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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문태준의 세상사는 이야기

씨앗을 잘 심고, 한가한 바보처럼 살라는 말씀

  • 입력 2022.05.28

입하가 지나고 나니 날씨가 훨씬 따뜻해졌다. 이제 여름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제주의 들판에는 보리가 다 익었고, 옥수수대는 장수처럼 크고 곧게 자라고 있다. 제주의 산간에는 보리 농사를 짓는 농가가 많고 또 메밀 농사를 짓는 집도 많다. 벌써 옥수수가 열린 밭도 있다. 

나는 요즘 해바라기들을 옮겨 심고 있다. 절에 가서 스님께 얻어온 해바라기 씨를 심어뒀는데 간격이 없이 너무 가깝게 촘촘하게 심어서 솎아 내거나 옮겨 심어야 할 형편이 되었다. 솎아내서 그것을 심어두면 올해 여름에는 해바라기가 하늘의 태양을 향해 자라고 마침내 노랗게 익어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기에 해바라기에 대한 내 기대는 각별하다.

해바라기에 대해 쓴 시로는 함형수 시인의 시 ‘해바라기의 비명(碑銘)’이 단연 압권이 아닐까 싶다. 시는 이러하다.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작열하는 태양을 향해 자라는 해바라기의 생명력을 자신의 사랑에 빗대고, 여름 하늘의 한복판으로 날아가는 노고지리를 자신의 꿈에 견준 수작이라고 하겠다. 아무튼 해바라기가 자라면 여름은 깊어간다.

초보 농부라 씨앗을 뿌리되 그 간격을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니 결국 손과 몸이 바쁘기만 하지만, 올해 하나하나씩 배워 놓으면 내년에는 그만큼 나아지는 것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오이 모종과 토마토 모종도 장날에 사서 옮겨 심었고, 또 지지대도 세워주었다. 상추와 방풍나물 잎은 꽤 자라서 수시로 뜯어 밥상에 올려놓고 있다. 내가 키우고 내가 직접 농사 지은 것을 내가 먹는 일의 보람이 꽤 크다.

해바라기 씨앗 얘길 했는데, 최근에 나는 스님으로부터 이른바 씨앗 법문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기의 씨앗을 잘 심어야 합니다. 좋은 씨앗들을 하나씩 심으세요. 믿음의 씨앗, 보탬의 씨앗, 축제의 씨앗, 광명의 씨앗을 심으세요. 밝음의 씨앗을 심으세요.” 

 

좋은 씨앗은 선근(善根)을 의미할 테다. 좋은 과보를 낳게 하는 착한 일을 의미할 테다. 믿음의 씨앗을 심으면 믿음의 과보를 낳게 될 것이고, 보탬의 씨앗을 심으면 부조의 이익을 받게 될 것이고, 축제와 광명의 씨앗을 심으면 화락하고 화평한 날을 빛처럼 받게 될 것이다. 스님의 말씀은 참으로 이해하기 쉬운 말씀이었지만, 이 말씀을 온전하게 생활에서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만 내가 심은대로 내가 거두어들이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하고 있다.

아래의 시도 늘 내가 새겨서 듣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진각혜심 스님이 제자인 요묵에게 이름을 지어주면서 썼다고 한다. ‘요묵(了嘿)’은 마음을 밝고 맑게 또 잠잠하게 고요하게 해서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음은 항상 명료하게 입은 함부로 열지 말라/ 한가한 바보처럼 살다보면 마침내 도를 얻으리니/ 수행자의 바랑은 송곳을 감추어 끝을 보이지 않아야/ 이른바 훌륭한 고수로서 진실한 소식 얻으리”

 

자신의 마음은 스스로 명료하게 하더라도 의중을 함부로 드러내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는 뜻도 있고,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는 뜻도 담겨 있을 것이다. 그저 “한가한 바보처럼” 살라고 권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또 송곳의 그 끝을 보이지 말라고도 가르치고 있다. 화내고 미워하는 마음 같은 것을 내놓지 말라는 뜻도 있는 듯하다.

“한가한 바보처럼”이라는 말은 참 멋지고 의미심장하다. 결코 가볍지도 않다. 나는 제주 시골에 살면서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잠깐 이런 마음을 얻기도 한다. 밥 먹는 일을 제외한 시간 동안에 밭에서 종일 풀을 뽑으면서, 또 밭에서 종일 돌을 캐내면서 이러한 마음을 얻기도 한다. 지난 해 겨울에는 종일 눈을 치우면서 이러한 마음의 상태를 경험했다. 그때의 일은 최근에 졸시 ‘큰 눈 오시는 날에’를 통해 표현했다.

 

“오늘은 눈이 하도 많이 내리시네/ 나는 종일 대 빗자루로 눈을 쓰네/ 눈을 쓸다 잠시 눈 그치면/ 모자와 웃옷에 쌓인 눈을 털고/ 툇마루에 앉아 숨을 고르네/ 그러다 눈발이 굵어지면/ 다시 대 빗자루를 들고 눈을 쓰네/ 아침부터 해 질 때까지 눈을 쓰네/ 밥 먹는 것 빼곤 눈만 쓰네/ 찾아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지만/ 눈을 쓸어 길을 내네/ 길 한편엔 눈사람도 앉혀놓네/ 낸 길은 금방 눈에 덮여 사라지네/ 대 빗자루는 곧 닳아 없어지겠네” 

 

평온하되 말을 줄이고 한가한 마음으로 사는 일 또한 쉽지 않겠지만, 다만 자꾸 떠올려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려고 하고 있다. 씨앗을 잘 심고, 한가한 바보처럼 살라는 이러한 말씀을 자꾸 떠올려 스스로를 경책하다보면 반걸음 한 걸음씩 향상(向上)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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