서 햇살 눈부신 봄으로 가는 길목이라면 출가재일에서 열반재일로 가는 기간도 무명의 겨울에서 지혜광명의 세계로 가는 여정이다. 겨울을 녹이는 원천이 햇살이라면 내면의 어둠을 밝히는 빛은 지혜이며, 삭풍을 밀어내는 것이 봄바람이라면 번뇌를 잠재우는 바람은 ‘지혜의 바람[智風]’이다. 출가는 바로 내면의 빛을 찾기 위한 여행이며, 지혜의 바람으로 모든 번뇌의 불꽃을 끄기 위한 실천이다.
그런 점에서 출가는 한 인간에게 비장한 결심이자 위대한 도전이다. 주지하다시피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는 카필라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만인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던 태자는 아름다운 야소다라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 라훌라를 얻었다. 모든 백성들은 새로운 왕자의 탄생을 기뻐했으며, 부왕은 나라의 경사를 기념하고자 7일에 걸쳐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
하지만 출가를 꿈꾸던 태자에게 아들의 탄생은 기쁨만은 아니었다. 가정이라는 굴레에 더욱 깊이 속박되는 또 하나의 장애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문의 후사를 잇고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왕자가 태어났기에 자신이 감당해야할 최소한의 의무를 완수한 것이기도 했다. 7일 간의 성대한 잔치가 끝나자 환락에 젖었던 사람들은 모두 잠에 떨어졌지만 오직 태자만은 홀로 깨어 있었다. 궁성이 고요히 잠든 그 순간 태자는 마부 찬나를 깨우고, 서둘러 애마를 준비하게 했다.
태자는 높디높은 카필라성의 성벽을 넘어 인적 없는 숲으로 말을 달렸다. 밤새 말을 달린 태자는 동쪽 하늘에 먼동이 틀 무렵 속세와 수행자의 영역을 가르는 경계에 위치한 아노마 강변에 다다랐다. 말에서 내린 태자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미련 없이 자르고, 화려한 장신구를 벗어 찬나에게 주며 부왕과 야소다라에게 전달하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화려한 옷과 황금 신발을 벗고 거칠고 낯선 풍경 속으로 맨발로 걸어갔다. 그 날이 바로 태자의 나이가 29살이 되던 음력 2월 8일 출가재일이다.
태자는 스스로 화려한 이대남 시절을 청산하고 남몰래 궁성을 넘어갔다. 공식적으로 성문을 나간 것이 아니므로 ‘성을 넘어 출가했다’는 뜻에서 ‘유성출가(踰城出家)’라고 부른다. 부처님의 일생을 기록한 경전에 의하면 태자가 출가한 이유는 생로병사라는 인간의 본질적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함이었다. 생후 7일 만에 어머니 마야부인이 입적하자 태자는 이모의 보살핌 속에 성장하게 된다. 극진한 왕궁의 보살핌 속에서도 태자는 깊은 사색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부왕은 선인의 예언처럼 태자가 출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궁성 밖으로 유람을 떠나게 했다. 아름다운 세상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문유관(四門遊觀)’으로 불리는 이 여행을 통해 태자는 오히려 출가의 결심을 굳히게 된다. 동서남북 네 개의 문밖으로 나가 태자가 목격한 것은 늙고[東], 병들고[南], 죽는 고통[西]이었다. 모든 인간은 근원적 고통의 사슬에 묶여 있음을 목격하자 태자의 낙담은 오히려 커졌다. 그런데 마지막 북문으로 나간 태자는 한 사람의 수행자를 만나게 된다. 그의 얼굴은 평온하였고, 자태는 당당하고, 발걸음에는 여유가 넘쳤다. 태자는 그의 모습에서 비로소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았고, 그 빛을 찾아가는 결단이 바로 칠흑 같은 궁성을 탈출하는 출가였다.
서양의 학자들은 태자의 출가를 ‘위대한 포기(The Great Renunciation)’라고 이름 붙였다. 개인적으로 아내와 아들을 비롯한 사랑하는 가족을 포기했기 때문이고, 사회적으로 왕자의 지위와 모든 세속적 신분과 권력을 버렸기 때문이며, 종교적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전통적 사유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태자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고, 가장 높은 곳에 오를 수 있었지만 그런 것으로 생로병사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고 출가의 길을 선택했다.
출가재일은 이와 같은 태자의 출가정신을 기리는 날이자 불교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다. 출가는 영원한 해탈이라는 종교적 빛을 찾는 위대한 여정이다. 그 길은 일상의 자질구레한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왜 왔는지도 모른 채 태어나,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하는 부질없는 삶에 대한 몸부림이자 실존적 저항이다.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으로 가는 3월
출가의 의미가 이렇게 지대하지만 출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극히 소수만이 선택하는 길이다. 그렇다면 출가의 의미는 그들에게만 해당하는 일이고, 범부들과는 무관한 것일까? 불법이 출가자만의 일이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혜능대사는 ‘불법은 세간에 있다(佛法在世間)’고 했다. 불법은 소수 출가자에게 국한될 일이 아니라 세상에 널리 퍼지고, 대중 속에서 실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경』에서는 “세간을 떠나서 보리를 찾는 것은 마치 토끼의 뿔을 찾는 것과 같다(離世覓菩提 恰如求兔角).”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출가의 의미도 출가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깊은 의미와 가르침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범부들도 출가정신을 배우고, 출가의 자세로 살아가면 비록 몸이 속세에 있더라도 그 삶이 거룩해지고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첫째는 욕망의 성을 넘어서는 초월이다. 태자는 높고 견고한 궁성을 넘어 출가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궁성이 상징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우리는 견고한 욕망의 성에 갇혀 살아간다. 따라서 성을 넘는다는 것은 욕망의 검은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가족을 떠나고 세속을 등질 수 없더라도 삶에서 욕망을 짐을 내려놓고자 노력하는 만큼 출가의 의미는 일상의 삶 속에서도 드러난다.
둘째는 고(苦)를 극복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이다. 태자는 생로병사라는 인간의 본질적 고를 직시하고 그로부터 단호히 벗어나고자 했다. 아무도 그 고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갔다. 어찌할 수 없는 한계이므로 수용해야 한다는 변명이 뒤따른다. 우리들도 고통을 초래한 상황에서 벗어날 시도를 하지 않고 관행적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 태도로는 영원히 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절벽같이 견고해 보이는 장벽일지라도 극복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바로 출가정신이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처럼 보이겠지만 은산철벽 같은 장벽을 넘어서려는 의지에서 비로소 새로운 길이 열리는 법이다.
셋째는 낡은 것을 혁파하는 결단이다. ‘새는 알을 깨고 태어난다.’고 했다. 새로운 길을 열고자 한다면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낡은 틀을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범부들은 주어진 조건과 상황에 굴복하고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자신을 속박하는 상황에 안주하면 영원히 노예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 태자는 고통을 초래하는 상황을 혁파하고자 하는 용기와 결단을 보여주었다. 태자의 출가는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결단의 용기를 일깨워 준다.
출가는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실천이며, 그런 실천을 통해 고통과 번뇌가 소멸된 열반의 기쁨을 얻는 삶이다. 봄날이 혹독한 겨울의 고통에서 꽃피는 계절로 가는 것이라면 출가재일에서 열반재일로 가는 3월 역시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으로 가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의 여정이다. 새봄과 함께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재앙도 사라지고, 일상의 건강함을 하루빨리 되찾는 환희의 새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운명을 책임질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는 일도 3월에 있다. 훌륭한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 역시 사회적 고통에서 벗어나 더불어 행복한 세상으로 가려는 것이므로 출가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다.


 

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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