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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심(下心)

  • 입력 2004.06.07
  • 수정 2024.11.22

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평등의 자리로 같이 들어가는

 

 

좌측부터 이승헌, 김보경, 최한얼, 김수호

 

 

불자 스님~저는 이제 1학년이라 평소에는 대학입시에 대한 부담이 없다가, 선배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불안하고 걱정이 됩니다. 어떻게 마음을 가지면 편할까요?

 

진성스님 고등학생이 되고 보니 역시 대학진학이 가장 큰 고민인가 보구나. 1학년인데 너무 공부! 공부!! 하는 것도 그렇지만, 학생이라하면 배우면서 다시 태어나고 인간으로 성숙되어가는 사람이라는 걸꺼야. 배워야할 할 시기에 때를 놓치면 자신의 삶을 바로 세워 나갈 수 없어. 봄날 씨를 뿌리지 않고 가을에 수확을 할 수 없는거잖아? 더군다나 주변에서 힘껏 도와주실때에 조차도 열심히 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때를 기다려서 할수 있겠니. 젊을때 머리를 믿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보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귀하게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 분이 많아. 고1때부터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한다면 뒤늦게 후회하며 불안해 하고 조급해하지 않을꺼야. 다들 잘 하겠는데?(일동웃음)

 

 

불자 항상 자기자신을 낮추어야한다고 생각은 하는데요, 막상 사람들 만나거나 어떤 상황에부딪히면, 잘났다고 나서게 되어요. 어떻게 하면 자기를 낮추며 살 수 있는가요?

 

진성스님 우선, 남들 앞에서 내가 잘났다고 자신을 내세우면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까? 싫어할까? 싫어해요!!(일동대답) 그런거야. 그래서 나를 높이는 건 오히려 적을 만드는 행위일꺼야. 나의 생각 나의 말 행동은 항상 부족해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면 오히려 주변사람들이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로 가득할 꺼야. 그리고 자신을 낮추며 살고 싶다 했는데 부처님의 탄생계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게 있어. 하늘위 하늘아래 홀로 존귀하다라는 뜻이지. 그것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무한한 가치를 지닌 절대 평등을 선언하신거야. 저마다 그 무엇으로도 비교되어 질 수 없는 절대가치의 평등성을 깨닫고 서로 함께 한다면 그릇된 나의 아만은 낮추어지고 강한상대에게서 굴복하는 그런 마음에서 자유로와 지지. 그것이 하심이고 상대에 대한 공경심인거야. 나를 낮추는것에 관심을 갖기보단 모두가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고 그것을 누려야 할 귀한 존재라는것을 깨달아 가자. 그것을 아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운동도 겸해서 절을 많이하는 방법도 좋겠지. 몸과 정신이 건강하려면 공부도 그렇겠지만 절도 잘하는 방법이 있거든. 우리 함께 해보자.

 

 

불자 스님~불교에서는 계를 지켜야한다고 하잖아요, 특히, 살생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요, 요즘 이라크파병문제도 있고, 만약 전쟁이라든지 나라가 위기에 처하게된다면 그 때도 계를 지키기 위해 가만히 있어야하나요?

 

진성스님 불교에는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이 있으니까, 무조건 살생은 하지 말아야지. 그런데, 군대가면 어떨까? 적이 나타나서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위기라면? 자, 불교에 호국불교라는 말이 있잖아. 나라가 어려울 때 승병들이 나서서 나라를 수호했었는데 이는 불교의 불살생계에 어긋난거잖아.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불자 불자로서 계를 지키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당신이 죽겠냐? 내가 죽을까?’ 라고 물었을 때. 자기가 죽겠다는 사람 없잖아요? 내가 살아야 한다면 전쟁은 남을 죽일 수 밖에 없는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불자 저라면 남을 죽일거라면 차라리 제가 죽겠어요. 불교공부를 하기 이전에는 죽으면 어떻게 되나하고 많이 두려웠었는데, 스님들께 법문을 들으면서 죽음이 끝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흐름임을 알게 되게 되니 죽음이 그다지 두렵지 않게 되었어요.

불자 양쪽 모두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불자 모두 불교공부를 해서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아요! 불교의 평등을 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진성스님 그래, 그렇다면 폭력이나 살생같은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만약 우리가 자신을 망가트리는 정말 못난 행동을 할때 우리를 사랑하는 부모님은 어떤 모습일까? 그저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그냥 놓아두고 오히려 칭찬을 한다면 그 부모님은 잘 하시는 걸까? 아마 자식이 맞으면서 느끼는 아픔으로는 도저히 비교되어질 수 없는 아픔을 감수하면서 회초리를 들 수 밖에 없겠지. 의사가 환자의 썩은 환부를 칼로 드러내듯, 정원사가 나무에 가위질을 헤대는것도 사랑이 가득한 지혜로운 이가 하는 행위일꺼야. 지혜로운 이의 참 사랑은 그 고통조차도 초월해서 기쁨의 자리에 계신 부모님, 부처님의 마음이시지. 이 자리에서야 만이 부모님이 회초리를 들고 의사가 칼을 들고 전쟁터에서 살생을 해도 오히려 그들을 참으로 살려내는 원력이 담긴 자비로운 삶이 있단다. 모든 의도된 행위는 업으로 인해 고통이 따르는데 우리는 그 고통을 가져다 주는 원인조차 모르고 피하기 급급하지만 부모님과 부처님의 크신 사랑은 오히려 그 고통조차도 감내하며 우리가 참 생명으로 거듭나는것을 기뻐하신단다. 그것이 부모님과 부처님의 큰 사랑지. 우리도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에게 자비가 가득한 마음을 갖도록 하자. 그렇다면 폭력이니살생이니 연연하지 않아도 될꺼야.

 

 

일동 스님.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말씀을 듣다보니 모르는 것도 알게되었고, 자신에 대해서도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아요. 이런 자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고, 즐거웠습니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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