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조계사 뉴스

조계사보 칼럼

[연재완료] 남전스님의 새로운 신행이야기

남전스님의 새로운 신행이야기

  • 입력 2023.01.01



질문> 불교대학에 다니는 불자입니다. 배운 만큼 실천하라는 스님들의 말씀을 늘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공부 중에 ‘상구보리 하화중생’에 대해 배웠는데, 새해가 되면 저의 좌우명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 의미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이 가르침을 우리가 사는 현대 시대에 어떻게 적용하면 좋은지도 알려주십시오.

 

답변> 흔히 우리 주변에서는 대승적 입장, 대승적 견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지요. 좀 더 넓게 보고 넓게 생각하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여기에서 대승(大乘)은 물론 불교의 대승입니다. 부처님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새로운 불교 개혁운동이자 신행운동의 이념인 대승은, 신분이나 남녀, 지식의 유무(有無), 인종(人種)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피안(彼岸)의 언덕으로 건네주는 불교의 큰 가르침이자 위없는 가르침, 보편적 진리를 지향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질문하신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堤 下化衆生)’은 이러한 대승의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한 가르침 중 하나입니다. 불교에서 추구하는 궁극의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위로는 열심히 수행 정진하여 스스로 부처님께서 성취하신 바와 같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고, 아래로는 중생들을 교화하여 참된 지혜와 자비의 삶을 이끄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위와 아래라는 뜻은 선후(先後)의 의미보다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라는 측면에서 이해합니다. 그래서 불교를 공부하는 분들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대승불교 자리이타의 정신, 즉 자신도 이롭게 하면서 타인도 이롭게 해야 한다는 공동체적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한 가르침이라고 얘기합니다. 부처님의 중생구제라는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신행이지요.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 주체인 보살(菩薩)의 의미입니다. 보살은 진리의 길로 들어서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이자 성불(成佛)의 길로 들어선 자각(自覺)의 존재입니다. 보디삿트바, 보리살타(普堤薩陀)의 줄임말인 보살은 깨달음을 얻은 중생이란 뜻인데 원래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의 구도자였을 때의 모습을 표현한 말입니다. 말하자면 장차 깨달음을 이룰 중생이란 뜻이 강하게 담겨 있는 말이지요.

 

그렇게 의미를 새긴다면, 장차 깨달음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 자신이 바로 보살이며 더 나아가 우리가 모두 보살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특히 대승의 가르침에서는 누구나가 스스로 보살임을 자각하고 보살행을 닦을 것을 강조합니다. 불자들은 스스로가 보살이라는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 더, 저는 상구보리는 자기 안으로, 하화중생은 자기 밖으로 향하는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리를 구하고 그 진리를 이웃과 공유(共有)하는 것, 다시 말해서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의 삶이 일치될 때 진정한 깨달음은 성취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불자들은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과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면서 이웃의 불행과 고통을 마음에 함께 지니며 정진하는 것이 진정한 수행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좀 더 쉽게 표현해 봅니다. 세상을 살면서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 그래서 어디로부터도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자 수행하는 것이 상구보리입니다. 또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 어디에도 잘 쓰이는 사람이 되고 이웃들에게도 보탬이 되는 것을 하화중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宗敎)의 모습이 일반 대중들로부터 멀어지면 그것은 종교의 본래 목적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명(無明)에 쌓여 있는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종교입니다. 그렇게 일반 대중과 함께하는 불교가 대승의 불교이고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가르침을 실현한 불교입니다. 

 

각자의 삶 속에서 자신이 하는 일과 이웃을 위한 자비의 마음을 일치시켜 나가는 수행을, 올해의 발원으로 삼아 열심히 정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남전스님 (조계사 선림원장)

저작권자 © 미디어조계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