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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보 칼럼
소리와 빛깔 가운데서 고요함을 기르리
날마다 산을 보아도 자꾸만 보고 싶고
시시때때로 물소리 들어도 물리지 않네
그 모습 그 소리에 귀와 눈 맑고 상쾌해지니
소리와 빛깔 가운데서 고요함을 기르리
日日看山看不足 時時聽水聽無厭
일일간산간부족 시시청수청무염
自然耳目皆淸快 聲色中間好養恬
자연이목개청쾌 성색중간호양념
복암충지(宓庵冲止, 1226~1292), 「한가함을 스스로 기뻐하며(閑中自慶)」
우리나라는 워낙 산이 많다 보니 산이 보이지 않는 곳이 드물다. 앞산 뒷산, 앞산의 옆산, 옆산의 뒷산, 뒷산의 옆산, 옆산의 건너산, 그야말로 첩첩 산들 사이에서, 그중 아늑한 곳을 찾아 마을을 이루고 있으니, 어느 곳에 살 건 산이 보이지 않는 곳은 드물다. 산을 보는 것에 질릴 만도 한데, 산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산에 사는 사람에게 계곡물 소리도 그렇다. 들어도 들어도 물리지 않는다. 템플스테이 온 사람 중에 계곡물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소리에 익숙해지면, 계곡물 소리보다 아름다운 음악은 없다. 산과 물소리, 보고 또 보아도 명장면이고, 듣고 또 들어도 명곡이다.
부드러운 산을 보면 불편했던 마음 편안해지고, 기기묘묘한 바위산을 보면 상상력이 발동한다. 규칙적으로 흐르는 물소리 들으면 시끄러웠던 마음 조용해지고, 장쾌한 폭포수를 보면 묵은 번뇌가 시원하게 씻겨나간다.
이렇게 산과 물소리 찬양하고 보니, 부처님 말씀이 생각난다.
“만약 모양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소리로써 나를 찾는다면, 그 사람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니, 결코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금강경)
모양에 집착하고, 소리에 집착해서는 붓다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웨살리에 가신 부처님께서도 이렇게 감탄하셨다.
“아난다여, 웨살리는 아름답구나. 우데나 탑묘도 아름답고, 고따마까 탑묘도 아름답고, 삿땀바까 탑묘도 아름답고, 바후뿟따 탑묘도 아름답고, 사란다다 탑묘도 아름답고, 짜빨라 탑묘도 아름답구나.”(대반열반경)
어떤 좋은 것에도 집착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에는 부처님도 오히려 적극적이셨다.
복암선사는 산을 보고 물소리 들으면 자연스레 귀와 눈이 맑아지고 상쾌해지기 때문에, 그 소리와 빛깔 속에서 ‘고요함을 기르겠다(養恬)’고 노래한다. 산과 물소리는 선사에게 고요함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지, 집착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 불자들은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을 공부해야 한다. 풀어서 말하면, 우리는 바른 생활, 고요한 생활, 슬기로운 생활을 추구한다. 이 시에 따르면, 산을 보고 물소리 듣는 것이 적어도 ‘고요한 생활’을 만들어가는 데는 도움이 된다.
우리 현대인들에게 가장 소홀해지기 쉬운 것이 ‘고요한 생활’이다. 고요한 생활을 하기에는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한가하게 생활하다 보면 경쟁사회에서 도태될 수 있고, 바쁘지 않다 해도 즐길 거리가 너무 많아져서 고요해질 겨를이 없다. 고요해질 겨를이 없으면 행복해질 겨를도 없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우리는 바쁜 일상에 쫓기고 있거나 앞서가는 경쟁자들을 쫒아가고 있다.
고요해질 수 있는 너무도 손쉬운 방법이 이 시 속에 있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쉽게 갈 수 있는 산을 찾는 것이요, 어느 산에 가도 만날 수 있는 물소리를 듣는 것이다.
동명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광명 금강정사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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