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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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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행사

조계종조 도의국사 다례재 봉행

  • 입력 2013.06.10
  • 수정 2024.11.29

비추어 다하니 체에는 의지함이 없음이요 몸을 통하니 대도에 합함이로다

▲ 조계종조 도의국사 다례재

 

대한불교조계종은 불기 2557년 6월 10일(월) 오후 2시 조계종의 원류인 가지산문을 개창했던 조계종조(曹溪宗祖) 도의국사(道義國師) 열반 1,192주기를 맞이하여 조계사 대웅전에서 다례재를 봉행했다.

 

다례재는 삼귀의와 한글반야심경 봉송, 종회의장 향적 스님의 행장소개, 총무원장스님의 추모사, 종정예하 법어, 호계원장 일면 스님의 헌향, 교육원장 현응 스님과 포교원장 지원 스님의 헌다, 조계종 어산어장 동주 스님의 종사영반, 헌화 순으로 진행되었다.

 

종정예하 진제 스님은 원로위원 송암 혜승 스님이 대독한 법어를 통해 “이 땅에 불조의 가풍이 꽃을 피워 그 향기가 만년토록 진동함은 국사의 원력이 무시무종(無始無終) 가득 사무침이요. 고금에 선풍이 널리 흥성함은 국사의 은혜가 사해오호에 가득함이로다.”라며 찬탄하였으며, “국사의 은덕으로 지금의 조계의 가풍이 만천하에 두루하게 됨이니 집집마다 문 앞은 장안으로 통함이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추모사에서 “국사께서 일찍이 구법의 길에 올라 교학을 두루 섭렵하고, 다시 육조의 선법을 이어 해동의 초조가 된, 마침내 이 땅에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큰 도를 열어 주셨고, 몸소 비움과 나눔을 통해 이 땅의 뭇 생명에게 조화와 상생이라는 보살행을 펼친 이래로, 이 땅의 백성들과 지혜와 자비를 나누는 실천을 계속해 오셨습니다. 도의국사의 이 같은 실천은 공존과 번영이라는 상생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우리 현실에 큰 가르침을 던져주고 있습니다.”라며 “모든 생명이 평화와 행복을 이루려면 우리의 생존이 모든 유정, 무정의 도움과 은혜 속에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인식할 때, 우리는 삿된 가치를 버리고 이웃을 위하는 비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아름다움 동행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조계종 원로의장 밀운 스님, 원로의원 혜승 스님과 총무원장 자승 스님, 종회의장 향적 스님, 호계원장 일면 스님, 교육원장 현응 스님, 포교원장 지원 스님, 조계사 주지 도문 스님, 총무부장 지현 스님을 비롯한 중앙종무기관 소임스님 등 100여 명의 스님들과 중앙신도회 이기흥 회장, 포교사단 임희웅 단장 등 300여 사부대중이 참석하였으며, 사홍서원을 끝으로 원만 회향했다.

 

▲ 조계종조 도의국사 다례재에 동참한 사부대중

 

▲ 조계종조 도의국사 다례재에 동참한 사부대중


조계종단은 종조인 도의국사를 기리는 한편 국사의 수행정신을 잇기 위해 지난 2004년 이후 해마다 음력 5월 2일에 다례재를 봉행하고 있다.

 

* 종조 도의조사 행장 

 

종조 도의국사는 통일신라시대 스님으로 휘(諱)는 명적(明寂) 또는 원적(元寂)이고 호는 도의이며 속성은 왕(王)씨이다.

 

어느 날 부친이 흰 무지개(백홍白虹)가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고 모친 또한 어떤 스님과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태몽을 꾼 후 임신하여 39개월 만에 북한군(北漢郡;현재 서울)에서 탄생하였다.

 

건중 5년(784)에 사신인 한찬(韓粲) 김양공(金讓恭)을 따라 당나라로 들어가 구법하였다. 곧바로 산서성 오대산으로 나아가 중대(中臺)에서 문수보살의 상서가 나타남을 감득하고 광동성 광주 보단사(현재 대범사) 계단에서 비구계를 품수하였다.

 

소주 조계산 보림사로 나아가 육조 혜능대사의 영당에 참배하고, 홍주 개원사(현재 남창 우민사)로 가서 서당지장 선사를 친견하고 그로부터 달마선법을 전해 듣고는 활연대오 하였다.

 

지장대사가 찬양하여 “나의 법통을 전수받을 자는 그대가 아니고 또 누가 있겠는가?”라고하며 전법게와 함께 도의라는 법호를 전하였다.

 

그 후 제방으로 행각하다가 강서 백장산 회해선사를 친견하고 문답하니, 백장회해(百丈懷海)선사가 “강서선맥이 송두리째 동국승에게로 귀속되었다.”고 찬탄하였다.

 

당나라에서 37년간 머물며 수행하다가 821년(신라 헌덕왕 13)에 귀국하여 조계선법(曹溪禪法)을 펼치려 하였으나 시절인연이 도래하지 않았음을 탄식하였다. 진전사에서 40년간 주석하다가 제자인 억성염거(億聖廉居)에게 전법하고 입적하였다.

 

국사의 선법은 억성염거선사를 거쳐 보조체징(普照體澄)선사에게 전해져 마침내 시흥하였다. 체징은 장흥군 가지산에 보림사를 창건하고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최초로 가지산문(迦智山門) 일파를 형성하였으며, 선풍(禪風)을 널리 진작하여 오늘 대한불교조계종의 시원(始原)이 되었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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