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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는 왜 그리 달렸을까
삽화 | 견동한
아주 오랜 옛날, 부처님은 당시 보리살타(보살)의 신분으로서 동물의 왕 사자로 태어나서 밀림에서 살고 있을 때 일입니다. 인도 서쪽 바닷가 근처에는 벨루바 나무와 야자나무가 한데 뒤섞여 있는 울창한 숲이 있었지요. 그 숲의 커다란 벨루바 나무 아래에 토끼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푹신한 야자나무 잎사귀 자리에 누워 있던 토끼에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땅이 꺼지면 나는 어디로 달아나야 할까?’
마침 그때 잘 익은 벨루바 열매가 야자 잎사귀 위에 떨어졌습니다. 토끼는 순간 자리에서 튀어 일어났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지? 혹시 땅이 꺼지는 소리인가?’
하필 땅이 꺼지면 어찌될 것인지를 떠올린 그 순간 근처에서 난 수상한 소리에 토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땅 속으로 파묻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정신없이 달아나고 있는데 이 모습을 보고 다른 토끼가 물었습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묻지 마. 피해, 어서!”
덩달아 무작정 따라가며 계속 다그쳤습니다.
“왜 그래? 왜 이렇게 뛰는 건데?”
“땅이 꺼졌어. 세상이 무너지고 있어.”
이 말을 들은 토끼도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습니다. 이 모습을 본 다른 토끼들이 덩달아 뛰기 시작했지요.
“뛰어, 뛰어! 달아나, 어서!”
결국 10만 마리나 되는 토끼들이 한꺼번에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그 광경을 사슴 한 마리가 보더니 덩달아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 광경을 돼지가 보고 같이 달렸고, 그 모습을 차례로 소, 물소, 코뿔소, 호랑이, 사자 그리고 코끼리가 보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도망치듯 뛰어가는 거야?”라고 서로에게 물었다가 “땅이 꺼지고 있대.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는 거야”라는 대답을 듣고 덩달아 내달리기 시작했지요. 결국 1유순(약 10킬로미터)에 걸쳐 살고 있는 모든 짐승들이 걸음아 날 살려라 정신없이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때 사자로 태어난 보살은 그 엄청난 광경을 보고 물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요?”
“빨리 달아나세요. 땅이 꺼지고 있대요. 세상이 무너지고 있대요.”
동물들이 이렇게 외치자 보살이 생각했습니다.
‘땅이 꺼진다고? 세상이 무너진다고? 그렇게 쉽게?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럴 리 없다. 저들은 틀림없이 뭔가 잘못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동물들은 몰랐습니다. 무작정 앞으로 뛰어가고 있지만 머지않아 바닷가 낭떠러지를 만나게 되리라는 사실을. 보살의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저러다 다들 낭떠러지로 떨어질 거야. 일단 저들을 멈춰 세워야겠다. 그런 뒤에 내가 자세하게 밝혀봐야겠다.’
사자는 동물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앞질러 달려갔고 언덕에 올라 크게 세 번 포효했습니다. 세상을 뒤흔드는 우렁찬 소리에 동물들이 깜짝 놀라 멈춰 섰습니다. 그러자 사자인 보살은 그 무리 속으로 들어가서 물었습니다.
“땅이 꺼지고 세상이 무너지고 있어서 달아난다고 했는가?”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본 자가 있는가?”
동물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운데 가장 늦게 뒤따라 달린 코끼리를 지목했습니다.
“코끼리들이 알고 있을 겁니다.”
코끼리에게 물어보니 그들은 ‘우리도 잘 모릅니다. 사자들이 알 겁니다’, 사자에게 물어보니 ‘호랑이들이…’, 호랑이에게 물어보니 ‘코뿔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차례로 되짚어 올라가서 제일 먼저 뛰기 시작한 토끼에게까지 이르게 되었지요.
보살이 토끼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왜 세상이 무너진다고 외쳤는가?”
“제가 봤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보았지?”
토끼는 야자 잎 아래에 누워 있으면서 ‘만일 이 땅이 꺼지고 세상이 무너지면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라고 생각했던 일, 바로 그 때에 땅이 꺼지는 ‘툭’ 소리를 들었고 무조건 도망쳤던 일까지를 낱낱이 고하였습니다. 보살은 생각했지요.
‘혹시 나무 열매가 떨어져서 낸 소리를 듣고 이 토끼가 땅이 꺼진다고 믿어버린 건 아닐까. 토끼가 도망치자 이렇게 다들 그 말만 믿고 연달아 내달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소리가 났다는 그 곳을 한번 살펴봐야겠다.’
사자는 동요하고 있는 동물들에게 잠시 기다려 줄 것을 부탁하고 토끼를 자기 등에 태웠습니다. 바람처럼 빠른 속도로 토끼가 머물던 야자 숲에 이르러 토끼를 내려준 뒤에 말했지요.
“자, 어딘지 가리켜 보아라. 땅이 꺼지고 무너져 내린 곳이 어디지?”
토끼는 덜덜 떨면서 말했습니다.
“일단 다른 곳으로 피하면 안 될까요?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겁내지 마라. 너를 겁주는 게 여기 없지 않은가?”
사자의 채근에 토끼는 벨루바 나무 있는 곳으로 주춤주춤 다가가다가 발걸음을 멈추고서 말했습니다.
“바로 저깁니다. 저기가 소리가 난 곳입니다.”
토끼가 가리키는 곳으로 다가간 사자는 야자 잎 위에 잘 익은 벨루바 열매 하나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자의 추측이 맞았습니다. 땅이 꺼지거나 세상이 무너지는 일 같은 건 없음을 확인하고서 토끼를 등에 태우고 동물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와서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그대들을 불안하게 하는 그런 일은 없소.”
이렇게 동물들을 안심시켜주고 격려해준 뒤 사자는 자기 동굴로 돌아갔습니다.
만일 그 때 보살인 사자가 없었다면 토끼를 비롯한 모든 동물들은 바다로 떨어져 죽어버렸을 것입니다. 보살(사자)은 이렇게 시를 읊었습니다.
벨루바 열매가 떨어져 낸 소리에
토끼가 달렸구나.
토끼의 말을 듣고
동물 무리도 두려움에 떨었다.
어떤 말을 들으면 이치에 맞게 생각해야 하거늘
남의 말을 무조건 따르며
다른 이의 외침을 일단 믿고 보는 어리석은 자는
남을 맹신하는 사람일 뿐이요,
규율을 지키며
지혜로써 기꺼이 미혹을 가라앉히고
온갖 악을 다스려 멀리 떠나는 현자는
남의 말을 맹신하는 자가 아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뒤에, “사자로 태어난 보살은 바로 전생의 나였다.”라며 말씀을 끝맺었습니다.”
(본생경 322번째 이야기)
나그네쥐라고도 불리는 레밍을 아시나요? 레밍은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북아메리카, 유라시아 지역에 많이 서식하는 들쥐 종류로, 다리가 짧고 부드러운 털을 가졌습니다. 이른바 집단자살로 유명한 동물입니다. 앞에 있는 녀석이 달리기 시작하면 그 뒤를 이어 집단으로 함께 내달리다 절벽으로 떨어져 죽는 현상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토끼에서 시작된 동물들의 내달리기가 마치 무작정 앞으로 내달리다 낭떠러지로 다 같이 떨어져 죽는 레밍 같습니다.
나무 열매 하나가 떨어지며 낸 소리에 지레 겁먹고 도망치는 모습은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한 불안에 휩싸여 소중한 현재를 오직 ‘미래 대비용’으로만 날려버리는 현대인과 다르지 않습니다.
토끼는 세상의 종말이 찾아온 현장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하며 내달렸겠지만 달리는 내내 두려움은 점점 더 커져갑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미래(未來)’라 불리건만 유약한 존재에게 미래는 늘 불행한 파국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마치 불행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합니다. 그러니 아주 작은 조짐만 보이면 “그것 봐! 난 이제 죽었어!”라며 절망합니다.
가장 먼저 달아나기 시작한 토끼는 그렇다 쳐도, 덩달아 두려움을 품고서 앞으로 내달리는 다른 동물들은 어떤가요? 실제로 땅이 꺼지고 있다면 걸음아 날 살려라 달아나야겠지만 자기 눈으로 보지도 않고 자기 귀로 듣지도 않고서 그저 누군가가 ‘그렇다더라’라는 소문만을 듣고서 달아나고 있습니다.
제일 앞에 서 있는 자가 달리기 시작하면 덩달아 같이 내달리고, 무작정 달려가는 바람에 그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하니 이보다 딱한 일이 없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간다’는 속담은 긍정적인 뉘앙스를 지니고 있지만 레밍의 집단자살(이것을 레밍효과라고 부르지요)은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뛰는 격이요 그러다 다 같이 망하고 만다는 비극적인 결말을 담고 있습니다. 남의 말만 듣고 맹신하는 자들의 최후는 그렇습니다.
토끼처럼 작고 여린 동물은 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행여 맹수에게 잡아먹히지는 않을까, 애써 모은 먹이를 빼앗기지 않을까, 내 보금자리가 무너지지는 않을까…. 본생경 속에서 이런 두려움에 노심초사하는 토끼가 그대로 우리들 사람의 현실입니다. 어떻게 하면 두려움에서 풀려날 수 있을까요? 방법은 따로 없습니다. 내 스스로를 윤리적으로 잘 다스리는 일, 악을 다스려서 악에서 멀리 떠나려고 노력하는 일, 조금 더 눈을 크게 뜨고 나 혼자만의 입장에서 한발자국 걸어 나와 보는 일. 바로 이것이 뜬 구름 같은 세상 소문에 휘둘리지 않고 편안하고 당당하게 내 삶의 주인공이 되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생경에서는 말합니다.
혹시 어떤 판단으로 자신이 쭉 그에 맞춰 반응하고 행동해 왔다면 한번 정도는 최초의 그 일이 벌어진 그 때와 그 장소로 돌아가서 진지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토끼를 등에 태우고 달려간 사자처럼 말이지요. 내 인생을 온통 흙탕물로 만들었다고 여겼던 그 진원지가 어쩌면 너무나 싱겁기 짝이 없는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이 소중한 삶을 착각에서 비롯된 두려움과 절망으로 날려버리는 것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해탈한 성자조차도 그 해탈의 경지를 제 눈으로 또렷하게 보는 해탈지견(解脫知見)을 말하겠습니까.
이미령 (경전 이야기꾼, 불교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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