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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이미령의 본생경 이야기

더불어 숲이 되자

  • 입력 2022.09.28

삽화 | 견동한


인도에서는 나무에는 저마다 신이 살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무 신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경전에는 제법 많이 나오는데, 나무 신들은 힘이 세지 않습니다. 인간보다 더 뛰어난 힘을 가지고 인간의 행불행을 좌지우지하며 권능을 부리는 존재가 아니라 아이들 동화에서나 볼 법한 ‘정령’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번 본생경(자타카) 이야기에도 나무 신이 등장합니다. 

 

아주 오랜 옛날, 인도 바라나시에서 브라흐마닷타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 일입니다. 천상에서 동서남북 사방을 다스리는 사천왕 가운데 북방의 신인 벳사바나(다문천, 비사문천)가 죽었습니다. 신들도 죽냐고요? 경전 속에 나오는 신들도 영원히 살 수는 없습니다. 인간보다야 아주 오래 살지만 어찌됐거나 모든 것은 무너지게 마련이니, 신들의 목숨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벳사바나가 죽자 그 사천왕들의 주인인 제석천이 다른 신을 그 자리에 즉위시켰습니다. 그런데 새로 임명된 벳사바나는 자신이 다스리는 방향의 지상을 내려다보다가 나무 덤불이 우거져 있는 수풀을 보았는데 그게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명령했지요.

“다들 흩어져라. 나는 이곳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지저분하게 뒤엉켜 있으니 눈에 거슬리는구나. 앞으로는 너희 나무 신들은 이곳에 살 수 없다.”

자신들을 다스리는 신의 명령이라 그 나무들에 깃들어 살고 있던 신들은 서둘러 거처를 옮겨야 했지요. 

한편 이 시절, 보리살타도 인도 히말라야 지역 어느 사라나무 숲에서 나무 신으로 태어나서 살고 있었습니다. 나무 신들이 거처할 나무를 찾아 몰려오자 나무 신인 보리살타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들은 빈 터에 홀로 있는 나무를 거처로 삼지 말라. 이 사라나무 숲으로 오너라. 내가 정한 곳을 거처로 삼아 서로 빙 둘러서 살아가자.”

보리살타 나무 신의 말을 귀담아 들은 신들은 저마다 보리살타가 깃들어 살고 잇는 나무를 빙 에워싸며 각자 살 곳을 정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나무 신들은 못마땅했습니다.

“아니, 왜 우리가 꼭 숲속 나무들 사이에 거처를 정해야 한단 말인가? 좀 뚝 떨어져서 지내면 좀 좋은가!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큰 길의 거목들도 있는데 그곳으로 가야겠다. 마을 가까이 살면 사람들이 오가면서 큰 나무를 보며 절을 올리고 공양도 많이 올릴 것이니 우리에게도 이득 아니겠는가 말이다.”

이렇게 생각한 나무 신들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가 들판에 심어져 있는 큰 나무를 거처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무시무시한 태풍이 일었습니다. 태풍은 세상을 다 날려버리겠다는 기세로 불어왔고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크고 작은 나뭇가지들이 꺾여 수북하게 바닥에 쌓였습니다. 심지어 빈터에 아름드리 그늘을 드리우며 서 있던 큰 나무는 태풍을 이기지 못해 뿌리째 뽑히고 말았습니다.

보리살타 나무 신이 여러 나무 신들과 함께 살고 있는 사라나무 숲에도 태풍은 휘몰아쳤습니다. 하지만 서로 뿌리가 뒤엉켜 있던 사라나무숲에는 나뭇가지들만 부러졌을 뿐 그 무시무시한 바람을 맞았음에도 뿌리째 뽑혀 쓰러진 나무는 한 그루도 없었지요. 

뿌리째 뽑힌 나무를 자기 집이라 여기며 살던 나무 신들은 의지할 곳이 없어지자 아이들 손을 잡고 사라나무 숲의 보리살타 나무 신을 찾아갔습니다. 신들에게 자식이 있다는 것이 우습기도 합니다. 인도 민간신앙에서 등장하는 신들은 이렇게 자식들을 거느리고 살아간다는 것도 하나의 특징입니다. 살던 집(나무)이 뽑혀 나가 이재민이 된 나무 신들의 사정을 들은 보리살타 나무 신은 탄식하면서 시를 읊었습니다.

 

숲에 살고 있는 나무들조차도

친족이 많은 편이 더 좋다.

단 한 그루 나무만 심어져 있다면,

아무리 거목이라 해도

바람은

그 나무를 쓰러뜨린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신 부처님은 “그때 나무 신들은 지금의 불제자들이고, 보리살타 나무 신은 바로 나였다.”라며 끝맺었습니다. (본생경 74번째 이야기)

 

 

 

◇◆◇

석가모니 부처님은 29살에 성을 나와 구도자가 된 이후 모든 혈연관계를 놓아버리고 홀로 고독하게 수행한 끝에 세상의 스승이 되셨습니다. 수행을 하려면 이런저런 인연과는 잠시 이별을 하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세속에서 온갖 문제로 뒤엉켜 갈등을 일삼던 인간관계로는 괴로움을 끝내고 티 없이 깨끗하고 완전한 행복(열반)을 얻기란 사실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경전을 보면 부처님은 언제나 당신의 고향과 고향 사람들을 향한 관심을 품고 지냈습니다. 이곳저곳을 유행하면서 인연 닿는 곳으로 떠나서 법문을 베풀 때에도 종종 고향인 석가족(카필라성)을 방문해서 그곳 사람들과 행복하고 뜻깊은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가 경전에 종종 등장합니다.

어느 날, 고국에서 불길한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한창 가뭄인 때에 로히니 강물을 끌어 들이는 문제로 같은 석가족과 콜리야족이 싸움이 붙었다는 소식입니다. 이 두 부족은 같은 석가족 사람들로,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한 핏줄인데 강물을 끌어대는 문제로 갈등이 일었고, 시시비비를 가리려다 큰 싸움으로 번져 급기야 부족 간의 전쟁이 막 벌어지려던 참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부처님은 한걸음에 달려갑니다. 경에서는 부처님이 두 부족이 대치하고 있는 로히니 강 한 가운데인 공중에 삼매 자세로 앉아서 온몸에서 파란 빛을 내뿜는 기적을 보였다고 합니다. 살기로 등등하던 두 부족 사람들은 그 기적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지요.

사람들이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 곁에서 멈추라거나 그만두라거나 말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충격요법이 필요합니다. 부처님은 신통한 기적을 바로 그럴 때 충격요법으로 쓰시는 분입니다.

두 부족이 서로를 향한 적대감에서 잠시 놓여났을 때 부처님은 지상으로 내려와서 간절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친족끼리는 사이좋게 지내야 합니다. 친족끼리 마음을 함께 하여 지내면 적들이 파고들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건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마음이 없는 나무조차도 저 홀로 우뚝 서 있기 보다는 여러 나무와 덤불이 함께 지내는 쪽이 낫습니다.”

 

평원에 우뚝 서있는 거목은 장관입니다. 나무가 뿜어내는 그 기운에 압도되어 사람들은 경건한 마음조차 품게 됩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관점은 조금 다릅니다. 더불어서 함께 살아가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지요. 몰려든 사람들이 궁금했는지 계속 법문을 청하자 부처님이 들려준 나무 이야기가 바로 앞에서 들려드린 자타카(본생경)74번째 이야기입니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어느 사이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가을로 들어섰지만 연이은 태풍소식에 긴장합니다. 가을 태풍은 여름 태풍보다 그 위세가 더 크다고 하지요. 지구온난화로 해수면 온도가 올라서 잔뜩 습기를 머금고 몸집을 불린 태풍이 가을걷이를 앞둔 들판에 불어 닥치면 걷잡을 수 없는 피해가 속출합니다. 거센 바람과 엄청난 비는 바닷물을 헤집고 농작물을 망가뜨리고 나무를 꺾고 하천을 범람시켜 재산과 인명피해를 불러옵니다. 자연재해라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일이겠지만 어찌 됐든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사람들은 전전긍긍합니다. 

 

‘함께 모여 살기’ 바로 이것이 태풍을 이겨내는 방법이라고 본생경에서는 일러줍니다. 들판의 거목이나 도로가의 가로수들은 거센 바람 앞에서 속절없이 꺾이고 뽑히지만 온갖 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데다 넝쿨풀이 뒤엉켜 있는 숲은 그리 큰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초강력 태풍 트라미가 일본에 상륙했을 때 삼림총합연구소의 치요다 시험림에서 뜻깊은 조사를 했습니다. 유전적으로 동일한 15년생 삼나무를 나란히 심어 바람의 영향 등을 조사하고 있었는데 시험림을 반으로 나눠서 한곳은 솎아내기를 하여 나무 사이를 2배로 늘려 깔끔하게 정리했고, 다른 쪽 삼나무는 처음 간격인 1.8m를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태풍이 불어 닥치자 깔끔하게 정리한 쪽의 삼나무들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반면 빽빽한 그대로 둔 쪽의 나무들은 이웃한 나무와 우듬지(나무 꼭대기)를 서로 부닥치며 강한 바람의 힘을 감쇄하는 방식으로 태풍을 견딘 것입니다. 바람이 잦아든 이후에도 솎아낸 숲은 뿌리가 손상돼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못했는데 연구자들은 이렇게 조사결과를 논문에서 밝혔습니다.

“이웃 나무와 우듬지가 맞닿은 나무는 바람의 진동을 서로 흡수해 전체가 하나의 나무인 것처럼 강풍을 견뎠지만 성긴 숲에서는 나무끼리 서로 돕지 못하고 홀로 풍압에 맞서야 했다.”(한겨레신문 2022년 9월6일자 애니멀피플  「슈퍼 태풍 불어도 숲은 쓰러지지 않아」 기사에서 인용)

 

이 기사에서도 인용했듯이 신영복 선생님의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라는 명문장이 떠오릅니다. 한 그루 우뚝 솟은 거목의 위용도 좋지만 나무와 나무가 더불어 숲이 되어 서로를 지켜주어야 어떤 재난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꺾이지도 않으며 탄탄히 뿌리를 내릴 수 있지요. 본생경에서 나무 신으로 태어난 보리살타가 여러 나무 신들에게 한 말도 바로 이 ‘더불어 숲’이 아닐까요?

 

‘나홀로 가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해서건 형편이 허락하지 않아서건 이제는 대가족보다는 핵가족, 거기서 더 나아가 단 한 사람이 살아가는 생활형태가 급속도로 번지고 있습니다. 홀로 살면 돈도 덜 들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도 간섭받지 않고, 가족이나 친척끼리 비교당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친척 친지라는 존재가 버겁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홀로 사는 삶을 택하지만 고립감과 외로움은 덩달아 커져갑니다. 반려동물을 벗 삼는다거나 혼자 있을 때 SNS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 그 증거 아닐까요? 반드시 혈연으로만 똘똘 뭉치지 않아도 좋습니다.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들과 자주 만나 마음을 나누고 그들과 더불어 숲이 된다면 그 또한 참 멋진 인연입니다. 함께 어울려야 쓰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령 (경전 이야기꾼, 불교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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