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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불화산책

백중 우란분재를 재현한 <감로도>, 인류 공존의 가치관 담겨

  • 입력 2022.07.28

아귀 상을 부각시켜 표현된 국청사 감로도, 1755년 조성, 파리 기메 미술관 소장


백중, 널리 베풀어 

고통받는 지옥 중생을 구제하는 날

백중의 유래는 『목련경(目連經)』과 『우란분경』에서 찾을 수 있다. 『우란분경』을 보면 석존의 10대 제자 중 신통 제일의 목건련 존자가 자신의 어머니가 아귀(餓鬼)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부처님에게 어머니를 구제할 방법을 청원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에 석존은 “안거를 마치고 청정해진 스님들에게 밥 등의 음식과 5가지 과일, 향과 의복으로 공양하라”라고 일러주고 있는데 이를 목련존자가 실천하며 유래되고 있다.

 

목련존자는 인도 상류계층의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다. 그는 상속재산의 3분의 1 정도만 자신이 갖고 나머지는 어머니께 드리며 그중 2분의 1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사용하여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의 부탁을 어기고 가난한 사람의 몫까지 자신이 사용하였다. 어머니는 생전에 이렇게 욕심 많은 삶을 살았고 이로 인해 사후 지옥에 빠져 아귀가 되었다. 목련존자는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의 말씀대로 청정한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렸고 그 공덕으로 어머니는 아귀도에서 구제되어 고통을 면하게 되었다.

 

우란분재는 이렇게 목련존자가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음식 공양을 올리며 유래되었고 매년 안거가 끝나는 음력 7월 15일 백중 날에 우란분재를 올렸다. 즉, 백중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고통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해 우란분재를 올리는 날인 것이다.

 

 

감로도, 사랑하는 사람을 구제하고픈 

간절한 염원의 발현

감로도는 백중 날 올리는 우란분재 장면을 생생히 묘사한 불화이다. 우란분재의 연원은 『불설우란분경(佛說盂蘭盆經)』에서 비롯되었다. 경에는 목련존자가 아귀 지옥에서 고통받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해 우란분재를 올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감로도는 이러한 내용을 주요 모티브로 삼아 모친 구제 이야기를 실감 나게 스토리텔링 한 불화이다. 그래서 불화에는 갖은 음식과 꽃으로 장엄한 커다란 감로단이 묘사되어 있고 아귀 지옥에서 굶주림의 고통을 받는 고혼과 이들을 구제하는 장면이 생생히 재현되어 있다. 이렇게 감로도는 사랑하는 사람을 구제하려는 간절한 염원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발현되었다. 감로도를 조성한 화가는 목련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이 불화를 보며 사랑하는 고혼을 구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길 바라며 그렸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감로도는 20세기 중반까지 조성된 것을 기준으로 약 70점이 남아 있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감로도는 1589년에 조성되었고 현재 일본 약선사(藥仙寺)에 소장되어 있다.

 

 

공존의 메시지로 인류공영의 가치 담아낸 <감로도>

감로도는 일반적으로 크게 세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면은 위에서 아래로 구성되며 이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상단이라 부르는 화면 제일 위쪽에는 여러 부처님과 보살이 강림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고 화면 중간 부분의 장면은 중단으로 두 가지 장면이 표현되고 있다. 가장 많이 그려진 장면은 목련존자가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해 우란분재의 감로단과 그 앞에 고통받는 아귀의 모습을 표현한 형식이고 그 다음으로 많이 표현된 형태는 감로단 없이 아귀 상만을 크게 표현한 형식이 있다. 마지막으로 화면 아랫부분의 하단 장면은 현실 세계에서 갖가지 재난을 겪는 삶의 모습과 지옥에서 고통받는 고혼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우리나라 감로도는 크게 두 가지 형식의 도상을 취하고 있다. 첫째, 우란분재를 중요시하며 감로단을 표현한 형식이다. 이 형식은 갖은 음식과 꽃으로 성대히 차려진 감로단이 주요 장면으로 아귀 지옥에서 고통받는 고혼을 구제하려면 우란분재를 올려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하는 도상이다. 둘째, 고통받고 있는 아귀의 현실을 부각하기 위해 감로단 없이 굶주림에 고통받는 아귀의 모습을 크게 표현한 형식이다. 이 형식은 아귀를 화면 중앙에 크게 묘사하고 주위에는 아귀의 생전 모습이나 현실 세계의 삶의 모습을 표현하며 아귀도에 오게 된 업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아귀 지옥에서 구제하는 것이 만만치 않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 때문에 어머니를 구제하고자 하는 목련존자의 열망은 더욱 크게 느껴지는 도상이다. 

 

현존 가장 오래된 감로도가 우란분재 장면이 표현된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1589년 조선 시대 조성되어 현재 일본 약선사에 소장되어 있다. 2년 뒤인 1591년 조문(祖文)이 그린 감로도의 경우도 이러한 형식을 취한 대표적인 감로도이며 현재 일본 조전사(朝田寺)에 소장되어 있다. 이외에도 1649년 충남 보석사에 봉안된 <보석사 감로도>와 1723년 봉안한 <해인사 감로도>, 1790년 봉안한 <용주사 감로도>(개인 소장), 1832년 봉안한 <수국사 감로도>(파리 기메 박물관 소장), 1892년 봉안한 <봉은사 감로도>, 1939년 봉안한 <흥천사 감로도> 등이 이러한 형식을 갖춘 대표적인 감로도이다. 이러한 형식은 약 3백 년 넘게 꾸준히 나타나고 있어서 우리나라 감로도의 보편적 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감로단 없이 아귀를 크게 표현한 형식은 1661년 조성된 <순치 18년 명 감로도>가 가장 오래된 사례이며 이외에도 1724년 봉안한 <직지사 감로도>, 1755년 금강산 건봉사에서 조성하여 경기 광주의 국청사에 봉안하였지만, 현재 프랑스 기메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청사 감로도>, 1758년 봉안한 <안국사 감로도>, 1765년 봉안한 <봉정사 감로도>, 18세기 중엽 조성되어 현재 선암사에 봉안된 <선암사 감로도>와 1791년 봉안한 <관룡사 감로도>(동국대박물관 소장), 1792년 봉안한 <은해사 감로도>(개인 소장) 등으로 18세기에 중점적으로 조성되었다. 

 

우리나라 감로도는 대체적으로 이 두 가지 형식으로 그려졌으며 18세기에는 이 두 형식이 동시에 비슷한 비중으로 조성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 시기 조선 사회는 유교를 가치관으로 하는 사대부와 불교를 믿는 부녀자·서민 등,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하고 있었다. 특히, 상업의 발달로 하층 계급의 신분 상승이 이뤄지고 이들이 누리는 문화가 사회적 공감을 얻으며 다중적 문화구조가 가능했던 시기였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던 사회적 분위기는 두 가지 형식의 감로도의 도상을 비슷한 비중으로 조성하게 한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두 가지 형식에는 각각 불교와 유교의 가치관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목련 존자의 효심을 느끼게 하는 아귀 중심의 형식은 효를 중시하는 유교적 가치관이 반영된 도상이며, 우란분재를 나타내는 감로단을 표현한 형식은 윤회의 사슬을 끊어 해탈에 이르길 바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반영된 도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18세기 감로도는 불교와 유교의 가르침을 각각 담아 서로 다른 가치관을 수용하며 공존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특히, 하단의 재난 장면은 조성 시기에 따라 그 내용이 달리 표현되고 있는데 초기의 감로도는 아귀의 생전에 지은 죄업이 주로 표현되었지만 후대로 가면서 당대의 일반적 삶의 현실을 주로 표현하며 공감대를 얻고 그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감로도는 무소유의 수행자나 가난하여 배고픈 자들에게 갖은 음식을 차려 공양하면, 즉, 우란분재를 올리면 그 공덕으로 고통받는 자들을 구제할 수 있다는 부처님의 연기의 가르침이 담겨 있는 불화이다. 이는 청빈한 자를 후원하고, 고통받는 자의 손을 잡아주는, 인류 공존과 공영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내포된 것으로, 감로도는 이러한 가치관을 상징하는 것이다.

 

감로단이 표현된 현존 가장 오래된 감로도, 1589년 조성, 봉안처 미상, 일본 약선사 소장


줄타는 광대 옆에 죽음의 그림자를 묘사한 모습,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상징, 

의겸 작, 운흥사 감로도 하단 현실 세계부분, 1730년 조성

 

일제시대 거리 풍경을 표현한 모습, 흥천사 감로도 하단 부분, 1939년 조성


 

 

 

 

박경귀 (불교조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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