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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가 나를 바라보네?
고구려 무영총 벽화 수렵도
평면적으로 그려진 불화 속 성상
불화에 등장하는 성상들의 의복이나 장신구 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빛이나 공간감을 느끼게 하는 그림자나 음영이 표현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 불화를 보면 이러한 점이 더욱 두드러져 채색된 부위들에 일체의 음영이 표현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간혹 음영을 넣은 예도 있지만, 빛에 의한 그림자나 대상에 대한 공간감을 표현한 것이 아니고, 형태의 경계를 명확히 하거나 강조하기 위해서이며, 그것마저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불화는 등장하는 성상이나 대상들을 표현할 때 음영표현을 최대한 절제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채색된 색 면은 굴곡이 없고 평평하다. 이러한 점은 고려 시대 불화는 물론이고 중국, 일본 등의 불화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며, 불화를 포함하여 삼국시대 고분벽화나 조선 시대 풍속화와 민화 등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평면화된 색 면은 시각적으로 거리감이 같다. 즉, 화면에 그려진 대상을 원근의 차이 없이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조금 어려운 말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노란색 얇은 색종이를 구겨서 벽에 붙인 후, 이를 바라보면 구김에 의해 솟아오른 면과 들어간 면에 생긴 음영 때문에 솟은 면은 가까이 보이고 들어간 면은 멀리 보이게 된다. 이렇게 같은 색으로 채색된 대상이라도 음영이 생기면 우리의 시각은 차등적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노랑 색종이를 구김 없이 벽에 붙인 뒤 바라보면 색종이와 눈과의 거리에 차이가 없고 구김에 의한 음영도 없으므로 색종이의 모든 면이 동시에 우리의 눈에 들어오게 된다. 불화에 등장하는 성상들에 채색된 색 면이 이렇게 음영 없이 평면적으로 칠 해져 있고, 따라서 모든 성상이 우리의 눈에 같은 거리감으로 다가와 동시에 지각하게 된다. 즉, 화폭에 그려진 모든 대상이 평면적으로 표현되어 있으면 같은 거리감을 느끼게 되며 눈에 동시에 지각된다.
불화는 이렇게 평면적 채색 기법을 통해 성상들을 동시에 인식하게 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불화에 등장하는 성상들은 신체를 화면의 경계에서 잘림 없이 모두 온전히 그리며, 성상들의 구성도 화면에 펼쳐놓듯이 평면적으로 배치한다. 성상들을 음영 없이 평면적으로 채색하고, 신체를 온전히 표현하며, 평면적으로 배치한 이유는 등장하는 모든 성상에 주목하게 하려는 화가의 의도 때문이다. 왜냐하면, 화가는 불화를 바라보는 관객이 등장하는 모든 성상에 주목해서 성상에 내포된 상징과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며 동화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화가는 관객이 불화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불화가 관객을 바라보는 형국이 되길 바랐다. 즉, 자신이 그린 그림이 관객을 대상화시키길 바란 것이다. ‘관객을 대상화하다.’라는 말 또한 조금 어렵다. 이 말의 의미는 고구려 무용총에 그려진 수렵도와 어린이가 그린 그림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고구려 무영총에 그려진 벽화인 <수렵도>를 보면, 산 위로 도망가는 사슴의 크기는 산의 크기와 거의 같을 정도로 원근이 무시되었고 대상들의 위치도 하늘과 땅의 구분 없이 나열되어 공간적으로 지극히 평면적으로 그려진 벽화이다. 이렇게 표현하게 된 연유는 이 벽화가 현실의 재현이 아닌 마음의 재현이기 때문이다. 사냥이 잘 되길 바라는 사람들의 바람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평면적 채색 기법과 나열형 배치 구도를 선택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이 그린 이 장면을 바라보며 수렵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즉, 자신이 그린 그림이 자신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형국이며, 이를 ‘관객을 대상화하다’라고 지칭한 것이다. 어린이가 그린 그림도 대단히 평면적인데(예시된 그림 참조), 대상들을 원근이나 투시 형태로 그리지 않고 화면에 평면적으로 나열하여 배열했다. 대상들을 화면에서 잘려나가지 않게 그렸고, 채색도 얼룩 없이 단색으로 평평하게 칠했다. 아이들의 관점에서 대상 A와 대상 B는 자신에게 모두 소중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 종속적이지 않게 각 대상을 평면적으로 나열하여 표현하게 된다. 이렇게 아이들이 표현한 대상들은 대부분 자신이 좋아하거나 함께하고 싶은 것들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화면에 표현한 대상들은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이자 함께하고 싶은 것이어서 아이는 그림과 쉽게 동화된다. ‘관객의 대상화’는 아이가 이렇게 자신의 그림에 동화되는 상황을 말하며, 불화도 성상을 평면적으로 표현하여 관객을 대상화하며 동화시키고 있다. 결론적으로, 불화의 평면성은 관객을 성상에 동화시키기 위해 선택한 특별한 조형 형식인 것이다.
박경귀 (불교조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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