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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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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선원대중공양

  • 입력 2007.02.09
  • 수정 2024.11.19

불기 2551년 2월 7일(수) 오전 6시 30분 조계사 신도들은 재무국장 원경스님의 인솔하에 법주사로 선원대중공양을 떠났다. 선원대중공양은 결제철에 즈음하여 수행에 정진하시는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는 행사다. 이번에 선원대중공양을 위해 찾아가는 속리산 법주사는 신라 제 24대 진흥왕14년(553)에 의신조사가 창건한 절로 전해진다. 

 

법주사를 향해 떠난 버스는 아침 안개가 너무 짙어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4시간여가 걸려 11시 경에 법주사에 도착하게 되었다.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이란 편액이 걸린 일주문을 지나 한참 걸어가니, 법주사 좌측으로부터 하늘을 향해 우뚝 웅장한 자태로 서 있는 100척에 달하는 통일호국 금동미륵대불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금동미륵대불은 신라 혜공왕12년(776) 진표율사가 처음 조성하였다고 하나, 조선조 대원군때 경복궁축조를 명분으로 불상이 몰수되고 오늘날 대하는 금동미륵대불은 1964년 시멘트로 처음 제작되었다가 1990년 청동으로 다시 제작되고 2002년 최근에 다시 개금불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법주사가 창건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동국여지승람 및 조선불교통사 등에 그 일화가 나오는데, 처음 의신조사가 널리 불법을 구하고자 천축(인도)을 갔다 돌아와서 흰 노새에 불경을 싣고 절 지을 터를 찾아다녔는데 지금의 법주사 터에 이르자 나귀가 더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를 맴돌며 울부짖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기이한 생각이 든 의신조사가 주변을 살펴보니 수려한 산세가 가히 절을 지을 만한 곳이라 판단하여 절을 짓고 ‘부처님의 법이 머문다’하여 법주사라 했다고 한다. 또 법주사가 위치한 속리산은 훗날 덕높은 진표율사와 그 제자 영심대덕 등이 법주사에 머물러 계법을 설한다는 소문이 전국에 퍼지니 그 당시 세속을 떠나 입산출가한 이가 3천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세속을 여의고 출가해서 수행했다고 하여, 후세 사람들은 그전까지 이지산(離持山)으로 불리우던 산 이름을 속세를 여의었다는 뜻으로 속리산(俗離山)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법주사가 1000년을 넘은 절이다보니, 대하는 곳곳의 건물과 유물, 그림 등이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법주사 팔상전은 우리나라에서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목조탑으로서 국보 제 55로 지정되어 있고, 두 마리의 사자가 마주보며 석등을 받치고 있는 쌍사자 석등은 국보 제 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화강암으로 조각된 석연지는 국보 제 64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외 법주사가 소장하고 있는 보물은 법주사 대웅전을 비롯하여 10점에 달한다.  

 

 

법주사 대웅보전은 앞면 7칸 옆면 4칸 높이 약 19m에 달하는 2층의 팔작지붕건물이다. 겉으로 보기엔 2층 건물이나 안으로 들어가 보면 1층과 2층이 하나로 탁 트인 통층구조로 되어 있다. 이 대웅보전안에는 보물 제1360호로 지정되어 있는 법주사소조삼불좌상이 모셔있는데 중앙에는 법신인 비로자나불, 왼편으로는 보신인 노사나불, 오른쪽으로 화신이 석가모니 부처가 모셔져 있다. 국내소조불좌상으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한다.

 

 

법주사가 얼마나 큰 절이었던가는 현재 남아 있는 법주사의 철확이 웅변으로 말해준다. 신라 성덕왕(720-736)때 조성된 것으로 전해지는 철확은 보물 제1423호로서 높이가 1.2.m 둘레가 10.8m에 달하는 거대한 철재 솥이다. 법주사가 한창 번성하여 3.000 승도가 운집하여 있을 때 장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전해지고 있는 솥 중 가장 큰 솥이라고 한다.

 

 

 

조계사 신도들은 법주사에서 선원대중공양을 마치고 오후 1시경 법주사를 떠나 서울로 오는 도중, 중간에 서광사를 들렀다. 그곳 주지스님으로부터 참을 인(忍)으로 이번 생을 보내고, 다음 생은 어질 인(仁)을 닦는 생을 보내어, 그 다음 생은 복덕(福德)이 가득한 생을 맞이하라는 법문과 함께 다과를 제공받았다.

 

아침에 자욱했던 안개는 이미 걷히고 계절이 아직 겨울임에도 이미 봄이 온 듯 따뜻해진 날씨에 모두들 걸친 웃옷을 풀어헤치고 버스에 올라 서울로 향했다. 서울로 오는 도중 버스 안에서 조계사 신도들은 사홍서원을 모두 함께 념하며, 오늘 선원대중공양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몸은 비록 번잡한 서울거리에 다시 묻히지만 마음만은 구도를 위해 정진중인 스님들과 언제나 함께 하여 번뇌를 끊고 위없는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라라고 념하며, 오늘의 선원대중공양행사를 모두 마쳤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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