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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주지스님과 함께하는 화엄성중 가피순례

천안 도심을 품은 절, 호서 제일 각원사와 천백 년의 고찰 성불사

  • 입력 2022.09.28

남북통일기원 도량 천안 각원사

천안의 진산으로 불리는 태조산(太祖山, 421미터)은 품도 넉넉하고 도심에서 가까워 시민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 곳이다. 고려 태조 왕건(877~943)이 삼국 통일을 위해 군사를 양성한 곳이어서 태조산이라고 부르는데, 이 산에는 천안을 대표하는 사찰, 각원사(覺願寺)와 성불사(成佛寺)가 있다. 
천백 년 전, 고려의 삼국 통일 과정에서 고통을 겪은 민초들에게 평안과 위안을 주었던 고려 사찰 성불사와 한국전쟁의 상처를 보듬고 남북 통일을 기원하고자 건립한 각원사. 창건 시기는 서로 한참 멀어도 참 많이 닮은 태조산의 두 사찰이 가을빛에 나란히 물들어가고 있다.

남북통일기원 도량 천안 각원사
다섯 개 대학의 교정이 모여 있는 충남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일대. 단국대학교, 호서대학교, 상명대학교, 백석대학교, 백석문화대학 등, 한 동네에 대학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이 지역을 행정 당국이 ‘대학인의 거리’로 만드는 중이다. 그럴 만큼 이 일대는 북적이는 대학생들로 인해 젊음의 활기가 가득 차 있다.
그 번화한 거리 중 하나인 호서대학교 앞길, 태조산 방향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에서 위아래로 나란히 서 있는 큼지막한 두 개의 안내판을 만났다. 왼쪽 방향의 화살표는 각원사를, 오른쪽  방향의 화살표는 성불사를 가리키고 있었다.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도 엇비슷했다. 
왠지 묘하게 설레고 뿌듯했다. 젊음의 거리 한가운데서 선택해야 할 두 개의 길을 만났는데 둘 다 부처님 계신 절로 가는 길이라니……. 각원사 입구의 큰 연못 연화지를 못 보고 지나칠 만큼, 그 설렘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목조건물 대웅보전


 

 

각원사 대웅보전 삼존불


 

국내 최대 규모의 목조건물 대웅보전

전통적인 산사의 고졸(古拙)한 멋을 각원사에서 찾기는 아직 이르다. 가장 먼저 자리 잡은 남북통일기원 청동좌불이 1977년 5월에 봉안되었을 만큼, 각원사 창건 역사가 짧기 때문이다. 

1996년에 지은 대웅보전(200평)은 앞면 일곱 칸, 옆면 다섯 칸의 웅장한 규모이고, 2층 누각인 태조산루(329평), 설법전(36평), 천불전(24평), 칠성전(24평), 관음전(150평), 반야원(110평), 경해원(120평), 산신전(40평), 영산전(350평)과 개산기념관(120평) 등 그 많은 전각들이 거침없이 훤칠하고 널찍널찍하다. 각원사가 자리 잡은 터가 3만여 평에 이른다고 하니, 절의 규모를 구석구석 돌아보지 않고도 각원사를 제2의 불국사라고 부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각원사 대웅보전은 국내 목조건물 중에서 그 규모가 가장 크다. 34개의 주춧돌에다가 100여 만재의 목재가 들어갔다고 한다. 불단 가운데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셨는데, 좌우 협시로 대자대비 관세음보살과 대성자모 관세음보살을 봉안한 점이 눈에 띈다. 200평의 넓은 공간에 비해 불단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일지도 모를 우려를, 삼존불 한 분 한 분을 한 칸씩 따로 봉안함으로써 균형을 이루게 했다. 

다른 전각들에 비해 유난히 지상에서 높게 지어진 대웅보전은 계단의 총 높이만 3미터는 족히 될 듯하다. 특히 좌우의 계단은 너무 가팔라서 오르기가 겁이 난다. 하지만 대웅보전 앞 다섯 그루의 소나무가 용마루 양 끝에 청동 치미(장식기와)를 높이 올린 대웅보전과 어울려 빚어내는 풍경은 눈을 떼기 아쉬울 만큼 일품이다.

 

 

남북통일기원 각원사 청동좌불

 

 

 

27년 만의 결실 남북통일기원 청동좌불

남북통일기원 청동좌불은 각원사 창건의 목적이자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1977년 10월 조성 당시 동양 최대 규모였던 청동불은 높이 15미터, 무게가 60톤이나 되는 아미타불이다. 한량없는 광명으로 중생의 번뇌와 어둠을 밝혀주는 아미타부처님 뒤로 펼쳐지는 태조산의 부드러운 능선과 탁 트인 가을 하늘이 간절한 발원마저 부끄럽게 만든다. 

각원사 청동대불은 개산조 경해법인(鏡海法印) 스님의 발원이 27년 만에 이뤄진 결실이다. 1946년 해인사 백련암으로 출가한 스님은 포산 선사를 은사로 모시고 제방 선원에서 수행하던 중에 1950년 한국전쟁을 만났다. 탁발차 경주 불국사 석굴암에 들러 참배하던 중에 문득 삼국 통일의 상징인 불국사 김대성 거사를 떠올리고, 민족의 염원인 남북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도량 창건을 발원했다. 1950년 11월이었다. 

일찍이 도제와 교육, 포교와 불사에 뜻을 둔 스님은 세속 학문도 중시하여 해인대학, 동국대, 성균관대 등을 졸업하고 1969년 12월 일본으로 건너간다. 1987년 도쿄 대동문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할 때까지 일본에서 수행하던 스님은 그곳에서 만난 재일교포 사업가(각연 김영조 거사) 부부(부인 자연심 정정자)의 시주로 교토에 명월사를 창건했다. 법인 스님과 함께한 백일 관음기도로 목숨을 건진 김 거사는 법인 스님의 남북 통일 발원에 감동해서 천안 태조산에 통일기원 대불을 봉안할 터를 보시한다. 그리고 1977년 5월 7일, 석굴암에서 원을 세운 지 27년 만에 남북통일기원 청동대불이 태조산 중봉에 봉안되었다. 스무 살 젊은 비구의 원력이 그렇게 태조산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해외 포교 중요성을 늘 강조해온 법인 스님은 교토 명월사를 시작으로 시모노세키의 광명사, 미국 필라델피아의 관음사 등을 창건했다. 더불어 각원사가 재가 불자 교육에 앞장서도록 불교대학과 경해학당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도심 근교 사찰인 각원사는 지역사회 활동도 활발하다. 2003년 23가구로 시작해서 2022년 현재 20년째, 매주 목요일 홀몸어르신 가정에 일주일분의 도시락 약 160개를 배달하고 있다. 또한 매년 효음악회와 행복나눔바자 등 효문화제를 열고 있다. 

각원사는 천안 명소 12경 중 제6경, 붉은 겹벚꽃 명소로 인기가 높다. 절 입구에서 청동대불로 향하는 무량공덕 203계단을 올라가 청동대불 앞에 서면 멋진 버들벚꽃 한 그루와 겹벚꽃 나무들이 그 주변에서 줄지어 꽃을 피운다. 산신전과 천불전 사이 또한 버들벚꽃 명소로 꼽힌다. 

 

 

 

 

성불사 마애석가삼존(충남유형문화재 제169호)


 

 

 

16나한상(충남유형문화재 제169호)


천이백 년 전 마애불이 반기는 성불사

태조산 중턱의 성불사(成佛寺)는 매우 가파른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숨이 턱에 차고 두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워져 땅에 질질 끌릴 때쯤, 8백 년 넘은 느티나무가 맞이해준다. 성불사에는 그 오래된 역사를 증명하듯, 8백 살 넘은 보호수 두 그루가 끈질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그 나무들이야말로 현존하는 어떤 전각들보다 가장 오랫동안 성불사의 부침을 지켜본 주인공일 것이다.   

성불사는 서기 921년(태조 4) 고려 초기, 도선 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온다. 태조의 명으로 이곳에 절을 지으려고 찾아왔더니, 흰 학 세 마리(혹은 한 쌍)가 암벽에 불상을 새기다가 그대로 날아가버렸다고 한다. 불상이 완성되지 못했다고 하여 처음에는 성불사(成不寺)로 불렀고, 그 자리에 절이 다 지어지고 나서 성불사(成佛寺)라고 바꿨다고 한다. 

1002년(목종 5)에 담혜 스님이 왕명으로 중창했고, 1398년 무학 스님의 권고로 조선 태조 임금이 중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대웅전과 관음전, 지장전, 산령각, 종각, 적묵당, 요사채(응진전) 등이 남아 있으나 오랜 세월에 못 이겨 이곳저곳이 수리 중이다.

 

 

 

성불사 대웅전과 전경


 

 

대웅전 내부모습

 

 

마애불 입상을 
본존불로 모신 대웅전
성불사에는 두 기의 문화재가 남아 있다. 그 중 하나가 마애석가삼존 16나한상 및 불입상(충남유형문화재 제169호)이다. 흰 학이 새기다가 날아갔다는 바로 그 마애불들인데 대웅전 뒤쪽, 세로 248센티미터 가로 357센티미터 크기의 바위에 새겨져 있다. 
그 마애불 가운데 왼쪽 면의 불입상(佛立像), 즉 서 있는 불상을 대웅전 삼존불의 본존불로 모신 까닭에, 대웅전 불단에는 좌우 협시불만 있고 주불 자리가 비어 있다. 2.2미터의 불입상은 거의 마모되어 형태가 분명치 않고 윤곽선만 볼 수 있다. 협시불로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다.
불입상의 오른쪽 면에 새겨진 석가삼존상과 16나한상의 부조는 삼존상 좌우와 위쪽을 다양한 자세 및 방향의 나한상들이 에워싸고 있는 모양새다. 비교적 형태가 잘 남아 있는 오른쪽 다섯 구의 나한상을 살펴보면, 중국 북송대(10세기 후반~11세기 초반) 나한상에 가까우며, 조각의 깊이나 나한들의 자세 등 여러 면에서 중국 절강성 청림동의 나한상들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한다. 이 마애불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마모가 심하긴 하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마애 나한상이라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대웅전은 앞면 세 칸, 옆면 두 칸의 다포집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매우 소박해서 정겹다. 관음전 또한 대웅전과 같이 작은 전각이나, 충남문화재자료 제386호 석조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다. 관음전과 어울리는 이 보살좌상은 1990년 조치원 대성천 준설작업 현장에서 발견되어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67센티미터 크기에 광배와 불상이 한 개의 돌로 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훼손이 심하지만, 관음전과 여러 모로 조화를 이루면서 맑은 느낌을 준다. 다만 관세음보살인지 미륵불인지 확실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대웅전과 관음전 사이, 약함을 들고 결가부좌를 한 불상이 약사여래불이다. 큰 바위 앞쪽에 모셔져 있는데, 그 자리가 왠지 성불사에서 가장 햇빛이 잘 드는 곳 같이 느껴진다. 앞이 탁 트여서 멀리로 천안시내가 잘 보인다. 
그 밖에도 앞면과 옆면이 각각 한 칸에 불과한 겹처마 맞배지붕의 산령각과 범종루가 나날이 낡아가면서 높낮이가 다른 자리에서 성불사를 지키고 있다. 산령각은 성불사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장소라고, 천안시민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해 개산 1100주년 기념 
산사음악회 열어
성불사는 지난해 10월 9일 경내 대웅전 앞에서 시민을 위한 산사음악회를 열었다. 성불사 창건을 921년(태조 4)으로 널리 알린 셈이다. 더불어 2020년 8월에는 절 입구에 전통문화체험관을 건립하고 개관식을 가졌다. 이날 관음전 불상 점안과 함께 청양 도림사지에서 출토된 부처님 진신사리 1과를 봉안했다. 
전통문화체험관은 천안시민과 불자들이 전통문화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법당인 관음전을 비롯해서 체험관과 갤러리, 요사 등 여섯 동의 건물에서 사찰음식과 다도, 명상, 요가, 어린이 예절교육 등의 강좌가 열린다. 

철 지난 수국이 고개를 떨군 성불사 화단에는 아직 못 다 핀 금잔화가 예쁜 자태로 생기를 뽐내고 있었다. 가을빛이 아무리 고와도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허망할 따름이다. 그 이치를 잘 알면서도 천 년의 세월은 감히 실감하지 못한다. 성불사 주변의 자연들이 지켜보았을, 길고도 짧았던 그 시간을 어찌 보낼지는 결국 자신들의 몫이다. 가을이 한창인 천 년 고찰 성불사에서 시간이 흐르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성불사 관음전 석조보살좌상(충남문화재자료 제386호)








성불사 전통문화체험관

 

 

노희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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