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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사색의 뜰

마음의 보시

  • 입력 2022.05.28

잡초는 그 자체로는 잡초가 아니다. 우주의 생명 잔치 속에 존재하는 우리가 이름 짓지 못한 생명체이다. 어쩌면 나 자신도 하나의 잡초일는지 모른다.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에서 보면 내 존재(存在)가 얼마나 미세(微細)함을 알게 된다. 내가 가진 지식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를 문득 깨닫고 자중해야 함을 느낀다. 우주의 실상은 무상(無常)한 것인데, 이 영원하지 않은 자연환경 속에서 영원한 삶을 살 것처럼 아등바등 댄다. 어제의 삶은 지나간 삶이고 오늘의 삶은 새로운 삶이라는데, 어제의 삶의 연장선 위에서 따지며 싸움질을 한다. 더 바랄 게 없는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향유하지만 마음은 늘 궁핍하다. 물질의 풍요 속에 양적으로는 축적을 했지만 따뜻한 가슴을 잃어버렸기에 허전한 것이 아닐까? 다시 따뜻한 가슴이 되어 정다운 관계회복도 조화로운 접촉도 만들어가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아들이 고 2학년 때 학교의 부름을 받고 갔다. 어머님이 어떤 분인지 뵙고 싶어 오라고 했단다. 존경하는 사람을 쓰라고 하였더니 나의 어머니라고 쓴 유일한 학생이었단다. 이유를 묻는 교사의 질문에 병든 아버지를 보살피며 저희를 키우시기 때문이라고 했단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며 집으로 왔다. 대학 생활 내내 과외를 하여 봉투째 갖다 주던 버팀목이던 아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았던 아들은 커가면서 변하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거리가 멀어져 갔다. 취업과 동시 서두르는 결혼을 난 반대를 했다. 입이 무거웠던 아들은 직장생활을 열심히 했다. 결혼을 서두르던 아들이 지금의 며느리를 데려왔을 때 더 이상 반대할 수 없었다. 결혼 후 아들은 점차 소원해졌다. 아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럴 때 마다 부처님을 가까이하며 나와 마주하는 모든 사람이 스승이라는 생각을 갖고 마음 보시를 하려고 노력했다. 자식은 애초 내 배를 빌려준 별개의 인간 개체인데, 내 소유로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별 것 아닌 것에 연연했던 자신이 부끄럽다.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다. 머물다 가는 이 세상에서 많이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고 싶다. 사랑도 미움도 내 마음에 달렸거늘…. 육바라밀 중 첫번째가 보시다. 이는 물질과 마음의 보시라고 안다. 마음 보시 중 언행(言行)이 속해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흉기(凶器)이다.

 

결혼 할 적에 친정에서 노상 이은상 님이 쓰신 백인필승(百忍必勝) 편액을 해줬다. 여덟 식구 시집살이는 눈물짓는 날이 많았다. 참는 연습을 참 많이도 했다. 백번 참으면 필연코 승리한다는 그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판단의 기준이란 오롯이 자기의 몫이다. 대중의 보편적인 기준에 맞을 때 잘잘못이 가려지는 것이니, 역지사지를 생각하며 언행의 보시를 하는 것이 불자의 덕목임을 명심해야겠다.

보석도 애초에는 돌이다. 수많은 손으로 연마하는 과정을 거쳐 빛나는 보석이 된다. 갈고 닦는 노력이 결국 수행이고 인품이 된다. 돌로 남을 것인지 빛나는 보석으로 될 것인지는 각자의 몫임을. 

잃어버린 가슴을 찾자! 가슴 속에 사랑을 심자! 봄바람이 유난히 차게 느껴지는 것은 아직도 애착을 끊지 못한 무명의 그림자 탓이리라.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심재화 (약사의료전법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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