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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문태준의 세상사는 이야기

가을과 마음공부

  • 입력 2022.09.28

가을 하늘이 활짝 펼쳐지고 있다. 밤에는 달빛이 보다 밝고, 풀벌레 소리와 귀뚜라미 소리가 절창이다. 시골에 사는 내 집에는 곳곳에서 귀뚜라미가 뛴다. 귀뚜라미를 이렇게 자주, 가까이에서 보게 된 일도 참 오랜만이다. 밤새 창가에는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일렁이고 해조음처럼 온다. 자다가 귀뚜라미 소리에 깨어 일어나서는 마당에 나가 달빛 아래에 서기도 한다. 풀벌레와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도 좋지만, 울음과 울음 사이의 그 잠깐의 고요한 침묵도 좋다.

 

여름 내내 해바라기가 피었었는데 이제는 그 씨앗을 받아두었고, 화원에 가서 국화 화분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더 큰 화분에다 옮겨 심을 것이다. 가을이 지나가는 내내 국화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내는 지인으로부터 청귤을 얻어서는 청귤청을 담아 놓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청귤청이 만들어지는 동안 감이 익어가고, 노지 귤이 익어가고, 꾸지뽕나무 열매가 익어갈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올해 가을에 꾸지뽕나무 열매를 얻을 일을 기대하고 있고, 벌써 설레기까지 한다. 아침마다 꾸지뽕나무 아래에 가서 그 열매를 줍는 일은 행복하기만 한 까닭이다. 작년에는 꾸지뽕나무 열매를 주우면서 짧은 시를 쓰기도 했다. 제목은 ‘별미(別味)’로 붙였다. 시는 이러하다. 

 

“매일 아침 꾸지뽕나무 밑에 가 꾸지뽕 열매를 주워요// 꾸지뽕 열매는 음력 시월이 다 가도록 가지에 붉게 매달려 있어요// 오늘 아침에는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나무 밑에 가 꾸지뽕 열매를 주웠어요// 이제는 꾸지뽕 열매를 새가 쪼아 먹고 벌레가 갉아 먹어 놓아요// 나는 새와 벌레가 쪼아 먹고 갉아 먹고 남긴// 꾸지뽕 열매 반쪽을 얻어먹으며 별미를 길게 즐겨요” 

 

꾸지뽕 열매를 새와 벌레와 내가 함께 나눠먹을 생각을 하니 마음에 벌써 기쁨이 온다. 올해에도 우리 셋은 서열 없이, 그래서 차례 없이 열매를 나눠 먹을 것이다.

 

올해 봄과 여름에는 나름대로 텃밭을 일궈 이것저것을 길러서 얻어먹었다. 그 일에 대해 시 ‘잘한 일’을 쓰기도 했다. 아주 짧은 시이다. “일어나 밥 먹기 전에/ 토마토 순에 지지대를 대주었다/ 부추밭에 물조리개로 물을 뿌려주었다/ 가지에 북을 도도록하게 돋우었다/ 우리 집 자연에게/ 싫어할 소리를 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텃밭에 나가 일을 하면서 내가 나쁜 일은 하지 않았구나, 라고 안심했고, 그 일에 보람을 느꼈다. 올해 가을에는 내가 잘한 일로 무슨 일을 해볼까 궁리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고심을 한 끝에 이전의 계절보다 더 긍정적인 말을 할 수 있도록 애써야겠다는 작심에 이르렀다.

주변의 사람들과 만나면 어떤 사람은 모든 일과 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무조건 삐딱하게 말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말을 꺼내자마자 고개를 갸웃대거나 한숨을 먼저 쉬거나 손을 내젓는 경우가 있다. “'뭐, 그게 되겠어요?”라고 말한다. 나도 종종 그런 편이었는데, 여러 해 전부터 조심씩 마음을 바꿔먹고 있다. 못마땅한 것이 있어도 그 자리에서 곧바로 말하지 않고 말하기에 더 좋은 다른 때를 기다릴 줄도 알게 되었다. 거절을 하더라도 좀 더 신중하게 판단을 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잘 설명해서 이해를 구할 줄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내 마음 공부는 미숙해서 더 공부할 것이 많기만 하다. 

신동엽 시인의 시 가운데 ‘응’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는데, 사실은 이 시를 최근에 접하고서 올 가을 내 마음공부의 과제로 삼게 되었다. 

 

“응 그럴 걸세, 얘기하게/ 응 그럴 걸세/ 응 그럴 걸세/ 응, 응,/ 응 그럴 수도 있을 걸세./ 응 그럴 수도 있을 걸세./ 응, 아무렴/ 그렇기도 할 걸세/ 그녁이나, 암, 그녁이나/ 응, 그래, 그럴 걸세/ 응 그럼, 그렇기도 할 걸세./ 허,/ 더 하게!” 

 

비록 내가 다르게 생각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입장이 나의 그것들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할 때에 “응 그럴 걸세”라고 말하는 응대가 가능할 것이다. 이런 응대는 오만과 편견을 뒤로 미룬 다음에 가능할 것이다. 나도 올 가을에는 이 일을 해보기로 작정했다. 이 일을 자꾸 하다보면 올해 가을의 끝에서 내 내면의 용적이 보다 넓어진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법구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모든 것은 마음에 근거하고, 마음을 근본으로 하며,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다. 즉, 마음속에 악한 것을 생각하면 말과 행동까지 거칠게 된다. 이로 인해 죄업이 뒤따른다. 마치 수레를 따르는 수레바퀴처럼” 우리의 마음에 부정적인 것이 많으면 말과 행동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말과 행동에 어둠이 가득 차게 된다. 그 결과가 좋을 리 없다, 그러나 “응 그럴 걸세”라고 말하면서 다른 사람을 응원하면 그 사람에게도 내게도 밝은 빛이 들게 될 것이다. 이 일을 올 가을에는 해 볼 생각이다.

 

어느덧 나뭇잎의 빛깔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나뭇잎에 가을의 시간이 물들기 시작하고 있다. 고운 빛깔의 단풍을 맞이할 때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일을 올 가을에 잘 한다면 내 마음도 밝고 산뜻하게 물들 것이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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