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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불화산책

백중 49재 입재, 참회의 표상 <시왕도>앞에 서다.

  • 입력 2022.05.31

제5대 염라대왕도, 210×120cm, 박경귀,2004년,조계사 극락전 봉안, 망자가 염라대왕 앞에 놓인업경대를바라보며 자신의 죄를 확인한다.

우리를 참회로 이끄는 시왕신앙
시왕신앙은 참회(懺悔)의 가르침을 근간으로 한 명부신앙이다. 참회의 참(懺)은 범어 크샤마(ksam)의 음역이고 회(悔)는 크샤마의 의역이다. 범어 크샤마(ksam)는 ‘용서를 빈다’, ‘뉘우친다’라는 뜻이 담겨있다. 불교적 의미에서 참회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시방삼세(十方三世)의 부처님에게 귀의하여 죄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종극에는 해탈에 이르기 위한 것이다. 시왕신앙이 우리나라에 시작된 시기는 〈삼국유사〉 ‘선율환생조’에 선율스님이 죽어 명부에 갔으나 다시 환생했다는 기록을 통해 신라 시대에도 시왕신앙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고려 시대 이래로 널리 행해지며 조선 시대에 이르면 민간신앙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되면서 한국적인 신앙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조선 시대 후기에 이르면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큰 전쟁을 겪으며 현세에 대한 불안감과 가족을 잃은 슬픔이 커져 시왕신앙은 더욱 확산되었다. 따라서 생전에 미리 추선공양하여 복을 닦음으로써 사후 지옥에 떨어지는 형벌을 면하려는 예수재나 망자의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천도재, 49재 등 여러 의식과 함께 시왕에 대한 신앙은 크게 성행하게 되었다.

제1 진광대왕ㆍ제2 초광대왕ㆍ제3 송제대왕ㆍ제4 오관대왕ㆍ

제6 변경대왕ㆍ제7 대산대왕ㆍ9 도시대왕제10 오도전륜대왕

선행을 권하고 악행을 벌하는 <시왕도> 
시왕도는 망자가 열 분의 명부 대왕 앞에서 심판을 받는 장면을 그린 불화이다. 현존하는 대표적인 시왕도는 1744년 조성하여 고성 옥천사에 봉안된 시왕도와 1775년에 조성하여 통도사에 봉안된 시왕도를 들 수 있다. 시왕은 명부 세계의 주재자로 진광·초강·송제·오관·염라·변성·태산·평등·도시·오도전륜대왕 등이다. 시왕도는 보통 10폭으로 나누어 조성했다. 10폭의 시왕도는 일반적으로 권선(勸善)과 징악(懲惡)의 모습을 반반씩 표현하고 있다. <제1 진광대왕도>에서 
<제5 염라대왕도>까지는 망자가 지옥문에 들어와 자신의 죄과에 대한 엄혹한 심판을 받는 장면이 표현된 징악의 내용을 담고 있고, <제6 변성대왕도>에서 <제10 전륜대왕도>까지는 공덕과 참회의 장면을 표현하며 권선의 공덕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다. 

《시왕경(十王經)》에 의하면 인간은 죽은 날로부터 7일 간격으로 7번, 그리고 100일, 1년, 3년 되는 날 등 10차례에 걸쳐 시왕들로부터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망자는 죽은 지 초 7일째 되는 날이 되면 진광대왕 앞에 도착하여 심판을 받게 되고 2주 차에는 초강대왕, 3주 차는 송제대왕, 4주 차는 오관대왕, 5주 차는 염라대왕, 6주 차는 변성대왕, 7주 차는 태산대왕 앞에 마주하며 심판을 받게 된다. 즉 망자는 죽은 후 49일 동안 7명의 명부 대왕 앞에서 심판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지 100일이 되면 평등대왕과 마주하게 되며, 죽은 지 1년이 되면 도시대왕 앞에, 마지막으로 3년째 되는 날에는 오도전륜대왕 앞에서 심판을 받고 육도 중에서 하나의 길로 보내지게 된다.

참회의 표상 <시왕도> 
시왕도의 내용을 <제1 진광대왕도>부터 차례로 살펴보자. 우선, 악행에 대한 징벌적 내용이 담긴 제1 진광대왕에서 제5 염라대왕까지 각 장면을 살펴보면,
<제1 진광대왕도>에는 망자가 처음 지옥의 문에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고 지장보살이 이들을 보며 안타까워하며 모두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제2 초강대왕도>에는 망자에게 죄의 경중을 확인시켜주는 모습이 담겨있다.
<제3 송제대왕도>는 도상의 근거가 되는 「시왕찬탄초」에 “사바세계에서 지은 살인, 도둑질, 음란, 망어 등의 죄업과 그리고 남도 모르는 묻어둔 곳의 악업 등…. 소상히 읽어서 들려주면 죄인은 다만 눈물로 흐느껴 운다.”라고 말한 경전의 내용이 표현되어 있다.
<제4 오관대왕도>에는 도상의 근거가 되는 「시왕생칠경」의 “죄의 경중이 어찌 정 때문이랴. 오르내림은 자신이 저지른 옛 인연이네”라고 한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 업칭이라는 저울이 등장한다. 저울로 망자의 죄행의 무게를 측정하여 형벌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제5 염라대왕도>에는 망자의 죄상을 기록한 업경대가 등장한다. 염라왕은 망자에게 업경대까지 보여주며 죄인이 본인의 죄를 꼼짝없이 인정하게 한다. 「시왕생칠경」에 “다섯 번째 칠일에 염라대왕 앞에서는 죄인의 간하는 소리 멈추니”라고 쓰여 있어 이러한 망자의 처지를 알 수 있다. 업경대 앞에서 죄인은 이제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되어 죄를 면해 달라는 간청을 못 하게 된다. 그러나 망자의 맞은편에는 지장보살이 망자를 구제하기 위해 다가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어 단죄의 모습만 표현한 것은 아니다.
이처럼 <제1 진광대왕도>부터 <제5 염라대왕도>까지는 망자의 악행을 심판하는 내용이 주로 표현되어 있다. 이어서 <제6 변성대왕도>부터 <제10 오도전륜대왕도>까지를 하나씩 살펴보면,
<제6 변성대왕도>는 대왕 앞에 유족이 추선공양을 올리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도상의 근거로 삼는 「시왕생칠경」에는 “날이면 날마다 공덕력을 바라보니 천당과 지옥은 잠깐 사이에 달려있네.”라는 경구가 있다. 이를 보면 <제6 변성대왕도>가 공덕 쌓기가 주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제7 태산대왕도>는 「시왕생칠경」에 “중음의 몸은 오로지 부모와 정분을 나누기를 구하네.”
라는 경구를 바탕으로 그 도상적 근거를 살펴볼 수 있다. 태산대왕을 만나는 날은 중음 불사의 마지막 날인 49일째로 이날은 모든 망자가 태어날 곳을 정하게 되는데 불화에는 망자가 인간으로 몸을 받길 간절히 원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제8 평등대왕도>는 「시왕생칠경」의 “남녀가 노력하여 공덕을 쌓으면 자비와 묘선으로 천당을 보게 되네.”라고 한 경구에서 도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불화는 극락의 모습을 관하는 망자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며 이는 망자가 공덕을 쌓고 추선 불사를 하면 구제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9 도시대왕도>에는 망자가 눈물로써 참회하며 자비를 구하자 지장보살이 망자를 구제하기 위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장면으로 참회의 신행이 필요함을 알려주고 있다. 
<제10 오도전륜대왕도>는 오도전륜대왕이 망자를 육도로 나누어 보내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렇게 10폭의 시왕도는 절반은 악행을 심판하고 나머지는 선행을 유도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악행에 대한 엄벌과 동시에 추선으로 구제의 희망을 품게 하며 우리를 참회로 이끌고 있다. 이러한 시왕도를 보면, 망자마저도 구제하고자 하는 부처님의 자비심의 폭과 깊이가 한량없음을 느끼게 한다. 

백중 49재 입재를 맞이하여 시왕도를 바라보고 자신을 참회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길 바라며 추선 불사로 망자와 함께 우리가 모두 성불하길 서원해 본다.


 

박경귀 (불교조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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