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고독(給孤獨) 장자를 아시나요? 인도어로는 아나타핀디카라 합니다. 부처님께서 남성 재가신자 가운데 보시하기를 으뜸인 사람이라 칭송한 인물입니다. 이 사람에게 친구가 한 사람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친구와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아나타핀디카에게는 아주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벗이 있습니다. 같은 스승에게 나아가 학문과 기술을 함께 배우며 우정을 쌓아온 사이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 이름이 좀 문제입니다. 칼라칸니(Kalakanni)인데 이 말 속에는 ‘불길한 자’라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칼라칸니가 자랐을 때 그의 집안이 망했습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자 도시에서 가장 큰 부자인 친구 아나타핀디카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지요. 아나타핀디카는 친구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그에게 급료를 지불하고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친구는 대부호인 아나타핀디카의 재산 관리를 아주 성실하게 해내며 지냈습니다. 덕분에 아나타핀디카는 집을 비우고 먼 곳으로 무역하러 떠날 때에도 아무 염려를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워낙 든든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만 칼라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보게, 불길한 자여! 이리 와서 좀 앉아보게.”
“어이, 불길한 자여! 저리로 함께 가세나.”
대부호 아나타핀디카의 지인들이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좋은 말을 해도 모자랄 판에 자꾸 집안에서 ‘불길한 자’, ‘불길한 자’라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지요.
어느 날 지인들이 아나타핀디카를 만나 조언했습니다.
“이보게, 그대 가까이에 그 친구를 두지 말게나. 집안에서 자꾸 ‘불길’이라는 단어가 떠돌지 않는가. 자네는 많은 재물을 가지고 먼 길을 오가는 사람이네. 그런데 집안에서 그런 말이 들리면 불길하고 재수가 없어져서 야차라도 도망쳐버릴 게야. 게다가 그 자는 자네와 격이 맞지 않아. 그는 운이 없고 불길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가난뱅이 아닌가. 어째서 그런 자를 곁에 두었나.”
그러자 아나타핀디카가 말했습니다.
“이름은 그저 입에서 나오는 소리요, 귓가에 스치는 말일 뿐이다. 어진 사람은 이름을 그 사람의 가치판단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이름에 불길한 뜻이 담겼다고 해서 그 이유 하나로 어릴 때부터 쌓아온 우정을 버릴 수 없다.”
아나타핀디카는 친구들의 조언을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먼 곳에 볼일이 있어 평소와 다름없이 친구 칼라칸니에게 집을 맡기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도적들이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 대부호가 지금 집을 비우고 먼 길을 떠났다. 주인 없는 집에 들어가서 물건을 다 실어 내오자.”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도적들은 그 집을 에워쌌습니다. 손에는 무시무시한 흉기를 챙겨 들고 말이지요. 친구의 집을 지키는 칼라칸니 또한 어쩐지 느낌이 이상해서 한 찰나도 졸지 않고 긴장하며 있었지요. 그런데 집 밖에서 조심스레 들려오는 인기척에 설마 했던 일이 벌어졌음을 감지했습니다. 그는 서둘러 집안 식구들을 깨워 명했습니다.
“그대는 소라고둥을 높이 불고, 그대는 큰 북을 둥둥 치시오. 자, 어서 서둘러요.”
영문을 모르고 잠에서 깨어난 집안사람들은 시키는 대로 소란한 소리를 내고 악기를 둥둥 울렸습니다. 밖에서 들으면 집에 아주 큰 잔치가 벌어졌거나 큰 재를 지내려는 것인가 할 정도로 큰 소리를 낸 것이지요. 이 소리를 들은 도적들은 놀랐습니다.
“어럽쇼. 집이 빈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한밤중에 이렇게 큰 집안 행사를 여는 걸 보니 대부호가 출타하지 않고 있었던 게야?”
도적들은 몽둥이며 온갖 흉기를 내던지고 멀리 달아났습니다.
다음 날, 사람들이 집 밖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흉기들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전율하면서 말했습니다.
“아, 정말 다행이다. 아나타핀디카의 친구인 저 현명한 사람이 집을 지키지 않았더라면 도적들이 밀고 들어와서 온 집안을 휩쓸고 가버렸을 것이다. 뜻이 곧고 현명한 벗 덕분에 대부호는 위기에서 벗어나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할 수 있었구나.”
그리고 아나타핀티카가 돌아왔을 때 밤새 벌어진 일들을 빠짐없이 들려주었습니다. 대부호인 아나타핀디카는 말했지요.
“예전에 그대들은 내 집을 지켜주는 벗을 쫓아내라고 말했다. 만약 그대들 말을 듣고서 그 친구를 내쫓았다면 오늘 나는 전 재산을 잃어버려 빈털터리가 되었을 것이다. 자, 이래도 이름이 중요한가. 이름이 판단의 기준이 아니라, 선량하고 유능한 마음이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부호는 집을 지켜준 친구를 불러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급료를 주면서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와서 이 모든 일을 고하였지요.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대부호 상인이여, 그대의 친구 칼라칸니가 친구 집 재산을 지켜준 것은 이번뿐만이 아닙니다. 이전에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대부호 상인에게 전생의 일을 들려주었습니다. 이번 예화는 현생의 일과 전생의 일이 똑같으므로, 현생의 일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전생에 바라나시에 살고 있던 대부호 상인은 칼라칸니라고 불리는 친구의 도움으로 재산을 지킬 수 있었고, 이 일을 두고서 이렇게 시를 읊었습니다.
일곱 걸음을 함께 걷는 것만으로 친구가 되고,
12일 동안 함께 지내면 친한 벗이 된다.
한 달이나 보름을 함께 지내면 친척과 같아지고
그 이상 함께 지내는 사람은 내 자신과 다를 바가 없다.
생각해보라.
그저 나의 안락함을 위해
친구의 이름이 불길하다는 이유로
오랜 세월 벗인 칼라칸니를 어떻게 버릴 수가 있겠는가.
부처님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뒤 과거 전생 이야기를 현재에 잇대어 말씀하셨습니다.
“전생의 칼라칸니는 지금의 아난다이고, 그 때 바라나시의 대부호 상인은 바로 나였다.” (본생경 83번째 이야기)
◇◆◇
어떤 사연으로 불행, 불운이라는 뜻을 이름에 담게 되었을까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칼라칸니가 좀 안타깝습니다. 어쩌면 그의 집안이 몰락해서 친구에게 의탁하게 된 것도, 그 이름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수군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불길한 운명을 지닌 자를 곁에 두지 말라는 지인들의 충고도 사실, 나름 이해는 됩니다. 좋지 않다는 것을 굳이 가까이 둘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충고를 단칼에 거부하며 친구를 향한 믿음을 거두지 않는 아나타핀디카의 굳은 심지가 대단하게 보입니다. 이름은 그저 입에서 나오는 소리일 뿐, 그 이름으로 사람의 됨됨이와 미래를 함부로 논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말은 부처님 말씀과 다르지 않습니다.
만일 지인들의 충고를 따른다면 이번에는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볼까요? 좋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곁에 두면 내 인생도 활짝 꽃피게 될까 하는 문제이지요. 글쎄요. 주변에 좋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 인생과 주변 사람의 인생을 보면 딱히 이름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건 열심히 노력해서 하루하루를 힘차게 살아가고, 자기가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 해낸다면 그 사람은 그것으로 ‘잘 사는 사람’이 될 것이요, 그 사람과 상관없이 나는 또 내 힘껏 내 인생을 살아가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아나타핀디카와 칼라칸니 사이에 일어난 본생경 이야기를 읽다 보니 요즘 사람들이 많이 하고 있는 개명신청으로 생각은 이어집니다.
최근 개명하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예전에 비해서 법적으로도 쉽게 개명허가가 났고, 인터넷으로 신청하고 두 달 정도 기다리면 된다고 하니 옛 이름을 버리고 새 이름을 쓰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작명소에서 뜻이 좋고 부르기도 좋은 이름을 받아와서 새롭게 자신의 이름을 등록한다는데, 개명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불리면 자신이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어쩌면 지금까지보다는 좋은 일이 많이 생기고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고 하지요.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무엇을 망설일까요? 개명하는 것을 뭐라 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요.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그 사람의 새로운 이름을 자꾸 불러주며 당사자의 새로운 인생을 축복해주려 합니다. 나름 보기 좋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름을 바꾼다고 정말 그 후의 인생이 달라질까요? 이름만 바꾸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되는 걸까요? 이름을 바꾸었다면 바뀐 이름에 맞게 지금까지의 생활습관이나 마음가짐도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중요한 건, 이름이라도 바꿔서 인생을 새롭게 살아가려는 내 의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습관으로 살아왔고 어떤 마음그릇으로 세상을 대했고 어떤 생각으로 하루를 마감했는지를 곰곰 돌아보고 앞으로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 더 진지하고 조금 더 적극적이고 조금 더 긍정적이고 조금 더 성숙하게 생활해나가야 합니다. 이름이 바뀌었으니 사람도 달라져야 하겠기에 말입니다.
불자들 가운데서도 인연이 닿는 대로 계를 새로 받고 그에 따라 새로운 법명을 받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법명을 지닌 경우는 다반사이고, “이제부터는 새로 받은 법명으로 나를 불러주세요”라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법명에 맞게 신앙생활과 수행에 전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더군요. 쇼핑을 하듯 이름을 모을 뿐입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름을 바꾸셨다면, 이름을 바꾸시는 김에 일상의 모습과 마음가짐도 바꿔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러면 정말로 더 행복한 미래가 펼쳐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