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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과 함께 매화 아래 앉아서
사랑스레 보나니 옛 친구의 편지 받은 듯
험하고 어두운 길 겨우 지나 내 방안을 비추네
먼 강 바다 언덕을 외로이 넘고 넘어
가늘어도 밝게 북두칠성을 흩뜨리네
미인의 눈썹을 그리려는가 거울을 열어보니
고래가 토한 낚싯바늘이 꼬랑지에 걸렸네
너와 함께 시를 읊으며 매화 아래 앉으니
맑은 빛이 병든 나를 일으켜세우는구나
愛看如得故人書 纔破昏衢照索居
애간여득고인서 재파혼구조색거
孤且逈分江海岸 纖猶明散斗牛墟
고차형분강해안 섬유명산두우허
蛾成眉畵開粧鏡 鯨吐釣鉤掛尾閭
아성미화개장경 경토조구괘미려
伴爾吟詩梅下坐 淸輝解起病餘余
반이음시매하좌 청휘해기병여여
초승달과 함께 이렇게 놀 수 있다니! 초저녁에만 잠깐 만날 수 있는 초승달, 낮에도 떠 있지만 바쁘다 보면 발견하지 못하고, 주위가 너무 밝아서 사실은 잘 보이지 않고, 어두워질 무렵부터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초승달! 선사는 그렇게 잠깐 만날 수 있는 초승달과 마주하는데도 마치 오랜만에 죽마고우를 조우한 것처럼 설레고도 반가운 마음을 멋들어지게 표현했다.
나는 최근 언제 초승달을 만났던가? 스마트폰 앨범을 살펴보니, 올해 정월 초사흗날과 이월 초나흗날 찍은 사진이 있다. 초승달을 보고 심마니가 산삼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지만, 나와 초승달의 만남은 사진 몇 컷 찍는 것으로 끝났다.
다시 찾아오는 초승달은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이 시가 초승달 활용법을 친절하게 전해준다.
첫째, 초승달을 옛 친구의 편지처럼 반가워하는 것이다. 오늘날처럼 이메일이 있는 때도 아니고, 우체국을 통해 편지를 신속하게 배달하는 시스템도 없던 시대에 친구의 편지는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그것은 편지라기보다는 구절양장의 산길을 걸어걸어 온 친구와 한가지다. “먼길 와주어서 참으로 고맙네!” 이런 마음으로 초승달을 맞이하는 것이다.
둘째, 초승달의 이미지에 흠뻑 취해보는 것이다. 초승달의 이미지는 미인의 눈썹을 닮았다. 원만하면서도 가늘고 부드러우면서도 가냘프다. 거울을 여니 그 속에 초승달의 눈썹이 마치 그림처럼 그려져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 모습 한참 들여다보아도 싫증나지 않으리라. 초승달의 눈썹 이미지가 아련한 감동을 준다면, 고래가 토한 낚싯바늘 이미지는 미소를 자아낸다. 고래는 북두칠성이고, 낚싯바늘은 초승달이다. 초승달이 북두칠성 끄트머리에 살짝 걸려 있는 모습을, “고래가 토한 낚싯바늘이 꼬랑지에 걸렸네”라고 노래했으니, 이 대목에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도 좋겠지만, 파안대소하면 더욱 좋겠다. 미소를 짓건, 파안대소하건 그 이미지를 감상하는 마음은 한결 건강해진다.
나는 아직 초승달을 이렇게 멋지게 영접해보지 못했고, 초승달이 자아내는 풍경을 이토록 정감 있게 그려낸 시도 보지 못했다. 바야흐로 영상의 홍수 시대이지만, 선사가 묘사한 영상미를 창출할 크리에이터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시인들의 감성을 자극한 초승달은 많았다. 초승달을 박성우는 “어둠 돌돌 말아 청한 새우잠”(초승달)이라 표현했고, 박태일은 ‘하늘 천막에 그은 빗금’(초승달)이라 표현했으며, 나희덕은 “달 저편에서 말을 건네는 손”(초승달)이라 느꼈으며, 김경미는 ‘검은 코뿔소를 끌고 가는 외뿔’(초승달)로 보았고, 이기철은 “초승달을 바라보면서도 글썽이지 않는 사람은/ 인생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선언했다. 모두 초승달에 대한 탁월한 시적 표현이자 해석이지만, 현대의 시인들은 초승달을 친구로 만들지 않았다.
셋째, 초승달과 시를 나누는 친구가 되는 것이다. 금강선원의 혜거스님이 「선종영가집」을 강의하면서 “시야말로 최고의 풍류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초승달과 북두칠성과 견우성이 자아내는 천상의 영상미 앞에서 어찌 시가 없으랴! 선사는 초승달과 함께 매화나무 아래 앉아 시를 읊는다. 이만한 풍류가 어디 있으며, 매화꽃 그늘에 마주 앉은 초승달보다 더 훌륭한 시인이 어디 있으랴! 초승달을 이렇게 맞이한다면, 이토록 아름다이 맞이할 수 있는 여유와 낭만과 사랑이 있다면, 그에게 어떤 탁한 기운이 깃들 수 있겠는가. 선사는 말한다.
“맑은 빛이 병든 나를 일으켜 세우는구나!”
달과 만나면서 느끼는 점은 달은 참 외로운 이미지라는 것이다. 달이 동행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달이 누군가를 만나 오순도순 얘기 나누는 이미지로 비친 적이 있는가? 초승달이건 반달이건 보름달이건 그믐달이건, 달은 오직 혼자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간다. 참으로 묵묵하게, 무수한 별들이 말을 걸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은 제 갈 길을 간다. 그 달을 안방에 앉혀놓고 얘기 나누며, 그 달과 매화 아래서 마주 앉아 시를 나누는 이는 선사밖에 없으리라. 극암선사에게 배운 대로, 나도 다음에 초승달을 만나면, 달처럼 외로운 수행자로서 봄꽃 아래서 함께 시를 나누어보리라!
동명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광명 금강정사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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