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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이미령의 본생경 이야기

하나를 얻으면 또 하나가 갖고 싶고

  • 입력 2022.10.29

삽화 | 견동한


아주 오랜 옛날 갠지스 강가에 자리한 카시 국에서 아주 큰 부호인 바라문 집안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집안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요. 어느 정도 자라나서는 스승에게 나아가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배웠습니다. 학문, 기술, 예술 등등 더 이상 세상에서 그가 배울 것은 없었지요. 이 정도가 되자 그는 숲에 들어가서 명상을 하며 살기로 마음먹습니다. 모든 욕망을 버리고 떠나 숲속 수행자가 된 그는 명상을 닦았습니다. 어느 사이 깊은 단계에 이르렀고 보통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에 그는 들었습니다. 그는 히말라야 산자락에 머물며 명상으로 하루를 보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소금과 식초가 떨어져서 수행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바라나시 도시로 내려왔습니다. 왕가의 동산에 들어가 그날 하루를 보낸 뒤 다음 날 아침, 바라나시로 탁발을 하려고 나섰습니다. 그는 갈색 나무껍질로 만든 하의와 상의를 입고 영양 가죽을 한쪽 어깨에 걸쳤으며, 머리를 땋아 둥글게 말아 올리고, 봇짐을 짊어질 때 쓰는 막대기를 들고 거리를 이리저리 다니며 탁발했습니다.


그러다 왕궁 문에 이르렀는데 때마침 밖을 내다보던 왕은 이 수행자의 독특한 차림새와 위엄 넘치는 행동에 호감을 느껴 그를 안으로 모셨습니다. 훌륭한 자리를 마련하여 그곳에 앉힌 뒤에 왕궁의 맛난 음식을 올리면 수행자가 흡족하게 먹을 수 있도록 살뜰히 옆에서 챙겼습니다.


왕의 호의에 감사를 올리며 수행자가 떠나려 하자 왕은 간청했습니다.


“다른 곳에 가지 마시고 제 정원에 머물러 주십시오. 오래도록 그곳에 머무시면서 언제나 왕궁으로 오셔서 공양 드시고 왕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수행자는 왕의 청을 받아들여 그 후 16년이나 왕의 정원에 머물렀습니다.


어느 날 변방에 반란이 일어나 왕은 군사를 이끌고 그들을 진압하려고 궁을 비웠습니다. 떠나면서 왕비에게 수행자를 지극히 정성스럽게 모시기를 당부했습니다. 왕비 이름은 무둘라카나. 우아한 모습이라는 뜻을 지녔지요. 왕비는 왕의 당부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수행자는 그만 긴장이 풀어지고 말았습니다. 예전에는 일정한 시간에 왕궁으로 공양을 하러 갔지만 이제는 마음이 내킬 때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왕비는 이제나 저제나 수행자가 오실까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그를 기다렸지요.


그러다 어느 날, 왕비는 수행자에게 드릴 음식을 준비한 뒤에 그를 기다리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늦으시네. 내가 잠깐 목욕을 해도 될 것 같아. 설마 그러는 사이에 오시는 건 아니겠지?’


왕비는 향기로운 물로 목욕한 뒤에 아름다운 장신구로 한껏 치장하고서 누각에 마련한 작은 침대에 누워 수행자가 공양하러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사정을 알지 못한 수행자는 명상에서 천천히 깨어나 하늘을 날아 왕궁으로 향했습니다. 


“이제야 스승님께서 오시나 보다.”


무둘라카나 왕비는 수행자의 나무껍질 옷 소리를 듣고서 서둘러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서두르는 바람에 그만 비단 상의가 미끄러져 흘러 내렸습니다. 수행자는 창으로 들어오려다가 왕비의 아름다운 나신을 보고 말았지요. 감각기관을 다스려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넋을 놓고 바라보았고, 그 마음에 욕정이 끌어 올랐습니다. 마음이 욕정에 뒤덮이자 그동안 닦았던 명상의 힘이 사라졌으니 날개가 꺾인 독수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음식물을 받아들었지만 먹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습니다. 욕정에 이끌린 채 왕의 정원으로 돌아와 암자에 들어가서는 널빤지로 만든 침대 아래에 음식을 내버려두고 그대로 누워버렸습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왕비의 모습이 아른거렸습니다. 욕정에 이글이글 타올라 7일 동안을 침상에 누운 채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지내느라 그 모습은 말할 수 없이 야위고 초췌해졌습니다. 


7일 째 되는 날 왕이 반란을 진압하고 돌아왔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수행자를 뵙고자 정원으로 향했지요. 그런데 나무 침상에 누운 수행자를 보고 왕은 깜짝 놀랐습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병이라도 걸리셨습니까?”


“대왕이여, 병에 걸린 게 아니라 욕정에 마음이 사로잡혔습니다.”


“욕정이라고요? 대체 무엇을 향한 욕정에 사로잡혔단 말씀이신지…?”


“무둘라카나 왕비에게 반해 버렸습니다.”


수행자가 용기를 내어 고백하자 왕은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좋습니다. 왕비를 존자님께 드리겠습니다.”


왕은 수행자를 모시고 왕궁으로 갔습니다. 왕비를 아름답게 치장케 한 뒤에 수행자에게 건네면서 역시나 또 간곡하게 당부했지요.


“최선을 다해 이 분을 보살펴 드려야 하오.”


“명심하겠습니다. 대왕이시여, 존자님을 극진히 잘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수행자는 그토록 원했던 왕비를 얻었습니다. 흡족한 마음으로 왕궁에서 물러나 궁궐의 큰 문을 막 나서려던 때, 왕비가 말했습니다.


“존자시여, 지금 살고 계시는 암자에서 살 수는 없습니다. 집을 한 채 마련해야겠습니다. 왕에게 가셔서 집을 달라고 하십시오.”


왕비의 요청을 받고 수행자는 왕에게 가서 집 한 채를 요구했습니다. 왕은 낡아빠진 오두막 한 채를 주었습니다. 그곳은 사람들이 용변을 볼 때 들락거리던, 다 쓰러지는 허름한 집이었지요. 수행자는 왕비를 데리고 그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왕비가 들어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낡고 더럽고 냄새가 났기 때문입니다. 수행자는 속이 타서 물었습니다. 


“이게 우리 집인데 왜 들어가지 않는 게요. 그럼 어찌하면 좋겠소?”


“이 집을 깔끔하게 손질하고 단장해주세요. 저는 그렇게 고치기 전까지는 이 집에 살지 않을 겁니다.”


수행자가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난감해 하고 있자 왕비가 말했습니다.


“다시 왕에게 가셔서 괭이 한 자루와 광주리를 달라고 하세요. 그걸 가지고 오십시오.”


수행자가 그녀의 말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왕비가 말했습니다.


“자, 집안에 있는 오물과 온갖 지저분한 물건들을 괭이로 긁어모으고 광주리에 담아서 저 멀리 내다 버리십시오.”


수행자는 왕비의 말을 따랐습니다. 집안이 어느 정도 깨끗해지자 왕비가 말했습니다.


“소똥을 구해 와서 벽에 바르셔야 해요.”


그 말을 따르자 왕비가 또 말했습니다. 


“자, 이제 가구를 마련해야겠네요. 왕궁에 가서 침대로 쓸 가구를 날라 오세요. 걸터앉을 의자도 가져오고, 이불도 필요하니 잊지 마시고요. 아참, 항아리와 물병도 실어오세요.”


허름하기 짝이 없던 오두막은 어느 정도 가정집의 꼴을 갖추었습니다. 왕비가 다시 수행자에게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저 물병을 들고 가서 물을 담아 오세요. 항아리에 물이 하나도 없으니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잖아요.”


수행자가 물병에 물을 담아와 항아리에 채워 목욕할 물을 준비하고 목욕을 마친 뒤에 침상을 펼쳤습니다. 간신히 하루의 노동에서 풀려난 그가 왕비 곁에 막 누웠을 때 왕비가 그의 수염을 움켜쥐고서 유혹하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수행자이며, 바라문이지요. 지금도 변함이 없나요?”


왕비가 그의 몸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교태를 부리는 순간 수행자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애욕에 눈이 멀었던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이 애욕에 얽혀 집착하면 할수록 나는 지옥에 떨어져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어서 왕비를 왕에게 돌려주고 나는 히말라야 산으로 들어가자.’


정신을 차린 수행자는 왕비를 데리고 왕에게 갔습니다. 


“대왕이여, 내게는 그대의 왕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게는 이 왕비로 인해 애욕과 집착이 불어나기만 합니다. 왕비를 얻기 전에는 그저 여인을 향한 욕망 하나만이 내 마음에 자리하였습니다. 하지만 동그랗고 사랑스런 눈동자를 지닌 이 여인을 얻자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낳았습니다. 나는 왕비를 돌려주겠습니다.”


수행자가 이렇게 말한 순간 잃어버렸던 명상의 힘을 되찾았습니다. 그는 허공에 날아올라 왕에게 진리를 들려준 뒤 허공을 날아 그대로 히말라야 산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사람 사는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았지요. 수행자는 그곳에서 청정한 수행을 힘써 닦아 다시는 명상의 경지를 잃지 않고서 더 높은 경지로 올랐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뒤에 현재와 연결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의 왕은 아난다이며, 무둘라카나 왕비는 현재의 웁빠반나(연화색) 비구니요, 수행자는 실로 나였다.


(본생경 66번째 이야기)


 

 

◇◆◇

 

무엇보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이성에 마음을 빼앗겨 허둥대던 때가 전생 어딘가에 있었다는 사실에 중생인 저는 조금 마음이 놓입니다. 아름다운 이성을 보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한순간의 이미지에 사로잡혀 긴 시간을 괜히 두근거리게 되고, 남에게 들킬 것 같아서 저 홀로 얼굴이 붉어지고,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로맨스를 상상합니다. 숲속에서 그토록 열심히 수행을 한 사람도 이성에 넋이 나가니 우리 같은 보통의 범부 중생이야 오죽할까요.

 

하지만 한순간에 정신을 차리고서 수행자가 내뱉은 탄식이 오싹합니다. 그 상대방 한 사람만을 갈망할 때면 마음에 욕망 하나만 자리했지만, 그걸 얻는 순간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낳고, 결국 욕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다 엉뚱한 행동도 하고 옳지 못한 일도 저지른다면….

 

히말라야로 서둘러 떠나간 수행자처럼 살지는 못하더라도, 욕망은 결코 충족될 수 없고 또 다른 갈망만을 불러올 뿐이라는 그의 탄식은 기억해야겠습니다. 

 

이미령 (경전 이야기꾼, 불교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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