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조계사보 칼럼
<영산회상도>, 대웅전에 ‘영산정토’를 현현시키다.
항마촉지인을 한 석존의 모습을 담은 1693년 작 흥국사 대웅전 영산회상도, 458x407cm, 보물578호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석존을 상징한
<영산회상도>
사찰에 가면 대웅전이라는 전각을 쉽게 볼 수 있다. ‘대웅(大雄)’은 위대한 영웅’이라는 뜻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높이는 호칭이며 ‘우리를 구제하기 위해 우리 곁으로 오신 큰 영웅’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기 때문에 사찰의 가장 중심적인 장소에 있으며 일반적으로 규모가 크고 형태도 화려하다. 이렇게 사찰의 가장 중심적인 건물인 대웅전에 봉안하는 불화가 <영산회상도>이다. 여기서 ‘영산회상(靈山會上)’은 석존께서 영축산에서 펼치신 법회를 말하는 것으로 <영산회상도>가 봉안된 대웅전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영산회상에 참여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이러한 믿음을 발원하며 불화는 조성되었다.
우리나라 영산회상도는 조선 시대부터 나타나며 석존을 중심으로 8대 보살과 10대 제자, 호법선신인 대범천과 제석, 사천왕과 팔부중 그리고 화불(化佛) 등, 작은 신체의 수많은 대중이 석존을 둘러싸며 구성하고 있다. 즉, 압도적 크기의 설법 석존 상을 중앙에 배치하고 주변에 법문을 듣기 위해 운집한 수많은 대중의 모습을 작게 배치하여 석존의 설법 장면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구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을 한 우리나라 영산회상도 도상은 상원사 문수동자 복장에서 출토된 조선 초기 1404년 작 판본 <묘법연화경 변상도>에서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영산회상도> 도상의 핵심은 설법인을 취하고 설법하는 석존과 이를 청취하는 수많은 대중의 묘사로, 이러한 도상의 시원은 ‘불 설법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불 설법도’의 초기 사례로 1~2세기 무렵 조각된 것으로 추정하는 인도 간다라 페샤와르(Peshawar)의 모하메드 나리(Mohammed Nari)에서 출토된 <불설법부조>를 들 수 있다. 이 부조에 표현된 석존은 지권인형 설법인을 취하며 설법 상을 하고 있어 <영산회상도>에서 석존이 시무외·여원인형 설법인이나 항마촉지인을 취하는 모습과 차이를 보이지만 중앙의 거대한 부처님을 중심으로 작은 크기의 수많은 대중이 부처님을 에워싸고 있는 구도는 서로 비슷하다. 중국으로 넘어오면 북량 시기(401~439) 조성된 둔황 막고굴 제272 굴의 대승설법 장면을 그린 벽화가 있다. 시무외인을 취한 불상과 대승 불법을 듣기 위해 부처님 주변으로 운집한 대중의 구성은 <영산회상도>와 유사하다. 수 대(581~618) 조성한 둔황 막고굴 제419 굴의 벽화와 불상도 주목되는데, 불상은 시무외인을, 벽화에는 수많은 대중이 부처님을 에워싸며 군집하고 있어 일반적인 ‘불 설법도’ 도상과 같지만, 불상 좌우에 가섭과 아난 존자의 입상을 배치한 것은 일승을 지향하는 『법화경』의 영향을 추정하게 하는 구성으로 법화경의 사상을 담아낸 <영산회상도>에 보다 근접한 도상 형식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영산회상도>와 간다라 <불설법부조>는 대규모의 대중들이 운집한 가운데 대승교법을 설법하는 석존의 모습을 묘사한 측면에서 상호 공통성이 있고, 이 때문에 <영산회상도> 도상의 시원을 ‘불 설법도’에서 찾게 된다.
중앙의 거대한 부처님을 중심으로 작은 크기의 수많은 대중이 부처님을 에워싸고 있는 구도를 한 불설법도 부조, 모하메드 나리 출토, 1~2세기, 높이150cm, 라호르 박물관
불상은 시무외인을, 벽화에는 수많은 대중이 부처님을 에워싸며 군집하고 있는 구성을 한 둔황 막고굴 제419 굴의 벽화와 불상, 중국 수 대(581~618)조성
대표적인 우리나라의 영산회상도는 1435년경 조성된 벽화 <봉정사 영산회상도>와 1562년 작 일본 조원사 소장 <영산회상도>, 1693년 작 <흥국사 영산회상도>, 1729년 작 <해인사 영산회상도> 등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 영산회상도에 등장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인이 조선 초기에는 설법인을 하였으나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 모두 항마촉지인을 한 모습을 한 것이 특징이다. 1435년경 조성된 봉정사 대웅전 영산회상도 벽화가 설법인을 취하고 있고, 운문 화승이 1587년에 완성한 영산회상도가 항마촉지인을 한 석존 모습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불화이다. 조선 초기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새 시대에 맞는 이상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설법하시는 석존이 주목받았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설법인을 한 석존을 표현하게 되었을 것이다. 반면, 조선 후기는 임진왜란으로 고통받는 민중들의 구제 염원이 강렬하였고 이에 따라 삼매에 들어 광명을 비추는 석존이 주목받으면서 항마촉지인을 한 석존의 모습으로 표현하게 되었을 것이다.
1435년경 조성된 봉정사 대웅전 영산회상도 벽화, 307x351cm
영산, 석존께서 베푼 중생구제와 전법의 기지
<영산회상도>에서 ‘영산’은 석존께서 자주 설법을 열었던 인도에 소재하는 산의 명칭이다. ‘영산'은 ‘영취산’의 줄임 말로 ‘영축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영축산의 인도식 이름은 ‘그리드라쿠따’로 독수리와 봉우리의 합성어이며 음역하여 ‘기사굴산(耆闍崛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산은 인도의 고대 국가 마가다 국의 수도 왕사성에서 동북쪽으로 약 3km 부근에 있다. 마가다 국의 빔비사라왕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지극히 존경하였고 자신의 영토에 불교도를 위한 18개의 사원을 건립할 수 있도록 후원할 정도였다. 영축산은 18개 사원 중 하나이며 이외에도 최초의 사원인 죽림원의 죽림정사나 석가모니 부처님 입멸 후 제1차 결집을 한 장소로 유명한 칠엽굴이 마가다 국에 건립된 대표적인 사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러한 인연 때문인지 마가다 국의 수도 라자그라하(왕사성)에 자주 체류하셨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마가다 국의 인연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석존의 수제자 중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신통제일’ 목건련 존자와 ‘지혜제일’ 사리불 존자가 이곳에서 귀의하여 제자가 되었으며 ‘두타제일’ 마하 가섭존자도 베누바나의 죽림정사에서 석존을 뵙고 귀의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제자들이 귀의하였던 마가다 국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인연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축산에 계실 때 마가다 국의 빔비사라 왕이 아들 아사세 태자에 의해 감옥에 갇히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빔비사라 왕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는 영축산을 향해 간절히 기도하며 법문을 청하였고 석존은 제자 목건련과 부루나 존자를 왕에게 보내 설법을 하도록 하였다. 왕비 위제히도 감옥에 갇힌 부왕을 구하려다 아들 아사세 태자에 의해 유폐되었고 그녀는 영축산의 석가모니 부처님께 극락정토에 갈 수 있게 간절히 염원하였다. 이에 석존께서는 위제히 왕비에게 극락에 갈 수 있는 16관법을 알려주어 그녀를 구제하였다. 한편, 아사세 태자는 아버지의 왕권을 찬탈하여 마가다 국의 왕위에 오르자 부모와 석존께 저질렀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되었다. 그는 궁정 의사였던 지바까의 권고로 석존께 용서를 빌자 석존께서 그를 용서해 주었다. 아사세 왕은 석존께서 쿠시나가라 국의 살라 숲에서 열반하여 다비를 치루자 이때 수습된 사리 일부를 마가다 국으로 가져와 탑을 세워 봉안하였다. 이렇게 석존에게 왕사성의 영축산은 수제자를 맞이하고 전법하는 장소이자 중생과 함께하며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제하는 전진 기지였다.
영산회상,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정토임을 선언한 법회
영산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마가다 국에 머물 때 주로 설법을 하였던 장소이다. 영산은 석존께서 만년에 『법화경』을 설법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법화경』에는 석존께서 언제나 이 사바세계에 머무르며 중생을 교화하고 그들을 성불하게 한다는 지극한 이상이 담겨 있다. 『법화경』의 「방편품」을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석존께서 출현하신 이유가 나와 있다.
『법화경』의 「서품」에서 미륵보살이 석존께 질문하길 “세존께서는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큰 광명으로 온 국토를 비추는지요?”라고 묻자, 석존께서는 "수 없는 방편으로 중생을 인도하여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석존께서 우리에게 비추는 한량없는 광명이 우리가 사는 이곳을 정토로 만들려는 것이며 이로써 우리 모두를 성불의 길로 인도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법화경』에서는 우리가 사는 이곳 사바세계를 정토라고 말한다. ‘영산정토’는 법화사상의 핵심적 키워드이며 이것을 가능하게 한 부처님이 석가모니 부처님이셨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마련한 ‘영산회상’은 ‘영산‘을 정토로 선언한 것이며 ‘영산’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상징하고 있다. 이렇게 영산이라는 장소는 단순히 석존이 법회를 자주 가졌던 역사적 장소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사는 세상에 함께하며 우리를 구제하는 석존의 광명이 지금도 펼쳐지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러한 모습을 담은 불화가 <영산회상도>이다.
박경귀 (불교조형작가)
저작권자 © 미디어조계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