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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앞에서 발가벗은 수행승
삽화 | 견동한
사밧티(사위성)에 살고 있던 대부호가 아내와 사별한 뒤 출가했습니다. 그런데 부자로 살던 때의 생활방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자신만의 승방과 부엌을 짓고, 커다란 창고에 온갖 식료품과 생필품을 가득 채웠기 때문입니다. 속가 하인들이 때마다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지어 올려 늘 배불리 먹었고, 옷도 아주 많이 장만해 놓고서 수시로 갈 아입으며 지냈습니다. 이렇게 세속에서 호화롭게 살던 모 습 그대로 유지한 채 승원 옆에서 출가자로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수많은 옷과 이부자리들을 꺼내서 말리고 있을 때, 다른 지역에서 온 수행자들이 그걸 보고 경악했습니다.
“이 수많은 옷과 이부자리들은 대체 누구 것입니까?”
“전부 내 것입니다.”
그의 태연한 대답에 타지의 수행승들은 뭐라 이를 말이 없어 그를 데리고 부처님에게 나아갔습니다. 부처님께서 짐짓 물었습니다.
“오고 싶어 하지도 않는 이 수행승을 왜 데리고 왔는가?”
“세존이시여, 이 수행승은 너무나도 많은 살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수행승은 부자입니다.”
세속 사람도 놀랄 정도로 수많은 살림을 지니고서 수행자를 자처하며 살고 있었으니 동료들이 부자라 할만도 합니다. 부처님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수행승이여, 그대를 부자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가?”
“네, 맞습니다.”
그가 부처님에게 당당하게 답하자 부처님이 나무랐습니다.
“어떻게 수행한 사람으로서 부자일 수가 있는가. 나는 수행승들에게 욕심을 줄이고 만족할 것과, 홀로 지내며 정진하기를 권하고 찬탄하지 않았던가.”
스승의 꾸지람을 듣자 뜻밖에도 그 수행승이 발끈 화를 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살라는 말이오?”
그러더니 옷을 벗어던지고 아랫도리만 겨우 가린 채 부처 님과 동료 수행자들 앞에 뻗대었지요.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수행승들은 민망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부처님은 조용히 그의 옷으로 그 몸을 가려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승이여, 그대는 전생에 물속의 나찰이었을 때조차도 부끄러워하는 마음(慚愧心)을 구하면서 12년을 지냈다. 그런데 지금 어찌해서 이렇게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을 다 벗어버리고 발가벗은 채 뻗대고 서 있단 말인가?”
부처님의 조용한 음성을 듣자 금세 이성을 되찾은 그 수행승은 벗어던진 옷을 주워 입고서 부처님에게 절을 올린 뒤 한쪽에 앉았습니다.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수행승들이 그의 전생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청하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아주 오랜 옛날 카시왕국의 바라나시에 브라흐마닷타왕 에게 왕자가 태어났습니다. 그 이름은 보리살타. 왕자가 걸음마를 뗄 무렵 두 번째 왕자가 태어났고 달(月)이라는 뜻의 찬다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왕비가 세상을 떠났고 왕은 새 왕비를 맞았습니다. 새 왕비는 곧 왕자를 낳았고 태양이란 뜻의 수리야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막내 왕자를 유난히 귀여워한 왕이 왕비에게 말했습니다.
“이 아이를 위해서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하시오. 무엇이든 들어주리다.”
왕비는 이 말을 기억해두었습니다. 섣불리 소망을 말하기 보다는 가장 큰 소망을 가장 좋은 때에 왕에게 청하려 고 작심한 것이지요. 막내왕자가 어느 정도 자라자 왕비가 왕에게 청했습니다.
“폐하께서 오래 전 약속하신 것을 기억하시지요? 제게 딱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이 아이에게 왕위를 물려주십시오.”
왕은 이 당돌한 요청을 한 마디로 거절했습니다.
“내게는 이 아이 위로 왕자가 둘이나 있소. 그 아이들은 횃불처럼 주변에 눈부시게 빛을 뿌리며 다니고 있소. 그 왕자들을 제쳐두고 그대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줄 수 는 없소.”
새 왕비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거듭 약속을 지키라며 청하고 또 청하였지요. 왕비의 청이 너무 간곡하자 왕은 고민에 잠겼습니다.
‘자칫 새 왕비가 나의 두 왕자를 해칠 수도 있겠구나.’
왕은 두 왕자를 불러서 사정을 이야기하며 조용히 권했습니다.
“나는 수리야 왕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지 않지만 그 어미가 너희에게 무슨 해를 끼칠지 모르겠구나. 일단 너희는 숲 속 깊이 들어가서 숨어 살아라. 내가 죽은 뒤에 나와서 이 나라를 다스리기 바란다.”
그런데 두 왕자가 궁전을 떠날 때 정원에서 놀고 있던 수리야 왕자가 자신도 형들과 가겠다며 따라나섰지요.
그리하여 왕자 세 사람은 히말라야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나무 아래에 앉아 잠시 쉬고 있을 때 제일 큰 왕자(보리살타)가 막냇동생인 수리야 왕자에게 말했습니 다.
“저기 호수가 보이지? 걸어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저 호수로 가서 목욕하고 물을 마셔라. 그리고 연잎으로 물을 떠 서 우리에게 가져다 다오.”
수리야 왕자는 큰형의 말대로 호수로 향했습니다.
한편, 그 호수에는 나찰귀신이 살고 있었지요. 이 귀신은 누구든 호수에 내려오면 ‘신의 의무’를 물었습니다. 대답하는 자는 물을 마시고 떠나갔고 대답하지 못하는 자는 잡아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알 길이 없는 수리야 왕자가 그 호수로 내려갔다가 나찰에게 붙잡혔습니다.
“멈춰라. 너는 신들의 의무를 알고 있는가?”
나찰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수수께끼라서 대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는 왕자를 끌고 들어가서 물속에 있는 굴에 가두었습니다.
맏형인 보리살타는 동생이 돌아오지 않자 바로 밑의 동생 찬다 왕자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찬다 왕자 역시 신들의 의무를 묻는 나찰에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보리살타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서 직접 호숫가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호수로 내려간 두 왕자의 발자국이 찍혀 있지만 올라 온 발자국은 없었습니다.
이 호수에 사람을 잡아먹는 나찰이 있음을 직감한 보리살 타는 무기를 들고서 나찰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물 속의 나찰은 아무리 기다려도 그가 물가로 내려오지 않자 나무꾼으로 변장하고서 말을 걸었습니다.
“무척 피곤해 보이는데 어서 저 호수로 내려가서 물을 마시고 목욕도 하지 그러시오?”
보리살타는 그를 보는 순간 나찰임을 알아차리고서 물었 습니다.
“네가 내 동생 둘을 붙잡았지? 대체 왜 그런 짓을 했나?”
“이 호수에서 신들의 의무를 모르는 자는 무조건 잡아먹 는 게 내 일이다.”
“그 정도로 신들의 의무를 알고 싶다는 말인가.”
“그렇다. 정말 그것을 알고 싶다.”
보리살타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말해주겠다. 하지만 그 고귀한 의무를 말하기에 내 몸이 더럽혀져 있다.”
나찰은 서둘러 첫째 왕자인 보리살타를 목욕하고 먹고 마시게 하고서 꽃으로 그의 몸을 장식하고 향을 뿌린 뒤 에 화려한 천막 중앙에 자리를 마련했지요. 보리살타가 자리에 앉자 나찰은 그의 발아래에 앉았습니다.
“그대는 공손한 마음으로 신들의 의무를 귀 기울여 들어 보아라.”
그리고 다음과 같이 시를 읊었습니다.
부끄러워하는 마음과
창피한 줄 아는 마음을 갖추고
선한 이치를 깊이 사유하는
바르고 선량한 사람들
세상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신들의 의무를 지키는 자라 한다.
나찰은 이 법문을 듣는 순간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솟았 습니다. 보리살타를 향한 깊은 믿음을 일으켜 동생 둘을 모두 건네주었습니다. 동생들을 모두 살린 보리살타가 나찰을 내버려둘리 없습니다.
“그대는 전생에 지은 악업에 의해서 다른 자들의 피와 살 을 먹는 야차(나찰귀)로 태어났소. 그런데 이제 또 다시 같 은 악행을 짓고 있으니 지옥과 같은 괴로운 곳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오. 그러니 지금부터는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도록 하시오.”
보리살타는 나찰을 일깨운 뒤에 그의 호위를 받으며 숲에서 계속 머물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별자리를 살피던 중에 부왕이 세상을 떠났음을 알고서 야차를 데리고 바라나시로 돌아와 왕위에 올랐지요. 그리고 찬다 왕자에게는 부왕(副王)의 지위를, 수리야 왕자에게는 장군의 지위를 주고, 나찰에게는 쾌적한 곳에 거처를 마련해준 뒤 정의롭게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부처님은 이 이야기 끝에 고집멸도 사성제를 제자들에게 자세하게 들려주셨습니다. 그러자 부자 수행승은 성자의 첫 번째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부처님은 과거와 현재 이야기를 이렇게 결부시켰지요. “물속의 나찰은 지금의 이 부자 수행승이며, 수리야 왕자 는 아난다, 찬다 왕자는 사리풋타, 맏형인 보리살타는 실로 나였다.” (본생경 6번째 이야기)
살면서 실수하거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런데 부처님은 악업을 짓지 말라고 권하지만, 그보다 더 간곡하게 요청합니다. “설령 그릇된 일을 저질렀더라도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고요. 스스로 돌이켜서 자기 행동에 부끄러워하는 것을 참(慚, hir )이라 하고, 다른 이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마음을 괴(愧, ottappa) 라 합니다. 제부끄러움, 남부끄러움이라고 번역하기 도 하지요. 하늘의 신들이 지켜야하는 다르마(deva dhamma)라고 불릴 정도로 이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마음공부하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물귀신으로 살던 전생에도 그토록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추구하던 그 수행승이 어찌 이런 민망한 돌출행동을 벌였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입니까. 어깃장을 놓으며 옷을 벗어던진 행동을 계기로 법 문을 들을 수 있었고 성자의 단계에 들어섰으니 말입니다.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두 가지 마음, 참심과 괴심은 성자가 챙겨야 하는 재산목록(七聖財)에도 들어 있으니 기억해야겠습니다
이미령 (경전 이야기꾼, 불교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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