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러하듯이 시간은 강물과 같아서 거침없이 흘러간다. 그 흘러간 시간 속에서 어느새 칠순을 바라보고 있다. 눈은 아른거려서 좋아하던 글쓰기도 멈추고 책보기도 멈추고 있으나 귀는 열려 있어서 듣는 건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그럴지 모른다. 잘 안보이면 돋보기도 다초점 안경도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그렇지만 그것 또한 나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잠시는 착용이 가능하나 오래 쓸 수가 없다. 평소에도 어지럼증이 있어서 가만히 있어도 어지러운데 그것들을 착용하면 어지러워서 멀미가 난다.
그러나 세상이 참으로 다양해져서 그야말로 화엄세상이다. 올바른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얕은 소견으로는 그러하다. 핸드폰 하나로 인터넷에 접속하면 그 속에서 예불도 드리고 강의도 들을 수 있다. 나의 옛날로 돌아가면 상상하기도 힘든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긴 밤을 잠 못이뤄 뒤척이다 창문 너머로 희미한 빛이 비치고 이런저런 소리가 들려오면 천근같은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켠다. 아! 내가 기다리던 여명의 시간이다.
온 육신의 관절을 정성들여 풀고 눈을 뜨면 밖은 빛이 쏴아 내 눈으로 들어온다. 살아 있구나, 다행이다. 오늘도 좋은 아침!!! 삶은 생동감 있고 기대감에 차 있었지만 산다는 게 만만치는 않았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잘 아팠고 그래서 눈뜨고 빛이 눈으로 들어오면, 아! 살아있네, 열심히 살자! 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중 봄이 가장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봄이 오는 게 싫었다.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는 내 눈을 괴롭혔고 어린게 몸은 천근만근이라 오래 서 있으면 쓰러지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교장 선생님께서 저 학생은 조회시간에 나오지 말고 교실에 있으라고 담임 선생님께 지시를 내렸을까.
그래서 봄이 더욱 싫어졌고 나에게 사월은 참으로 잔인한 계절이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40대 중후반쯤 불교 기본교리를 배우던 때가 봄이었다. 기초교리 수료식이 초파일을 앞두고 우리 기수는 해인사로 수련회를 떠났다. 해인사 입구에 도착하니 온 산이 굽이굽이 오색연등이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그 장엄함에 소리를 질렀다. 그야말로 불국토로 우리를 안내하는 모든 부처님께 감사했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가 온 마음을 다 바쳐 부처님께 귀의했던 순간이다. 그 순간부터 나의 세상은 부처님을 만난 세상과 부처님을 만나지 않은 세상으로 구분 지어졌고 나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어떤 종교를 만나도 알 수 없었던 희열을 느꼈고 배움과 신행의 나날 속에 긍정과 배려와 정의를 깨달아 갔다. 애써서 쎈척하지 않아도 부처님과 함께하는 이번 생이 얼마나 복된가 실감하며 살고 있다.
이제 봄이 와도 여전히 몸은 고달프지만 무심하게 바라볼 뿐 애쓰지 않는다. 그렇지만 욕심이 있다면 <부처님오신날> 부처님께 연등공양을 올리고 이번 생을 마감하게 하소서! 소망해 본다.
이 세상에 사람이라는 귀한 인연으로 와서 불법을 만났으니 이 얼마나 복된 인생인가!
현재가 과거가 되고 미래가 현재가 되는 끝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시간여행자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