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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이뤄지게 하는 비결
삽화 | 견동한
이 이야기는 세존께서 제타 숲에 머물러 계시면서 가뭄이 이어지던 때 비를 내리게 했던 일과 연관 지어서 들려주신 것입니다. 이번에는 세존이 현생에 비를 내리게 했던 일을 들려드리지요.
어느 때 코살라 국에서 아주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곡물은 모두 타들어갔고, 연못이나 호수도 물이 말라버렸습니다. 연못에 피어 있던 연꽃이나 갈대줄기도 죄다 말라버리고 말았지요.
제타 숲 입구 작은 오두막 근처에는 있던 연못도 사정은 같았습니다. 그 연못에 살고 있던 물고기나 거북은 점점 잦아들어 가는 물에 몸부림을 쳤고 간신히 살아남은 물고기들은 진흙 속으로 몸을 파묻거나 물풀에 숨어 열기를 피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이런 움직임을 까마귀나 기러기가 놓칠 리 없습니다. 날카로운 화살 같은 부리로 물고기를 집어내서 살려고 발버둥 치는데도 먹어치웠습니다.
부처님은 숲 속 연못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처참한 살육의 현장을 보고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연민이 솟구친 부처님은 생각하였지요.
“오늘 나는 비를 내리게 해보겠다.”
탁발을 마친 후 돌아오시는 길에 숲 속 연못을 지나치던 부처님은 연못으로 내려가도록 마련된 돌계단에 서서 아난다에게 말했습니다.
“아난다여, 목욕할 때 입는 옷을 가지고 와 주겠는가. 제타 숲 연못에서 목욕하려 한다.”
아난다가 귀를 의심하며 말씀드렸습니다.
“보시다시피 이 연못은 물이 한 방울도 없습니다. 가뭄에 다 말라버려서 먼지만 일어나는 흙바닥입니다.”
부처님은 말했습니다.
“아난다여, 붓다의 힘은 크다. 연못에 물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목욕하려 한다. 그러니 그대는 어서 목욕 옷을 가져오너라.”
아난다가 목욕 옷을 가져다 드리자 부처님은 옷 한쪽 끝으로 몸 아랫부분을 감싸고 다른 한쪽 끝으로 몸 전체를 감싸고서 태연스럽게 말했습니다.
“자, 이제 제타 숲 연못에서 목욕을 해볼까?”
그리고 돌계단을 한 칸씩 밟으며 연못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순간 삼십삼천에 살고 있는 신들의 왕 제석천의 돌의자가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이런 현상은 지상에서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거나 부처님이 특별한 의지를 일으킬 때 나타나는 일이지요. 제석천은 뜨거운 돌의자에서 놀라 일어나 세상을 살펴보았습니다.
“또 무슨 일일까? 혹시 부처님께서 뭔가 원하시는 게 있는 것일까?”
과연, 그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지금 목욕을 하고 싶은데 제타 숲 연못에는 물이 한 방울도 담겨 있지 않은 것입니다. 제석천은 서둘러 비의 신에게 명하였지요.
“자아, 어서 비를 내려라. 코살라 국 전역에 아주 풍부하게 비를 쏟아 부어라. 세존께서 제타 숲 연못에서 목욕을 하시려고 계단 아래로 내려가셨으니 서둘러라.”
비의 신은 그 명을 받고서 구름을 끌어왔지요. 커다란 구름 더미 하나를 아래에 두고 또 하나의 구름 더미를 그 위에 덮었습니다. 비의 신은 큰 소리로 구름의 노래를 부르면서 동쪽 세계를 향해 날아갔습니다. 동쪽 하늘에서 낱알 정도의 구름 조각이 만들어지자 이윽고 십만 개의 구름 더미로 뭉쳐졌고, 우레가 치고 번개가 번쩍였습니다. 코살라 국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지요. 물이 가득 찬 물병을 기울여 물을 쏟아 붓 듯 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나라 곳곳에 말라버린 논밭에는 흥건하게 빗물이 채워졌고, 호수와 연못과 개천에도 시원하게 물이 담겨서 흘러내렸습니다. 물론 부처님이 목욕 옷을 입고 돌계단을 내려가신 제타 숲 연못에도 비는 쏟아졌고 이내 연못에 넘치도록 찰랑찰랑 담겼습니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아난다와 제자들은 두 눈으로 보고서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처님은 언제 이 연못이 가물었느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연못에 들어가서 시원하게 목욕을 하고 붉은 천 두 장을 허리에 둘러 흘러내리지 않도록 잘 여민 뒤 대의(大衣)를 한쪽 어깨에 걸치고 다시 승원으로 향하셨습니다.
승원에 도착하신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설법하신 뒤 향기로운 부처님 방(香室)으로 들어가셔서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사자처럼 가로누우셨습니다. 뜨거운 탁발 순례 뒤에 시원한 목욕을 한 끝이라 잠시 쉬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녁이 되자 수행승들이 모여 오늘 있었던 일을 화제에 올렸습니다.
“벗들이여, 오늘 일을 다들 보셨지요? ‘열 가지 힘을 갖추신 분(세존)’이 세세생생 얼마나 지극한 인내와 자비행을 실천하셨는지 하늘조차도 그에 감응해서 비를 내려주었습니다. 곡식이 타들어가고 온 나라의 늪과 못이 바짝 말라 물고기와 거북이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데 부처님은 굳이 연못에서 목욕을 하시겠다고 하셨지요? 사실 좀 엉뚱하다고까지 느꼈지만 아, 과연! 부처님은 달랐습니다. 가뭄에 죽어가는 생명들을 구제하려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신 것이지요. 굳이 대중을 향해 ‘너희를 위해서 비를 내려주겠노라’라며 언표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바짝 마른 연못으로 내려가시며 ‘목욕을 좀 해야겠구나’ 하셨지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큰 비가 내려 온 세상을 충분히 적셔서 대번에 가뭄의 고통을 씻어버렸지요. 어때요? 여러분도 다 목격하셨지요?”
제자들이 한참 이야기하고 있을 때 부처님이 그곳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잠시 듣고서 말씀하셨지요.
“비구들이여, 여래가 수많은 생명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에 비를 내리게 한 것은 지금의 일만은 아니다. 이전에도 동물로 태어나 물고기의 왕이었을 때 비를 내리게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제 부처님이 보리살타로 지낼 때 일어났던 과거 일을 말씀하시게 됩니다.
아주 옛날 인도의 코살라 국 수도 사밧티에 있는 제타 숲에는 연못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연못은 둘레에 덩굴풀이 우거져 있었고 물도 풍부해서 물고기들도 많이 살고 있었지요.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 시절 보리살타로서 그 연못에서 물고기로 태어나 무리를 거느리는 우두머리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온 세상이 물 한 방울 만나지 못해 고통을 받았습니다. 모든 곡식들이 말라 비틀어졌고 사람들도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지요. 연못과 호수의 물도 말라버렸습니다. 연못에 살고 있던 물고기들은 물기를 머금은 진흙 속으로 파고 들거나 풀숲으로 숨어 들어가서 간신히 버텼습니다.
그런데 진흙이나 풀숲으로 들어가서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물고기와 거북 등은 새들에게 그대로 노출되었고 새들은 긴 부리로 물고기를 집어내서 삼켜버렸습니다. 물고기 우두머리로 태어난 보리살타는 친족에게 일어난 재난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들을 구해줘야겠다. 이 힘든 시기에 그 누가 나서서 저들을 살릴 수 있을까. 내가 나서야한다.’
보리살타 물고기는 동료들의 횡액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행동으로 나섰습니다. 그는 흙덩이를 지느러미 두 개에 나눠 들고서 하늘을 우러렀습니다. 흑청색 빛깔의 몸에 새빨간 눈동자를 지닌 우두머리 물고기는 허공을 바라보며 신에게 호소했지요.
“신이여, 지금 이렇게 괴로워하는 내 마음을 보고 계십니까? 나는 이 세상에 도움이 되고자 태어난 보리살타입니다. 그런데 지금 내 동료들이 너무나 심한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한 방울의 물도 얻지 못하여 죽어가고 있는데 이런 우리를 새들은 긴 부리로 집어서 삼켜버리고 있습니다. 오직 덕을 쌓으려고 태어난 제가 이런 현실을 당하니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먹고 먹히는 곳이지만 나는 세세생생 서원한 이래로 나보다 더 작고 여린 생명을 죽인 적이 없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다른 생명을 잡아먹은 적도 없습니다. 하늘의 신이시여, 나의 이 말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내 말이 진실하다면 모쪼록 비를 내려주소서. 그리하여 내 친족과 동료들을 괴로움에서 구해주소서.”
물고기 우두머리인 보리살타의 간절한 기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그는 신을 향해 마치 자기가 거느리는 무리들에게 명령하듯이 당당하게 외쳤습니다.
“신이여, 우레를 울리시오. 물고기를 살려주시오. 물고기를 잡아먹고 있는 까마귀들을 근심하게 하시오. 나를 근심에서 구해주시오.”
보리살타의 위엄이 넘치는 기도는 하늘의 신에게 닿았습니다. 이내 그 나라 전체에 큰 비가 내린 것이지요. 바짝 말라 타들어가던 온 국토가 비를 맞고 숨을 돌렸으며 사람들도 동물들도 죽음 직전에서 살아났습니다.
부처님은 과거 이야기를 마친 뒤에 현재에 잇대어 말했습니다.
“그때 물고기 무리는 지금 나의 제자들이고, 기도에 감응한 신은 지금의 아난다이며, 물고기 왕은 실로 나였다.” (본생경 75번째 이야기)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우리는 기도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힘 너머 어떤 절대적인 능력에게 기도합니다. 기도를 하면 하늘이 감응한다고 하는데 기도를 대충하거나 ‘빌어서 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기나 할까?’하는 심정으로 기도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간절히 빌면 이뤄지지 않는 일이 없다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틀림없이 이뤄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에 임해야 합니다.
가뭄이 이어져서 온 세상이 타들어갈 때 지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바라는 것은 딱 하나, 그것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입니다. 위의 이야기를 보자면 부처님도 비를 내리게 하는 기도를 올린 셈입니다. 그런데 어떤 절대적 힘을 지닌 능력자에게 빌었다고 하기 보다는 당신이 전생에 하나씩 하나씩 쌓고 모아온 선업 공덕의 힘으로 하늘의 신을 움직인 셈입니다. 물고기 보리살타는 신에게 명령하듯이 말했고, 부처님은 그저 덤덤히 목욕하겠노라며 가문 연못으로 내려갔을 뿐입니다.
기도하면 이뤄집니다. 이런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단, 기도해서 감응을 보려면 평소에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좀 해두어야 한다는 걸 이 이야기에서 배워갑니다.
이미령 (경전 이야기꾼, 불교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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