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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도심을 품은 절, 호서 제일 각원사와 천백 년의 고찰 성불사
남북통일기원 도량 천안 각원사
국내 최대 규모의 목조건물 대웅보전
각원사 대웅보전 삼존불
국내 최대 규모의 목조건물 대웅보전
전통적인 산사의 고졸(古拙)한 멋을 각원사에서 찾기는 아직 이르다. 가장 먼저 자리 잡은 남북통일기원 청동좌불이 1977년 5월에 봉안되었을 만큼, 각원사 창건 역사가 짧기 때문이다.
1996년에 지은 대웅보전(200평)은 앞면 일곱 칸, 옆면 다섯 칸의 웅장한 규모이고, 2층 누각인 태조산루(329평), 설법전(36평), 천불전(24평), 칠성전(24평), 관음전(150평), 반야원(110평), 경해원(120평), 산신전(40평), 영산전(350평)과 개산기념관(120평) 등 그 많은 전각들이 거침없이 훤칠하고 널찍널찍하다. 각원사가 자리 잡은 터가 3만여 평에 이른다고 하니, 절의 규모를 구석구석 돌아보지 않고도 각원사를 제2의 불국사라고 부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각원사 대웅보전은 국내 목조건물 중에서 그 규모가 가장 크다. 34개의 주춧돌에다가 100여 만재의 목재가 들어갔다고 한다. 불단 가운데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셨는데, 좌우 협시로 대자대비 관세음보살과 대성자모 관세음보살을 봉안한 점이 눈에 띈다. 200평의 넓은 공간에 비해 불단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일지도 모를 우려를, 삼존불 한 분 한 분을 한 칸씩 따로 봉안함으로써 균형을 이루게 했다.
다른 전각들에 비해 유난히 지상에서 높게 지어진 대웅보전은 계단의 총 높이만 3미터는 족히 될 듯하다. 특히 좌우의 계단은 너무 가팔라서 오르기가 겁이 난다. 하지만 대웅보전 앞 다섯 그루의 소나무가 용마루 양 끝에 청동 치미(장식기와)를 높이 올린 대웅보전과 어울려 빚어내는 풍경은 눈을 떼기 아쉬울 만큼 일품이다.
남북통일기원 각원사 청동좌불
27년 만의 결실 남북통일기원 청동좌불
남북통일기원 청동좌불은 각원사 창건의 목적이자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1977년 10월 조성 당시 동양 최대 규모였던 청동불은 높이 15미터, 무게가 60톤이나 되는 아미타불이다. 한량없는 광명으로 중생의 번뇌와 어둠을 밝혀주는 아미타부처님 뒤로 펼쳐지는 태조산의 부드러운 능선과 탁 트인 가을 하늘이 간절한 발원마저 부끄럽게 만든다.
각원사 청동대불은 개산조 경해법인(鏡海法印) 스님의 발원이 27년 만에 이뤄진 결실이다. 1946년 해인사 백련암으로 출가한 스님은 포산 선사를 은사로 모시고 제방 선원에서 수행하던 중에 1950년 한국전쟁을 만났다. 탁발차 경주 불국사 석굴암에 들러 참배하던 중에 문득 삼국 통일의 상징인 불국사 김대성 거사를 떠올리고, 민족의 염원인 남북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도량 창건을 발원했다. 1950년 11월이었다.
일찍이 도제와 교육, 포교와 불사에 뜻을 둔 스님은 세속 학문도 중시하여 해인대학, 동국대, 성균관대 등을 졸업하고 1969년 12월 일본으로 건너간다. 1987년 도쿄 대동문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할 때까지 일본에서 수행하던 스님은 그곳에서 만난 재일교포 사업가(각연 김영조 거사) 부부(부인 자연심 정정자)의 시주로 교토에 명월사를 창건했다. 법인 스님과 함께한 백일 관음기도로 목숨을 건진 김 거사는 법인 스님의 남북 통일 발원에 감동해서 천안 태조산에 통일기원 대불을 봉안할 터를 보시한다. 그리고 1977년 5월 7일, 석굴암에서 원을 세운 지 27년 만에 남북통일기원 청동대불이 태조산 중봉에 봉안되었다. 스무 살 젊은 비구의 원력이 그렇게 태조산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해외 포교 중요성을 늘 강조해온 법인 스님은 교토 명월사를 시작으로 시모노세키의 광명사, 미국 필라델피아의 관음사 등을 창건했다. 더불어 각원사가 재가 불자 교육에 앞장서도록 불교대학과 경해학당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도심 근교 사찰인 각원사는 지역사회 활동도 활발하다. 2003년 23가구로 시작해서 2022년 현재 20년째, 매주 목요일 홀몸어르신 가정에 일주일분의 도시락 약 160개를 배달하고 있다. 또한 매년 효음악회와 행복나눔바자 등 효문화제를 열고 있다.
각원사는 천안 명소 12경 중 제6경, 붉은 겹벚꽃 명소로 인기가 높다. 절 입구에서 청동대불로 향하는 무량공덕 203계단을 올라가 청동대불 앞에 서면 멋진 버들벚꽃 한 그루와 겹벚꽃 나무들이 그 주변에서 줄지어 꽃을 피운다. 산신전과 천불전 사이 또한 버들벚꽃 명소로 꼽힌다.
성불사 마애석가삼존(충남유형문화재 제169호)
16나한상(충남유형문화재 제169호)
천이백 년 전 마애불이 반기는 성불사
태조산 중턱의 성불사(成佛寺)는 매우 가파른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숨이 턱에 차고 두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워져 땅에 질질 끌릴 때쯤, 8백 년 넘은 느티나무가 맞이해준다. 성불사에는 그 오래된 역사를 증명하듯, 8백 살 넘은 보호수 두 그루가 끈질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그 나무들이야말로 현존하는 어떤 전각들보다 가장 오랫동안 성불사의 부침을 지켜본 주인공일 것이다.
성불사는 서기 921년(태조 4) 고려 초기, 도선 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온다. 태조의 명으로 이곳에 절을 지으려고 찾아왔더니, 흰 학 세 마리(혹은 한 쌍)가 암벽에 불상을 새기다가 그대로 날아가버렸다고 한다. 불상이 완성되지 못했다고 하여 처음에는 성불사(成不寺)로 불렀고, 그 자리에 절이 다 지어지고 나서 성불사(成佛寺)라고 바꿨다고 한다.
1002년(목종 5)에 담혜 스님이 왕명으로 중창했고, 1398년 무학 스님의 권고로 조선 태조 임금이 중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대웅전과 관음전, 지장전, 산령각, 종각, 적묵당, 요사채(응진전) 등이 남아 있으나 오랜 세월에 못 이겨 이곳저곳이 수리 중이다.
성불사 대웅전과 전경
대웅전 내부모습
성불사 관음전 석조보살좌상(충남문화재자료 제386호)
성불사 전통문화체험관
노희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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