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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 정은우의 우리 곁에 오신 부처님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 입력 2023.03.27

고려의 귀족을 보는 듯 멋있는 부처님 

 

‘콩팥메는 아낙네야 배적삼이 흠뻑 젖는다. (중략)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소리만….’ 
 
애처로운 노래자락에 흠뻑 젖는 그 청양군 칠갑산 자락에 천년고찰 장곡사가 자리하고 있다. 노랫자락을 읊조리고 풍경소리를 들으며 걷다가 돌탑에 돌을 올려 소원을 빌면 자연과 합일된 힐링을 경험하게 된다. 잘 정비된 사찰의 곳곳에서는 완전한 모습은 없어지고 부분만 덩그러니 남은 석탑, 석등과 같은 석조 부재들도 볼 수 있다. 전각의 내부에는 통일신라부터 조선시대에 제작된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불상과 불화들이 있어 사찰의 역사와 지나온 세월을 체감하게 된다. 
장곡사는 다른 사찰과 달리 상대웅전과 하대웅전 두개의 대웅전을 갖춘 사찰로도 유명하다. 동남향으로 자리한 상대웅전은 맞배지붕을 한 다포식 건물로 장곡사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바닥에는 드물게 마루가 아닌 전돌이 깔려 있는 옛스러운 모습으로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전돌에서 나무 마루로 바뀌는 시점은 조선시대부터로 알려져 있다. 상대웅전 안에는 국보로 지정된 청양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를 비롯한 3구의 철불이 봉안되어 있다. 각 철불은 나무로 제작된 광배, 돌로 된 각기 다른 대좌에 안치되어 있다. 철불 앞면에는 1653년에 제작된 불탁이 있다. 허리를 구부려 밑면을 보면 “순치십년계사 칠월구일 조성(順治十年癸巳七月九日造成)”이라는 묵서도 확인 할 수 있다. 3구의 철불과 나무 광배, 돌 대좌, 불탁, 바닥의 연화문 전돌 등 전각의 내부 구성은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장곡사만의 독특하고 이색적인 모습이다.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하대웅전에는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1346년에 조성된 이 불상은 90.2cm 크기에 타원형의 갸름한 얼굴, 뚜렷한 이목구비에 단정하면서도 멋진 신체 비례에서 마치 고려시대의 귀족을 실제 보는 듯 고귀함이 느껴진다. 머리에는 둥글고 큰 육계가 있으며 머리 사이의 중앙계주(髻珠)와 이마의 백호(白毫)는 수정으로 감입하였다. 중앙계주는 홈을 판 다음 둥글고 큰 반투명의 수정을 넣었는데, 조선시대에 유행하는 나무로 만든 반달형계주와는 다른 고려에서만 볼 수 있는 품격있는 모습이다. 근엄한 얼굴, 반원형의 긴 눈썹과 깊이 반개한 눈, 사실적으로 표현된 긴 코와 이에 비해 작게 처리된 입술 등은 정면에서 보면 마치 우리의 얼굴을 보는 듯 사실적이다. 두꺼운 대의, 노출된 가슴 밑으로 보이는 내의와 리본처럼 묶여진 띠, 그 끝에 달린 치레장식(금구장식)은 가까이서 관찰해 보면 문양까지 조각하여 지극히 정교하다. 단정하면서도 부드럽게 처리된 옷주름과 흘러 내린 무릎위의 주름들은 서로 대조를 이루며 불상 전체에 유기적인 통일성과 세련된 긴장감을 더 한다. 잘 다듬은 손톱과 도톰한 손가락, 손바닥에 새겨진 가는 손금은 실제의 손을 보는 듯 입체적이며, 왼손에 든 약합은 약사불을 상징한다. 

발원문


금동약사여래좌상의 가치가 더 높이 평가되는 점은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복장유물로서 1950년대 말 개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봉된 이후 여러 전문가들에 의해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오랫 동안 사찰이 아닌 다른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2015년 다시 장곡사로 돌아오면서 본격적인 조사가 다시 이루어지고 2021년 불상과 함께 국보로 승격되었다.
현재 남아 전하는 복장유물은 모두 43건으로 개봉 당시에 확인된 다수의 경전류, 합형태의 후령통 등은 없어졌지만 상과 관련된 풍부한 기록과 귀하고 중요한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복장유물 가운데 압권은 10m(47.8X1058cm)가 넘는 비단에 묵서로 쓰여 있는 발원문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발원문 가운데 가장 길고 아름답다. 한 폭의 비단을 홍색으로 천연염색을 들였는데 아름다운 무늬와 천연염색, 날염은 그 우수성을 자랑하듯 아무런 변색없이 잘 남아 있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 긴 발원문의 시작은 약사여래의 12대원 공덕이다.

친전사 백운과 어을진 발원 묵수(세부)


친전사 백운과 어을진 발원 묵수(세부)

‘어두운 곳에서는 등불이 되어 비추고, 질병의 고통이 있는 곳에서는 의왕(醫王)이 되시고, 고통의 바다에서는 배가 되어 건너게 해주고, 굶주림과 추위에서는 옷과 먹거리를 만들고, 빈곤한 곳에서는 마음대로 보물을 만들고, 속박되어 있는 곳에서는 해탈왕이 되시고, 감옥에서는 사면령을 내게하시고. 가뭄이 들 때에는 큰 비를 내리시고….’ 등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대면하는 모든 재난을 막아주시는 우리 곁의 친근한 부처님임을 강조하였다. 
그 뒤에는 <직지>로 유명한 발원자인 친전사(親傳師) 백운(白雲 화상 경한)을 크고 진하게 썼으며 문장의 사이 사이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는 1078명에 이르는 시주자들의 이름을 빼곡하게 적었다. 확인은 어렵지만 공민왕의 몽고식 이름인 빠이앤티무르(大元 伯顔帖木兒 長壽)가 오래 살기를 비는 내용도 있다. 이 이름들은 글씨의 크기도, 굵기도 다르며 지우고 다시 쓴 이름까지 그 하나하나에 간절한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런데 발원문의 마지막 부분에는 4건의 작은 직물에 시주자의 이름을 적어 원문에 꿰맨 특이한 점도 발견된다. 이 역시 유일한 사례인데 두살배기 어을진(於乙珍)이 오래 살기를 발원하거나, ‘금산군부인전씨매의 丁女成男’이 주목된다. ‘정녀성남’은 아미타여래의 48대원에도 나오며 약사여래의 12대원 중 8번째 대원이다. 남성으로 변화시켜달라는 고려여인들의 적극성과 이를 실현시켜주는 약사여래의 강력한 영향력이 결합한 결과이다. 불상이 조성된 1346년의 고려후기는 혼인으로 이어진 원과의 관계, 곧 이은 왜구의 침략과 홍건적의 난이 시작되는 왕조 말기의 어수선하고 불안한 사회였다. 발원자들이 원하는 오래 살기를 희망하는 무병장수에 대한 염원은 당시의 사회상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향주머니


오방색번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약 20cm 크기의 오방색 번으로 이 역시 처음 발견된 작품이다. 번의 윗부분인 번두는 금사를 넣어 짠 아름다운 오방색에, 밑부분은 두겹으로 되어 펼칠 수 있는 구조이며 위에는 매달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색의 배합과 직조가 가능했던 고려의 기술적 우수성에 다시 한번 경탄을 하게 된다. 
금낭(錦囊)인 비단주머니 역시 주황과 초록의 색 배합에 이를 묶은 긴 매듭은 어제 한 듯 정교하고 생생하다. 그 안에서 명주솜, 팔각, 곽향, 청목향 등이 발견되어 향을 담은 주머니임을 알 수 있다. 복장물에서 나온 아름다운 비단주머니는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에 쓰여 있는 각종의 향과 영락 등의 각 공양물을 오색의 실로 만든 주머니에 담아 간수하라는 내용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온갖 도향과 말향과 소향과 화만과 영락과 번개와 기악으로서 공양하여 오색의 실로 주머니를 만들어 이를 갈무리하고 깨끗한 곳을 깨끗하게 치우고 높은 자리를 만들어 안치하면.’)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은 불교중앙박물관이 주최하는 ‘만월의 빛 정토의 빛’ 기획전에 전체 복장물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만월의 빛’에 해당하는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은 복장물 전체가 처음으로 모두 공개되는데 6월 25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일반적으로 사찰에서의 예배불상은 우리가 바라보는 눈높이보다 더 높은 곳에 있어 우러러 보며 예불을 드리게 된다. 그러나 박물관 전시실에서는 우리와 눈을 마주보며 바로 앞에서 불상을 감상하기 때문에 시각적인 느낌이 매우 다르다. 목은 길고 얼굴은 더 작아 보이는 비례의 차이 뿐 아니라 부드럽게 접혀진 옷주름과 손가락, 발가락, 손금까지 자세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눈 높이에서 바라 보는 전시실에서의 약사여래좌상과 원 사찰인 장곡사에서 예불을 드리는 약간 높은 위치에서 바라 보는 금동약사여래좌상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알록달록 많은 꽃들이 피고 지는 완연한 봄날이지만, 바깥 세상과 달리 산사는 항상 절제된 채 부처님을 모시고 기도하는 조용한 공간이다. 일상을 살면서 휴식과 자유로움이 필요할 때, 산사의 고즈넉함과 여유가 필요할 때, 고려 귀족을 닮은 멋진 장곡사 약사부처님과 기분 좋은 교감을 해 보기를 권해 본다. 



 

정은우 (부산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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