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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알아두면 쓸데있는 불교 공부

인욕을 잘하는 네 가지 방법

  • 입력 -0001.11.30

어느덧 임인년도 반환점을 돌아 7월로 접어들었다. 따가운 햇살 아래 무성하던 식물들도 고단한 모습이 역력하다. 세계 곳곳에서도 이상고온과 가뭄, 산불과 홍수 등으로 사람과 생명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한다. 타들어가는 들판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도 고통스럽고, 치솟는 물가를 지켜보는 서민들의 가슴도 고통스러운 시절이다.

 

 

사바세계와 인욕

모든 존재들은 자신의 생명을 지탱하는 것이 힘들고 괴롭다. 그래서 중생세간을 고해(苦海)라고 했다. 청년들은 취업과 주거 문제로 힘들고, 중년들은 가정을 지탱하는 것이 힘들고, 노년층은 건강과 빈곤으로 고통스럽다. 가진 사람은 가진 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고통스러운 것이 중생의 삶이다.

삶이 이렇게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 고통을 감내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생세간을 사바세계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바란 ‘사하로카(sahaloka)’에 대한 음사인데 ‘감인토(堪忍土)’로 의역된다. ‘견디고 인내해야 하는 땅’이라는 뜻이다. 참고 인내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고통을 감내하고 극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자질이 아닐 수 없다. 매 순간의 고통을 견뎌내기 때문에 생명은 지속될 수 있고, 어느 조직에서나 순간의 고통과 욕됨을 인내한 사람만이 살아남아 그 조직의 주인이 되는 법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뜻대로 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화가 나면 욕도 하고, 누군가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맞받아치고,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저 없이 사표를 쓰고 싶어진다. 하지만 욕됨과 고통을 참지 않는다면 세상은 갈등으로 넘쳐날 것이고, 싸움은 끊임없을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면 피해보는 것은 약자들이다. 따라서 인욕은 불합리함과 강자들의 불의에 대해 눈감고 참으라는 뜻이 아니다.

인욕은 오히려 약자들의 삶을 위한 덕목이며, 고난을 극복하고 주인공으로 거듭 나기 위한 자기 성장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고통과 욕됨을 참고 인내하는 인욕(忍辱)을 매우 강조한다. 보살의 여섯 가지 실천을 담고 있는 육바라밀에도 인욕이 포함되어 있다. 고난과 욕됨을 인내하는 것은 우리들의 삶에서 그만큼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아상을 버려라

고통을 견디고, 욕됨을 참는 자질이 이렇게 중요하지만 무조건 참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다. 고통스럽지 않게 욕됨을 참는 것이 불자의 지혜로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인욕을 잘 할 수 있을까? 첫째는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춘원 이광수는 인욕에 대해 “임이 주시는 것이면 때림이나 꾸지람이나 기쁘게 받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인욕을 배웠노라.”라고 했다.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은 모두 상대방 탓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예의 없는 말과 불손한 태도 때문에 화가 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행동의 당사자가 누군가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 춘원의 표현처럼 사랑하는 임이라면 설사 거친 말을 하고, 행동이 불손해도 기꺼이 받아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인욕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나의 마음이 어떤 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인욕을 잘 실천하려면 상대방을 자비심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되면 예기치 못한 행동을 해도 너그러이 이해가 되고, 그로 인해 화가 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인욕할 일도 없다. 모든 사람들이 친절하고 공손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상대를 이해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상처받지 않았기 때문에 참아야할 일도 생기지 않는다.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참아야할 상황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 최고의 인욕행인 셈이다.

둘째는 아상(我相)을 갖지 않는 것이다. 『금강경』에 따르면 부처님은 “과거 가리왕에게 몸을 베이고 찢길 적(割截身體)에 나라는 상[我相]이나 남이라는 상[人相]이나 중생이라는 상[衆生相]이나 수명에 대한 상[壽者相]이 있었더라면 반드시 화를 내고 원한을 품었으리라(應生嗔恨).”라고 하셨다. 아상을 비롯한 네 가지 상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인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리왕은 ‘Kali raja’의 음역으로 악독한 폭군을 뜻하는데, 카필라 국을 침략한 코살라 국의 유리왕을 비유한다.

유리왕이 침략했을 때 석가족이 겪은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가혹했을 것이다. 그 때 여래는 그런 참상을 겪고도 인욕할 수 있었던 것은 네 가지 상(相)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이는 욕됨을 참기 위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선입견이나 자기중심적 생각을 비워야 함을 뜻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한다’, ‘감히 너 따위가’ 등의 생각이 있다면 우리는 쉽게 모멸감을 느끼게 되고 분노가 폭발한다. 세상살이는 나의 생각처럼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왜곡된 생각을 비우면 마음이 고요해진다는 것이 ‘이상적멸(離相寂滅)’의 가르침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무아를 사유하라

셋째는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것이다. 『화엄경』 「십행품」에는 보살의 열 가지 행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 세 번째가 인욕에 관한 것이다. 경에 따르면 보살이 인욕행을 실천할 때 말할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이 몰려와 보살을 핍박한다. 그들은 ‘선하지 않은 말’, ‘심히 역한 말’, ‘차마 들을 수 없는 말’ 등을 퍼부으며 보살에게 욕하고, 몽둥이로 박해를 가한다. 이런 고초를 만났을 때에도 보살은 그들과 싸우는 대신 자신의 허물을 반성한다는 것이다.

즉, “내가 이만한 고통으로 마음이 흔들린다면, 자신을 조복하지 못하고, 자신을 수호하지 못하고, 스스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스스로 닦지 못하고, 스스로 안정하지 못하고, 스스로 고요하지 못하고, 스스로 아끼지 못하고, 스스로 집착하게 될 것이니 어떻게 남의 마음을 청정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자신을 성찰하라는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도발당하고 핍박받을 때 불같이 화를 내며 맞서 싸우는 것이 중생이다. 하지만 보살은 그런 상황을 만났을 때 자신의 어떤 점이 그런 일을 초래했는지를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을 탓하고, 그들과 맞서 싸우는 것은 쉬운 방법이지만 고통을 더욱 키우는 방식이다. 따라서 보살은 모욕과 역경을 만났을 때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성찰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면 저절로 인욕이 되기 때문이다.

넷째는 육신의 실체 없음을 사유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잘못이 없는데도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잘못이 없는데도 상대가 나를 모욕하고 핍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일을 당할 때 보살은 ‘나[我]’라고 믿고 있는 육신이 실체는 없는 것임을 되새기라고 했다. 즉 “이 몸은 공적(空寂)하여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으며, 진실하지 않고, 성질이 공하여 둘이 없다. 괴롭고 즐거움이 모두 없는 것이며, 모든 것이 공(空)한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귀로 욕설을 들었으나 모욕적인 말은 사실 음파의 파장에 불과하다. 그런 말을 듣고 모욕적이라고 받아들이는 것도 분별심에서 나온 것이다. 상(相)을 갖지 않는 것이 정신적인 문제라면 육신의 공적을 통찰하는 것은 유신견(有身見), 즉 육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다. 육신을 나라고 실체화하면 그 육신으로부터 오는 갖가지 정보에 과잉반응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삶이 괴로워진다. 따라서 육신이 곧 자기라는 허망한 생각을 떨쳐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오온(五蘊)으로 구성된 육신이 공함을 꿰뚫어보면 모든 고통과 액난으로부터 벗어난다는 「반야심경」의 말씀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 역시도 무아(無我)를 사유함으로써 자아에 대한 헛된 집착에서 생기는 고통을 없애는 가르침이다. 이 육신이 곧 나이고, 분별심이 나라는 생각이 강할수록 고통은 크고 상처는 깊어진다. 따라서 그런 생각을 내려놓아야 고통을 덜 받게 되고, 상처도 덜 받게 된다.

이상과 같은 가르침은 자신을 부정하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온갖 부정적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을 기르고, 주변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마음을 위한 것이다. 물론 『화엄경』에서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함이라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즉 내가 갖가지 고통을 당했을 때 위와 같은 가르침을 바탕으로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은 자신의 행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살이 인욕하는 본질적 이유는 “중생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이며, 중생을 안락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마치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가 온갖 험한 일을 당해도 고통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처럼 바른 생각을 가지면 인욕을 실천할 수 있고, 인욕하면 내가 행복해 지는 것은 물론 타인도 이롭게 된다. 욕됨을 참는다는 것은 역경에 대한 회복탄력성을 강화하는 것이며, 부정적 상황에 무너지지 않는 유연함을 기르는 것이다. 잘 참을수록 나는 더욱 강한 존재로 성장하며, 참아야 할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마음을 쓸수록 지혜로운 삶이 된다.

 

 

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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