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은 어떤 경전인가?
<법구경(法句經)>은 불교사적 위치에서 보면 빨리삼장 소부경전[Khuddaka-nikaya] 15경 가운데 두 번째 경에 해당한다. <법구경>은 <숫타니파타>와 함께 대표적인 초기경전 가운데 하나로 널리 알려진 경전이다. <법구경>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친설로서, 당시 교단 내에서 다양한 형태로 구전되던 시(詩 [진리])를 모아놓은 것이다. 대략 기원전 4∼3세기에 편집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 유통되고 있는 <법구경>은 두 종류이다. 즉 빨리본[초기불교 경전]과 한역본[대승불교 경전]이다. 대승불교 국가인 우리나라에 20여년 전부터 위빠사나 수행자와 초기불교 학자들이 늘어나면서 빨리본 <법구경>이 널리 유통되고 있다. 두 본의 <법구경>은 배열 방식이나 내용이 같지 않지만, 그 근본 사상은 다르지 않다.
<법구경>은 ‘담마빠다(Dhammapada)’라고 하는데, 담마(Dhamma)는 법이나 진리라는 의미이고, 빠다(pada)는 구(句)·말[언어]이라는 뜻이다. 곧 <법구경>은 ‘가르침의 말씀’ 또는 ‘진리의 길’이라는 뜻이다. 대승경전에서 볼 수 없는 해학과 명쾌한 진리를 간명하게 전달한다.
<법구경>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불교 경전 가운데 가장 애독되는 경전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종교를 떠나 한국인들에게 사랑받는 경전이다.
<법구경>의 역경
내용에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여러 본이 있다. 빨리어 원문 <담마빠다(Dhammapada)>가 현존하며, 26장 423게로 구성된 비유가 담긴 시 게송이다. 대중부 계통인 설출세부(說出世部) 소속인 <대사(大事)>에서는 기원전 2∼1세기경에 편찬된 <법구경>1000품(品, Sahasr-avarga)이 있다. 또한 간다라어로 된 <간다라 법구경>도 있다.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계통에서는 1∼2세기경에 법구(法救, Dharmatrata)가 편찬한 <법구경>과 비슷한 내용을 지닌 작품을 만들어 『우다나품(Udana-varga)』이라고 불렀다.
대승불교 한역 경전으로는 빨리 <법구경>에 가까운 <법구경> 2권과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 4권인 두 본이 있다.
한편 19세기 말부터 많은 영역이 시도되었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881년 독일인 막스 뮐러의 『담마파사』 영역본이 출간되었다. 이후 여러 이본의 영역본과 여러 나라 언어로 출간되었다.
<법구경>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법구경>은 고대 이래로 현재까지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애독되는 경전이다. 그만큼 수천년이 흘러도 이 경에서 담고 있는 메시지가 어필되기 때문이다. 이 경전은 불교의 윤리적·도덕적·교훈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인간의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으로 인해 발생된 고통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서 그 고통을 제거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며, 고통을 제거했을 때의 참 행복과 해탈의 맛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곧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길, 수행 방법, 참된 삶의 길, 진리의 소중함, 신·구·의 3업 청정, 출가 수행자로서 지향해야할 길, 재가자로서 지향해야 할 길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법구경>에 담긴 내용을 주제별로 보면, 연기설·중도·인연·무상·무아·고·인과·오온·참회·정진·죽음·윤회·번뇌·행복·지혜·해탈 등 근본적인 가르침을 주축으로 한다.
주제별로 살펴본 <법구경>
[빨리 법구경(Dhammapada)을 중심으로 함]
자기 마음을 잘 제어해 잘 다스려라.
파스칼(Pascal, 1623~1662)은 ‘불행의 원인은 늘 자기 자신이 만든다.’는 말을 하였다. 정글의 제일 무서운 사자에게 적이 없는데, 오직 무서운 적은 자신의 몸에서 나온 벌레이다. 자신을 극복하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림으로서 해탈 열반에 이를 수 있다. <법구경>에는 이 부분이 생략되어 있는데, 자신을 다루고 자신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인욕이다. 부처님께서도 “가장 큰 복이 보시이지만, 보시보다 인욕이 더 큰 복이다. 인욕은 편안한 집, 재앙과 유혹에 깃들지 아니하고, 인욕은 커다란 배, 험난한 바다를 헤쳐 나갈 수 있다.”고 하셨다.
“자기야말로 자기의 주인이다.
밖의 어느 누구라도 그대의 주인이 될 수 없다.” #160
“전쟁터에서 백만 적군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 한 사람을 이긴 사람이 가장 위대한 승리자다.” #103
“자기를 이기는 것이 제일이다.
이런 사람을 사람 중의 왕이라고 한다.
다른 여러 사람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오직 자기를 이겨야 한다.” #104
“자기 자신은 자신을 주인으로 한다.
자기 자신 이외에 주인이 따로 없다.
장수가 말[馬]을 잘 다루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잘 다루어야 한다. #380
업 그리고 인과이야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았다고 했을 때, 그 깨달은 내용이 연기설이다. 감히 중생의 입장에서 부처님의 깨달음을 언급하지만 연기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심오한 진리이다. 이 연기설은 다양한 내용으로 발전했는데, 인과(因果) 설도 연기 사상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부처님께서는 이 연기설을 ‘내가 아닌 누구라도 깨달으면, 연기설을 언급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창조설이 아니라고 하셨다. 이 말에는 보편타당한 우주원리의 법칙이 담겨 있다는 말이다. 연기설의 인과설을 보면, 선인(善因)에는 선과(善果)가 열리는 것이요, 악인(惡因)에는 악과(惡果)가 열린다. 개인에게 있어 젊어서 노력한 만큼 늙어서 과보가 있을 것이요, 대인관계 또한 복을 지은 만큼 과보가 따른다. 이 인과설은 출가자나 재가자 모두 성불하는 것보다 더 중시해야할 진리라고 본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려고 하지 말라.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려고 하면,
업의 인과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이다.” #005
“사람이 비록 악행을 했을지라도
그것을 자주 되풀이하지 말라.
그 가운데는 좋은 일이 없나니,
악이 자꾸 쌓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117
“사람이 비록 복을 짓거든 그것을 자주 되풀이 하라.
그 가운데는 좋은 일이 있나니,
복이 자꾸 쌓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 #118
“젊어서 청정한 행을 닦지 아니하고
또한 젊어서 재물도 모으지 못했다면
(늙어서) 고기 없는 빈 연못을 속절없이 지키는
늙은 따오기처럼 쓸쓸히 죽어간다.!” - #155
악업을 돌려서 선업으로 전환하라.
<화엄경>에는 “범부에게 세 가지 병이 있는데, 탐·진·치 3독이다. 탐욕의 병이 있는 사람에게는 백골관이나 부정관(不淨觀) 수행을 하게 하고, 성내는 병이 많은 사람에게는 자비관(慈悲觀)을 수행케 하며, 어리석은 병이 있는 사람에게는 연기를 관(觀)하게 하라.”고 하였다. 초기불교 경전을 비롯해 대승불교 경전을 망라해 가장 강조하는 내용은 탐·진·치 3독 제거이다. 특히 경전에서 3독을 여의는 방법으로 계·정·혜 3학을 강조하고 있다.
“마음은 편안하게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는다.
끊임없이 변화해 끝을 모를 정도이다.
지혜로운 이는 잘 알아서 악을 돌이켜 복으로 만든다.” #29
“비록 불자로서 경전을 적게 독송할지라도
진리에 수순하고, 탐·진·치 3독을 여의며,
정법을 배우고, 이생과 내생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으면
이 사람을 참다운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다.” #20
“수행자여! 그대의 배 안에서 물을 퍼내라.
그러면 배는 가벼워져서 순조롭게 항해하리라.
탐욕과 성냄을 제거한다면
그대는 해탈 열반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이다.” #369
행복한 삶의 길 - 불교적 웰빙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어떤 목적지에 둔다. 어떤 일을 성취해야 하고, 경제가 풍족해야 행복의 목적지가 도달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행복의 목적지는 없다. 곧 삶의 과정 과정에서 행복을 만끽하고, 자각해야 한다. 지금 현재에 행복하지 않다면 미래의 행복은 없다. 그러니 과거를 걱정하지 말고, 미래를 염려하지 않으며, 현재의 삶에 충실하면서 현재의 일과 사람에 올인(all in)한다면 바로 그 자리가 행복이다. 한편 자신을 잘 제어하는 중도적 삶에서 만족할 줄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웰빙(well-being)이다.
“죽기 전에 그릇된 집착이나 소견을 버려라.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에도 미련을 갖지 말라.
현명하게 관찰하면, 미래의 일에 걱정할 것이 없다.” #849
“과거에도 머물지 말고, 미래·현재에도 머물지 말라.
마음이 과거·현재·미래,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다면
번뇌의 고통을 받지 않는다.” #348
“집을 소유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상관없이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적은 것에 만족하고, 욕심이 없는 사람,
나를 그를 위대한 성자라고 부른다.” - #404
“복이나 죄를 함께 여의어 마음 두지 않고,
그 어느 것에도 집착이 없으며,
슬픔과 욕심이 없는 사람,
나는 그를 위대한 성자라고 부른다.” - #412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기
마라톤에서 가장 힘들 때가 도착점(finish)을 남겨놓은 100미터 지점이라고 한다. 어떤 일이든 용두사미가 되지 않고, 끝맺음이 중요함을 의미한다고 본다. 불교에서 죽음의 완성인 열반·해탈을 중요시 하듯이 웰다잉(well-dying)이 삶의 완성이라고 본다. 미리 우물을 파 놓아야 꼭 마시고 싶을 때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동안 땀과 눈물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웰다잉은 저절로 될 거라고 본다. 곧 삶의 과정 과정을 중요시해 행복한 삶을 일구며, 주변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유지한다면, 죽음 또한 아름답게 회향될 것이다. 곧 인생을 열심히 살면[웰빙], 행복한 죽음[웰다잉]을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 과보이다. 무엇을 두려워하랴! 이 순간 순간 열심히 살면 되지 않는가?!
“이 몸은 멀지 않아 반드시 땅으로 되돌아간다.
정신이 한번 몸을 떠나면,
해골만이 땅 위에서 뒹굴 것이다.” #41
“허공도 아니요, 바다도 아니다. 깊은 산 바위틈에 숨어도
죽음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128
“소치는 목동이 채찍으로 소를 몰아 목장으로 가는 것처럼
늙음과 죽음도 또한 그러해 사람의 목숨을 쉼 없이 몰아간다.”#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