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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남전스님의 새로운 신행이야기

남전스님의 새로운 신행이야기

  • 입력 2022.07.01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해우소, 강원고문화재 제132호 〈영월 보덕사 해우소〉


질문> 사찰에 자주 가는 편입니다. 가끔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벽에 진언이 쓰여져 있던데요 어떤 내용인지 알고 싶습니다. 또 절 화장실을 해우소라고 부르던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궁금합니다.

 

답변> 화장실을 지칭하는 이름이 절 집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잘 알려진 말이 해우소(解憂所)이지요. 해우소는 경남 양산 통도사 극락암에 주석하셨던 경봉(鏡峰) 큰스님께서 쓰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소변보는 곳에는 휴급소(休急所), 대변보는 곳에서는 해우소라고 쓰여진 나무패를 달아놓으라고 하셨답니다. 지금은 그 중에서 해우소라는 말이 화장실을 대표하는 용어로 널리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현상은 용변을 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그 자체를 큰 번뇌로 봅니다.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우리도 용변을 보지 못하고 속이 불편하면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경험을 합니다. 그러나 만약 아침에 용변 보는 일을 해결하면 하루 내내 다른 일을 하는데 아주 편안하지요. 용변 보는 일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큰 괴로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해우소는 몸속의 오물을 버리듯이 번뇌를 버린다는 뜻이 담겨져 있으니 아주 멋진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절집의 화장실 예법은 사실 아주 엄격합니다. 아무래도 대중들이 함께 사는 곳이고 특히 공동생활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칙에 해당하는 부분이기 때문이지요.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여러 가르침이 담겨져 있는 율장(律藏)에서도 부처님께서는 화장실 예절을 자주 강조하신 것으로 나옵니다. 용변 보는 장소에 대한 문제와 손을 깨끗이 씻으라는 말씀이 주를 이룹니다. 이것이 중국에서는 <선원청규(禪院淸規)>에 더해져 좀 더 구체화됩니다. 깨끗하게 사용하고, 화장실 안에서는 말을 하지 않고, 손을 청결하게 씻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 화장실은 미리 가라고 어른스님들께서도 자주 말씀하십니다. 급한 일을 만들지 말라는 것인데, 실제로 복잡한 절차를 걸친 뒤에 ‘볼 일’을 보게 하는 예법도 있습니다.

 

불자님께서 질문하신 진언이 바로 입측오주(入厠五呪)라고 해서 다섯 개의 진언입니다. 절에 가시면 화장실마다 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용을 소개해 볼까요? 일상에서도. 사용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화장실에 들어가서 외우는 진언인 입측진언입니다, ‘버리고 또 버리니 큰 기쁨일세. 탐진치 어둔 마음 이같이 버려 한 조각 구름마저 없어졌을 때 서쪽에 둥근 달빛 미소 지으리.  옴 하로다야 사바하(3번)’ 

그 다음은 뒷물하면서 외우는 진언인 세정진언(洗淨眞言)입니다. ‘비워서 청정함은 최상의 행복, 꿈같은 세상살이 바로 보는 길, 온 세상 사랑하는 나의 이웃들 청정한 저 국토에 어서 갑시다. 옴 하나마리제 사바하(3번)’

다음은 손을 씻는 진언인 세수진언(洗手眞言)입니다. ‘활활활 타는 불길 물로 꺼진다. 타는 눈, 타는 경계, 타는 이 마음 맑고도 시원스런 부처님 감로, 화택을 건너뛰는 오직 한 방편. 옴 주가라야 사바하(3번)’

다음은 더러움을 버리는 진언인 거예진언(去穢眞言)입니다. ‘더러움을 씻어내듯 번뇌도 씻자. 이 마음 맑아지니 평화로움 뿐. 한 티끌 더러움도 없는 세상이 이 생을 살아가는 한 가지 소원. 옴 시리예바혜 사바하(3번)’

마지막으로 몸이 깨끗해지는 진언인 정신진언(淨身眞言)입니다. ‘한 송이 피어나는 연꽃이런가. 해 뜨는 푸른 바다 숨결을 본다. 내 몸을 씻고 씻어 이 물마저도 유리계 푸른 물결 청정수 되리. 옴 바아라 놔가닥 사바하(3번)’

 

용변을 보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합니다. 또 뜻하지 않게 실수를 하거나 대중들이 생활하는 곳에서 남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는 요소가 항상 있기 때문에 진언(眞言)을 외우면서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데 그 뜻이 있다고 봐야 하겠지요. 스님들이 배우는 사미율의(沙彌律儀) <입측(入厠)>편에서는 그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남전스님 (조계사 선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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