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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동명스님의 선禪심心시詩심心

‘큰 덕’을 중시하는 사회를 만들자

  • 입력 2023.02.21
큰 덕은 억지로도 안 되고 능력 있어도 얻을 수 없네
공교한 배움과 다채로운 기능이 꼭 필요한 것 아니네
유능한 이는 오히려 무능한 이의 부림을 받는 것
모름지기 무능함이 유능함을 이길 수 있음을 믿으시게 

大德無爲絶技能    不須工巧學多能 
대덕무위절기능    불수공교학다능 
有能常被無能使    須信無能勝有能 
유능상피무능사    수신무능승유능

진각혜심(眞覺慧諶, 1178~1234), 「유능한 것을 경계하다(誡技能)」

이 시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유능해지려 너무 애쓰지 말라는 것을 이 시의 가르침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보니 이 시에서 진각혜심 스님이 강조하는 것은 무능력이 아니라 ‘큰 덕’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먼저 ‘큰 덕’을 갖추는 것에 힘쓸 것이요, 유능해지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생각해보니 참으로 일리 있는 말씀이다. <삼국지>의 유비·관우·장비, 거기다 제갈량·조자룡까지 포함해서, 이들 중에 진정으로 능력 있는 이는 누구인가? 유비를 빼고는 모두 능력이 출중하다. 관우·장비·조자룡은 힘과 무예가 출중하고 통솔력과 추진력까지 갖추었다. 제갈량은 그야말로 빼어난 전략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들에 비해 유비는 특별한 능력이 없다. 그러나 유능한 이들이 모두 능력 없는 유비를 모시고 유비의 명을 받는다. 무엇 때문인가? 바로 ‘큰 덕’이다.


오늘날 우리 스님들에게도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많은 요구가 있고, 세상 사람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졌으니, 스님들의 지식수준, 지성도 그만큼 높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옳은 말씀이다. 스님들은 자신의 지식수준을 높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스님들의 사회에서까지 스펙이 강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출가하면서 나는 행복해지는 것과는 먼 쓸데없는 욕망과는 결별했고, 무엇보다도 스펙(Specification)과는 결별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승가의 수준도 우리 사회의 수준과 발맞추는 경향이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승가도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 승가에서도 은근히, 아니 노골적으로 스펙을 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각스님이나 혜민스님이 비교적 쉽게 대중적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에는 하버드 출신이라는 것이 컸다. 우리 사회의 허위의식이 짧은 시간에 영웅을 만들고, 또 짧은 시간에 끌어내리기도 했던 것이다. 내게도 유명(?) 문인이라는 스펙이 따라다녔지만, 나는 다행히 베스트셀러 시인이 아니었고, 일류대학 출신도 아니어서 스펙으로 허명을 얻지 않았다.


코로나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일 때 전문가들은 이제 진정으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했다. MKTV의 김미경은 <김미경의 리부트>라는 책에서 학력보다는 경력이 중시될 것이고, 경력보다는 경험이 중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코로나가 너무 빨리 종료되고 있어서일까? 아직 그럴 기미가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승가도 대중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니 대중의 수준과 함께 간다고 하지만, 한편으로 대중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도 승가가 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 승가의 구성원인 출가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높은 스펙이나 고도의 지식이나 특별한 재능이 아니다. 출가자의 진정한 실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는 능력이고, 모든 것은 실체가 없음을 알아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욕심내지 않는 것이며, 모욕을 당해도 화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번뇌를 여의고, 남의 번뇌도 덜어줄 수 있는 이라면 출가자로서는 최고의 능력자이다. 출가자의 진정한 능력의 다른 이름이 이 시의 첫 두 글자 대덕(大德), 곧 ‘큰 덕’이 아닐까?   


적어도, 우리 승가에서만이라도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덕’, ‘큰 덕’임이 증명되었으면 한다. ‘큰 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큰 덕’을 <금강경>의 가르침에서 찾는다. 열심히 보살행을 하면서도 보살행을 했다는 마음이 없고,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태도를 아주 자연스럽게 갖춘 이가 있다면, 그는 ‘큰 덕’을 갖춘 이라 할 것이다.


얼마 전에 나는 한 일간지에 스펙보다는 경력을, 경력보다는 경험을 중시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여도 좋겠다. 경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덕’이다. 


“스펙보다는 경력을, 경력보다는 경험을, 경험보다는 ‘덕’을, 나아가 ‘큰 덕’을 중시하는 사회를 만들자!”


 

동명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광명 금강정사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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