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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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과 광장
최인훈은 1959년에 등단하여 장편소설 ‘광장’을 시작으로 관념적인 부분이나 인간의 문제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광장에선 대조적인 상징물이 나오는데, 바로 ‘밀실’과 ‘광장’이다.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가장 잘 담겨 있는 관념적인 상징물이다. 주인공 이명준에게 있어서 밀실은 ‘개인의 밀실’을 의미한다. 이데올로기에 관심 없이 자신만의 기준으로 삶을 살아가던 시절 또한 밀실에 있던 시절이다. 이명준이 월북하고 아버지의 도움으로 기자 일을 하면서부터 ‘광장’으로 나온 셈이다. 타인과의 협력 없이 개인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이 밀실이라면, 광장은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함께 협동하며 이익을 똑같이 나눈다. 신분과 대우 또한 평등하다. 밀실은 ‘개인주의’를, 광장은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것이다.
물론 몹시 상징적인 비유지만, 밀실에 있던 이명준이 광장으로 나온 순간만큼 수치스러운 순간은 없었을 것 같다. 아무도 없는 밀실에 홀로 있다가 낯선 이가 가득한 광장에 나와 함께 일하고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대단한 고역인 것 같다. 이명준은 남(南)에 있을 당시, 홀로 외로이 밀실 안에 갇혀 산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밀실이라는 자신의 마음속 존재의 진상을 깨우치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그 밀실에 사랑하는 연인 은혜를 들여보내고 취조실에서 고문을 받고 나서야, 밀실이라는 외롭고도 사색적인 공간에 대해 깨닫는다.
만일 내가 이명준이더라도 밀실이 아닌 광장을 택했을까. 낯선 이들이 너도나도 모여 있는 광장. 나와 전혀 마주치지 않을 사람도, 나와 닮은 사람도, 나와 아주 먼 곳에 있는 사람도 결국 광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나와 평등하게 서로 보란 듯이 일한다. 하지만 광장에도 지배층은 있었다. 전혀 밀실이 없는 광장을 보며 이명준은 후회한다.
이 작품은 일곱 번이나 개작이 되었다고 한다. 시대를 비추는 소설인 만큼 여러 번 개작되면서도 잣대가 바뀌지는 않았다. 퇴고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서 기본적인 습관이지만, 이미 발표된 소설을 개작하여 일곱 번이나 다시 발표하는 것은 대단하다. 현대문학은 대부분 그 시대에서만 인정받았기 때문에 ‘고전’과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고 선생님에게 들은 적이 있다. 최인훈의 소설 또한 그 당시 시대적 배경이 드러나는 소설로, 오늘날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하지만 여러 번 개작을 한 점을 봐서, 결국 오래 사랑받고 아주 먼 훗날에는 고전으로 자리를 잡을 것 같다.
관념적이고 사색적인 이 소설은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다뤘다. 특히 ‘밀실’이라는 비유로 인간의 마음을 표현한 점, 시대적 배경이 반영된 밀실과 광장이라는 대조적 명사를 쓴 점이 대단하다. 마지막에 이명준이 자살하는 장면은 매우 극적이다.
아쉬운 것은 이명준의 삶이 매우 극단적인 것을 보아 당시 전후문학의 특징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시집들은 제법 전후문학의 특징을 벗어나는 것 같은데, 소설은 아직 인물이나 주제가 전쟁에 지나치게 얽매여있는 것 같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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