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브라흐마닷타 왕에게는 자식이 없어 적적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나들이 나간 왕이 사라나무 둥치 아래에서 낮잠을 자다가 깨어나 위를 바라보았을 때 작고 사랑스러운 새둥지가 보였습니다. 신하를 불러 명했습니다.
“저 둥지 속에 무엇이 있는지 조사해 보거라.”
신하가 올라가보니 그 속에는 새 알이 세 개 있었습니다. 폭신한 솜을 깐 바구니에 알들을 담아 오게 한 뒤 사냥꾼에게 물었습니다.
“이 알들은 어떤 새의 것일까?”
“대왕이시여, 하나는 올빼미 알이고, 또 하나는 구관조 알이고, 나머지 하나는 앵무새 알입니다.”
보금자리 하나에 서로 다른 종류의 알들이 들어 있는 것도 어쩌면 자신과 맺어진 특별한 인연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왕은 대신 세 사람을 불러 명했습니다.
“이 알들은 내 자식이다. 그대들에게 맡기니, 껍질을 깨고 나오면 내게 알려다오.”
대신들은 정성껏 알을 돌봤고, 가장 먼저 알을 깨고 나온 새는 올빼미 수컷이었습니다. 왕은 기뻐하며 벳산타라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며칠 뒤에 구관조가 알을 까고 나왔고 암컷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왕은 쿤달리니라 이름을 지었지요. 마지막으로 앵무새가 부화했고 왕은 쟘부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대신들은 자기들 집에서 새 마리 새를 진짜 왕자와 공주처럼 극진하게 모셨습니다. 왕은 부지불식간에 “내 왕자, 내 공주…”라고 말하며 기뻐했는데 궁중 사람들은 은근히 이런 왕을 흉보았지요.
“날아다니는 짐승이 어째서 ‘내 왕자, 내 공주’라는 거야?”
하지만 왕은 이 새들이 비범한 줄을 진작부터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궁정에 커다란 오두막을 짓게 하고 도시에 큰 북을 울렸습니다. 북소리를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자 왕이 말했습니다.
“벳산타라를 데려 오너라.”
올빼미 벳산타라는 자신을 돌보던 대신에게 보호를 받으며 황금 의자에 올라앉은 채 왕에게 왔습니다. 새는 먼저 부왕의 무릎에 내려앉아서 온갖 재롱을 보이다가 다시 의자로 올라갔지요.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왕이 올빼미 벳산타라에게 물었습니다.
“나라를 다스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질문을 받자 벳산타라는 뜻밖에도 이런 중요한 것을 이제야 묻는 부왕의 게으름을 질타하면서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왕이라면 세 가지 길을 따라서 나라를 다스려야 합니다. 제가 그 가운데 첫 번째 왕도(王道)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엇보다도 거짓말과 분노와 비웃음을 멀리하고 왕의 의무를 행해야 하니, 이것이 바로 왕도입니다.”
올빼미 벳산타라는 이어서 길고 긴 시를 읊으며 아버지 브라흐마닷타왕에게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는 길을 들려주었습니다. 벳산타라의 지저귐이 끝나자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새가 아니라 부처님 같아! 왕의 질문에 부처님처럼 아주 훌륭하게 대답하셨네.”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잦아들자 왕은 벳산타라를 대장군 자리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또 며칠 뒤 이번에는 구관조 쿤달리니를 왕궁의 오두막 앞으로 불러냈습니다. 똑같은 질문을 던지자 황금의자에 앉은 쿤달리니 공주가 대답했습니다.
“부왕이시여, 저는 단 두 구절로 왕의 의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을 것, 이미 얻은 것을 지킬 것. 바로 이것입니다.”
구관조 쿤달리니 공주는 이어서 현명한 사람을 신하로 등용하기를 바라는 등의 11편의 시로 왕도를 말했고 흡족해진 왕은 공주를 나라의 재무를 총괄담당하는 대신(大臣)의 지위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며칠 뒤 왕은 앞에서와 똑같이 앵무새 쟘부카 왕자를 불렀습니다. 왕은 그에게 물었습니다.
“쟘부카여, 내게 말해다오. 힘 가운데 최상의 힘이 무엇인가?”
“대왕이시여, 귀 기울여 들어주십시오. 말씀드리겠습니다.”
앵무새 쟘부카는 마치 앞으로 내민 손에 천금이 가득 담긴 자루를 올리는 것처럼 간절하고도 신중한 자세로 대답했습니다.
“위대한 사람은 다섯 가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팔의 힘이 첫 번째입니다. 그리고 재물의 힘이 두 번째입니다. 자신을 보좌할 대신의 힘이 세 번째입니다. 어떤 가문에서 태어났는가 하는 출생의 힘은 네 번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 네 가지 힘을 얻는 것이 유리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힘은 다섯 번째인 지혜의 힘입니다.”
앵무새 부리를 가진 쟘부카 왕자의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다섯 가지 힘 가운데 으뜸인 것이 지혜의 힘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먼저 지혜의 힘을 갖추고 나서 이익을 추구합니다. 지혜가 없으면 비옥한 토지를 얻어도 두 팔의 힘이 더 센 자에게 빼앗깁니다. 왕족으로 태어났어도 지혜롭지 못한 자가 왕위에 오르면 자신과 나라 전체에 멸망을 불러옵니다. 지혜는 지식을 더욱 단단하게 해주고 지혜는 명성을 높여줍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힘든 세상살이에서도 즐겁게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지혜는 어떻게 얻을까요? 자꾸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박학다식한 사람들과 자주 만나야 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사색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지혜로울 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관통하는 이치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획일적이지 않으니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잘 알며, 언제나 열심히 노력하고 세상의 요구에 맞춰 그에 응하면 왕으로서의 삶은 성공적일 것입니다.
노력하십시오. 꾸준히. 노력하려고 마음을 내십시오. 마지못해 하려는 자는 인생에서 이로움을 얻지 못합니다. 자기 마음 살피는 일을 꾸준히 하며 노력하고 정진하며 기꺼이 마음 내어 실천하는 자는 인생에서 이로움을 얻습니다. 어떤 일에 노력하고 정진해야 하는지를 알아서 전념하고, 자기가 애써 쌓아올린 것을 지키는 일, 부왕이시여, 이렇게 실천해야 합니다. 게으름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게으름에 빠지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 그는 마치 갈대로 만든 집과 같습니다.”
앵무새 잠부카는 다섯 가지 힘을 찬탄하며 그 가운데 지혜의 힘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라면 세상의 모든 생명들을 알뜰하게 보살피고 배려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일러주었지요.
위대한 사람(보리살타)인 앵무새 잠부카는 하늘의 강을 건너는 것처럼, 아주 능숙하게 가르침을 베풀었는데 그 모습은 부처님의 설법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하늘을 흔들 정도로 커다란 박수갈채를 보냈고 흡족해진 왕은 잠부카에게 대장군의 지위를 부여했지요. 훗날 왕이 세상을 떠난 뒤 대신들이 새들에게 왕위에 오르기를 청했지만 새들은 사양합니다.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는 법, 그리고 사람들의 갈등과 송사를 현명하게 해결하는 법 등을 황금판자에 새겨 전해준 뒤 그들은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 길고 긴 이야기를 마친 뒤 현재와 과거 전생을 빗대어 이렇게 마무리하셨습니다.
“그때 왕은 아난다이고, 구관조 쿤달리니는 연화색 비구니이며, 올빼미 벳산타라는 사리불이요, 앵무새 쟘부카는 나였다.” (본생경 521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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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마리 새가 아름답게 지저귀면서 왕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첫째, 거짓말과 분노와 비웃음을 멀리할 것, 둘째,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노력하고 이미 얻은 것을 잘 지킬 것. 셋째, 다섯 가지 힘 그중에서도 지혜의 힘을 열심히 키울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당부는 아주 오래 전 인도의 브라흐마닷타 왕에게만 해당하는 ‘왕의 의무(왕도)’는 아닙니다. 음미해보면, 우리는 누구나 자기 인생의 왕이고 리더입니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내 자신이 내 자리에서 주인공이 되기 위해 실천해야 할 의무이자, 인생에서 큰 이로움을 얻을 수 있는 비법입니다. 첫 번째 항목은 타인을 향한 감정소모를 멈추고 진실하게 사람들을 대하라는 것이지요. 두 번째 항목은 조금 더 노력하라는 촉구입니다. 지금까지 얻은 것 하나 없는 빈손이라고요? 아닙니다. 분명 우리는 재물이든, 경험이든 얻은 것이 있습니다. 그 얻은 것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해 애를 써야 합니다. 세 번째 항목은 힘을 기르라는 것이지요. 다섯 가지 힘은 인생을 헤쳐 가는 데에 나에게 아주 필요합니다. 물론 앵무새 쟘부카는 지혜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지요.
이 이야기는 부처님이 제타 숲에 머무실 때 코살라 국 왕에게 일러주신 것입니다. 법문을 듣고 싶어 온 왕에게 부처님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대왕이여, 왕은 바르게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 존재입니다. 왕이 바르지 않으면 대신들도 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법문을 시작하면서 부처님은, 죽을 때에는 스스로 행한 선행 이외에 믿고 의지할 바가 없다는 점, 그런 까닭에 마음그릇이 작고 어리석은 자를 가까이 하지 말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고 법문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또 이렇게 덧붙입니다.
“옛날의 왕들은 붓다가 아직 출현하기 전에 조차도 현자들을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묻고 지키며 바르게 나라를 다스려서 죽은 뒤에 좋은 곳에 태어났습니다.”
이 말에 솔깃해진 왕이 그 이야기를 청하자 부처님은 바로 위에서 소개한 세 마리 새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지요. 부처님처럼 현명한 분이 현재 살아 있다면 걱정이 없습니다. 문제는, 부처님이 존재하지 않는 시절을 살아가는 경우입니다.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요? 누구에게 바르게 살아가는 법, 현명하게 사는 법을 물어보면 좋을까요? 하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다고 실망해서 물어보기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알에서 막 부화한 어린 새에게라도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본생경은 동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저 ‘우화집’이라 가볍게 여겨 아이들이나 읽는 책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바르게 사는 방법을 동물들에게라도 물어야 한다는 부처님의 당부를 떠올린다면 본생경의 존재감은 어느 때보다 묵직하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