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조계사 뉴스

조계사보 칼럼

[연재완료] 이미령의 본생경 이야기

갑질하는 자에게서 이기는 방법

  • 입력 2022.07.01

아주 오랜 옛날 인도 바라나시의 브라흐마닷타 왕은 어질게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었습니다. 공평무사하게 나라를 다스렸고 판결을 내려야 할 때에는 자기 마음대로 함부로 결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왕을 본받아 대신들도 똑같이 공명정대하게 나랏일에 임했지요. 

왕궁에는 송사를 다루는 곳이 있었는데 크고 작은 소송으로 하루라도 논쟁과 시비가 끊어지지 않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느라 핏대를 올리며 고함치는 사람들로 북적였지요. 하지만 임금과 대신들이 공평무사하게 판결내린 까닭에 소송 거리는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함부로 남을 모함하려거나 거짓으로 재판을 걸었다가는 오히려 큰 코를 다치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늘 소란스럽던 궁정의 재판소는 사람의 발자취가 끊어져버렸고, 재판소에 나간 대신들은 종일 앉아만 있다 귀가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재판소를 폐지하지 않으면 안 될 상태까지 되자 왕은 생각했지요.

“올바르게 나라를 다스리니 법정에 오는 사람들도 없어지고 소란도 사라졌다. 그렇다면 이제 내 자신의 부덕함을 한번 찾아보자. 만일 내 부덕함을 하나라도 찾아내면 그것을 버리고 덕스러움을 향하도록 노력해야 하리라.”

왕은 그 후로부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물었습니다.

“혹시 과인의 부덕함을 말해주지 않겠소? 나의 그릇된 행동을 어서 말해주시오.”

그런데 왕이 워낙 어질고 현명하고 올곧은 군주였기 때문에 궁정에서 왕의 부덕함을 말하는 자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군주의 덕스러움을 칭송할 뿐이었습니다. 행여 자신의 권위에 눈치를 보아 바른 소리를 하지 못하는 수도 있다고 생각한 왕은 궁정을 나가 도시와 시골마을을 다니며 자신의 부덕함을 지적해달라고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였지요. 왕의 부덕함을 말하기는커녕 군주의 덕스러움을 칭송하는 소리만 들었습니다. 왕은 가벼운 차림새로 마부 한 사람만 거느리고 변경에까지 갔지만 그곳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끝끝내 자신의 부덕함을 찾아내지 못한 브라흐마닷타 왕은 수레를 돌려 왕궁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한편 그때 이웃 나라 코살라의 말리카 왕도 나라를 잘 다스리고 있었는데, 자신의 부덕함을 말해줄 자를 찾았지만 궁정 안에서 찾지 못하자 지방으로까지 찾아 나섰습니다. 그렇게 변경 지역 좁은 길에서 두 왕의 수레가 마주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말리카 왕의 마부가 브라흐마닷타 왕의 마부에게 소리쳤지요.

“이 수레에는 코살라 국의 주인이신 말리카 대왕께서 앉아 계시오. 그대의 수레를 옆으로 비켜 세우고 우리 대왕마마의 수레에게 길을 양보하시오.”

그러자 이쪽 마부도 지지 않고 소리쳤습니다.

“어허, 무슨 소리! 이 수레에는 바라나시 국의 주인이신 브라흐마닷타 대왕께서 앉아 계시오. 그대의 수레를 옆으로 비켜 세우시오.”

서로에게 양보를 요구하던 마부 두 사람은 두 왕의 나이를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연장자의 수레에게 양보하자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두 왕의 나이는 같았습니다. 나아가 나라의 크기나 권력, 재산, 명성, 출생, 가문 등의 모든 것을 따져봤지만 두 왕이 똑같았습니다. 

바라나시 국 브라흐마닷타 왕의 마부가 곰곰이 생각한 뒤에 제안했습니다. 

“그렇다면 덕의 높이에 따라 길을 양보하기로 합시다. 그대 군주의 덕행은 어떠하신가?”

코살라 국 말리카 왕의 마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시로 읊었습니다. 

 

들어보시오.

내가 모시는 말리카 왕의 덕스러움을.

강한 자에게는 견고한 자를 맞세우고

유연한 자에게는 부드러운 자를 맞세운다.

선한 자에게는 선함으로 이기고

불선(不善)한 자에게는 불선으로 이긴다.

우리 대왕의 덕은 이와 같으니.

길을 비키시오, 마부여!

 

이 노래를 들은 브라흐마닷타 왕의 마부가 물었습니다.

“그것이 그대 군주의 덕이란 말이오? 그건 부덕(不德)이 아니오?”

그러자 말리카 왕의 마부가 물었습니다.

“아니, 이것이 부덕이라면 그대 군주의 덕은 어떠하오?”

이에 브라흐마닷타 왕의 마부는 시를 읊었습니다.

 

분노하는 자에게는 부드럽고 온화함으로 이기고

인색한 자에게는 보시로 이기며

거짓말 하는 자에게는 진실함으로 이긴다.

우리 대왕은 이와 같은 분이니, 

길을 비키시오, 마부여!

 

이 시를 듣고서 말리카 왕과 그 마부는 수레에서 내려서 길을 양보했습니다. 브라흐마닷타 왕은 말리카 왕에게 해야 할 선한 일과 하지 말아야 할 그릇된 일을 일러주고 난 뒤에 바라나시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두 왕은 한결같이 보시와 같은 덕행을 실천하고 훗날 목숨을 마친 뒤에는 천상에 태어났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말리카 왕은 아난다, 그 마부는 목갈라나였고, 바라나시 왕의 마부는 사리풋타였으며, 현명한 바라나시의 브라흐마닷타 왕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었습니다. (본생경 151번째 이야기)

 

부천 원미동에 자리한 김포쌀상회가 쌀과 연탄만을 취급하다가 물건을 다양하게 갖추더니 김포슈퍼로 상호를 바꿨습니다. 수완 좋고 인심 좋은 슈퍼 사장 내외는 동네 사람들에게 푸짐하게 떡도 돌리고 물건을 사러오면 덤을 얹어 주며 쏠쏠하게 수입을 늘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발걸음이 자연 그곳으로 쏠렸지요. 그런데 일백 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예전부터 과일이며 야채, 생선을 고루 갖춰놓고 장사를 해오던 형제슈퍼집은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동네 단골손님들을 죄다 놓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던 형제슈퍼가 슬그머니 쌀과 연탄을 취급하면서 본격적으로 두 슈퍼는 무한경쟁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상대 슈퍼에서 무엇을 얼마에 파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고, 단돈 10원이라도 더 싸게 팔았고 한줌이라도 더 얹어주었지요. 동네 사람들은 아침저녁으로 값이 내려가고 양이 많아지는 두 슈퍼 사이에서 행복한 비명을 질렀습니다. 급기야는 두 슈퍼가 손해를 보면서까지 물건을 팔기에 이르렀습니다. 제 살을 깎아 먹으면서 상대편 슈퍼가 먼저 문 닫기만을 기다리던 바로 그때 이런 물정을 눈치 채지 못한 외지인이 그 마을로 들어와서 두 슈퍼의 딱 한 가운데에 싱싱청과물 가게를 열었습니다. 이제 형제슈퍼와 김포슈퍼에게는 공동의 적이 생겼습니다. 두 슈퍼는 싱싱청과물 가게를 상대로 힘을 합쳤고 …. 

소설가 양귀자의 연작소설 『원미동 사람들』에 실린 「일용할 양식」의 내용입니다. 상대방에게서 승리를 얻기 위해서라면 자기가 어떤 손해를 보더라도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그야말로 치킨게임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상대가 내게 보여주는 바로 그 행위를 조금 더 세게 해보여서 기를 죽이려고 나서지만 이들은 공멸의 늪으로 향할 뿐입니다. 제3의 적이 등장한 덕분에 두 슈퍼는 싸움을 멈추고 합심해서 그를 쫓아냈지만 그 뒷맛은 몹시 씁쓸합니다. 저렇게까지 해서 장사를 해야 하나 싶어 고개를 설레설레 젓다가도 먹고 살기가 힘드니 저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없는 현실에 동네 사람들은 헛헛하게 입맛만 다실 뿐입니다.

강한 자에게는 더 강한 것으로 맞서 싸우고, 유연한 자에게는 더 부드러운 것으로 상대한다는, 그러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선다는 자기 군주의 이런 행위를 ‘덕’이라고 칭송하는 말리카 왕의 마부의 시를 음미하면서 자꾸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얻는 건 무엇일까? 그래서 무엇이 남을까?

사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이런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나는 예의를 갖추고 배려하고 양보하느라 하는데 상대방은 이런 나를 호구로 보고 짓밟고 올라서기 때문입니다. 행여 그런 상대방이 나보다 권력과 재력이 더 뛰어나면 나는 꼼짝 못하고 물러섭니다. 하지만 나 역시 언제까지나 억울하게 당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큰 소리 칠 수 있는 상대를 골라 그를 향해 내 온갖 서러움과 반발을 담아 그에게 똑같이 퍼붓습니다. 이른바 갑질을 당한 을이, 병에게 을질을 하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거지요. 아마 갑은 자기에게 당한 것을 더 약한 자에게 고스란히 쏟아 부어서 정신승리를 취하는 을과 병과 정 등을 보면서 사악한 승리의 축배를 들 것입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말리카 왕의 행동이 이런 반면, 브라흐마닷타 왕의 행동은 다릅니다. 그는 분노하거나 인색하기 짝이 없고 거짓말하는 자에게 ‘그와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 것’으로 상대합니다. 함부로 갑질 하는 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갑질 아닌 것’입니다. 상대방은 나를 모욕하고 겁주면서 내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지요. 분노에 휩싸여 맞장을 뜨거나, 분노에 휩싸였어도 대들지 못해 억지로 참는 모습을 보면서 상대방은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경전에서는 바로 이런 대결의 구도에서 자신이 맞서 싸울 상대를 잘 가려야 한다고 넌지시 일러줍니다. 내 마음에서 왈칵 하고 솟구치는 분노! 바로 그 분노가 가장 먼저 내가 싸워 이겨야 할 상대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 속 분노에 휘말리면 나는 정작 나를 분노케 한 상대방과 싸우기도 전에 내 분노에 지고 만다고 말합니다. 내가 내 분노에 졌는데 어떻게 저 사람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요?

진정한 승리는 자기 마음에서 똑같이 솟구쳐 오르는 분노나 인색, 거짓과 싸워 이기는 것이라는 거지요. 단순히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거나 “미운 놈 떡 하나 더 줘라!”라는 식의 해결책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무엇보다 먼저 싸워야 할 적수를 잘 찾아내서 그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점, 그래야 세상을 당당하게 활보하고 지극하게 행복한 경지인 천상으로까지 내 미래가 이어진다는 점을 본생경은 말하고 있지요. 코살라 국 왕이 겸손하게 수레에서 내려 브라흐마닷타 왕에게 길을 내어줄 만 하지 않은가요?

 

 

이미령 (경전 이야기꾼, 불교강사)

저작권자 © 미디어조계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