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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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톤의 강철로 빚은 장엄의 미학
일주문 앞 조계사 사천왕
▲ 조계사 사천왕상 조성 작업
“아이고, 깜짝이야! 꿈에 나올까 무서워라!”
전통적인 목조건물과 우아한 아름다움, 도심에서 찾아보기 힘든 너른 흙 마당 나무, 각종 석조 탑이 운치를 더해주는 사찰이 대중들에게 낯선 두려움을 주는 이유는 바로 염라대왕의 아바타 같은 모습을 한 네 명의 사천왕 때문이다. 불상의 자비로운 얼굴은 찾을 길이 없이 튀어 나올 것 같은 큰 눈을 부라리고 위협하듯 커다란 몸집에 칼이며 창을 들고 있는 거대한 수염 할아버지들. 그리고 그들의 발밑에서 인정사정없이 짓밟히고 있는 고통스러운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찰의 고즈넉한 아름다움 보다는 공포로 다가온다.
철로 만든 조계사의 사천왕,
익숙한 공포의 대상이 새로운 감탄의 대상으로 재탄생하다
어렸을 적부터 동네 놀이터 다니듯 절을 들락날락했던 나에게도 사천왕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물론 어른이 된 후 그런 마음이 옅어졌지만 절의 ‘첫 인상’을 결정짓는 사천왕이 조계사에 나투신다고 하여 호기심과 기대를 감출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계사는 항상 새롭고 파격적인 불사를 진행해온 곳이 아닌가. 관음전 불사 때도 고운 반가 자태의 관세음보살과 손바닥 모양의 인등, 그리고 외벽에 모신 양류관세음보살은 불상이 법당 안에 봉안된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예술작품을 대하듯 감상의 대상으로 신심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누구보다 현대적인 젊은 작가들과의 조우를 통해 세련된 감각과 살아있는 디자인을 부처님 안에 녹여내 날마다 새로운 아름다움이 더해지는 조계사에 사천왕 불사라니. 나는 내심 설레고 있었다. 그 설렘 반, 우려 반을 안고 찾아간 작업 현장에서 마침내 사천왕과 첫 대면을 한 순간의 전율감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철’로 만들어진 사천왕을 처음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요동을 쳤다.
“진정한 성공의 첫 걸음은 자신의 값어치를 알아주는 파트너를 만나는 것이다.”
‘환상의 짝꿍’, ‘찰떡궁합’ 이것이 바로 조계사의 사천왕이었다. 혹시라도 너무 낯설거나 어색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를 비웃듯 철이라는 소재가 가진 날카롭고 강한 섬세함은 사천왕과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고 있었다. 목조보다 더 섬세하고, 석조보다 더 강인하며, 단청의 부재를 까맣게 잊게 만드는 화려함. 이 모든 것들은 제각각 자신의 위치에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조화를 이루며 사천왕의 위엄과 강인함을 과장되지 않게 드러내주고 있었다.
1년 반 전, 도문 스님의 연락을 받은 이근세 작가는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부담감’은 전혀 사라지지 않고 조계사가 가지고 있는 색채와 철이라는 소재가 지닌 이질감과의 ‘조화’가 아직도 자신을 누르고 있다고 했다. 그의 첫 사천왕 작품은 2007년도의 불교중앙박물관 건립이였다. 가람배치를 풀어낸 구조위에서의 첫 종교 작업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 작가는 “불자들이 제가 만든 작품 앞에서 절을 하는 모습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던 터에 조계사의 대문을 장엄하는 사천왕 작업에 대한 의뢰는 할 수 있는 한 피하고만 싶었습니다.”라며 당시의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 조계사 사천왕상을 만들고 있는 이근세 작가
하지만 그의 우려와는 반대로 이미 조계사 사천왕상은 철판이 지닌 선과 평면성을 넘어서 웅장한 에너지를 드러내며 장엄되고 있었다. 아마 이 작가는 또 한 번의 충격을 받지 않을까 싶다. 철판이 지닌 평면성을 입체로 표현하기 위해 구조를 이루며 지탱하는 6층의 철판과 모양을 잡아주는 20층의 철판을 겹쳐 약 26층의 탄탄한 구조를 형성하며 평면적인 소재의 입체적인 재해석을 진행하고 있었다.
▲ 조계사 사천왕상 디자인
조계사의 사천왕은 각각의 역할이 다른 100여장의 평면 철판을 한 겹 한 겹 포개어 정면에서 보았을 때 원근감이 살아있는 입체로 완성된다. 그 과정에서 강인한 성질의 철은 수천 수 만 번 다듬고 겹쳐지면서 섬세함이 입혀진다. 실로 환상적인 조화가 아닐 수 없다.
철은 순종적이고 즉각적이며 정직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무겁고 단단하지만 뜨거운 불과 만나면 부드럽게 녹아서 작가가 원하는 어떠한 모습으로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온순한 시간은 짧다. 작가는 철이 온순해져있는 짧은 시간 동안 재빨리 마무리를 해야만 원하는 모양이 만들어진다. 철은 그렇게 작가의 손과 뜻을 정직하게 온몸으로 보여준다. 온갖 못된 악귀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사천왕과 철은 그래서 더욱 잘 어울린다.
▲ 사천왕상에 쓰일 철판이 레이저로 재단되고 있다.
불을 만나야만 뜨거워지는 철의 차가운 금속성은 사천왕 특유의 서늘한 에너지를 200배 반영하며 아직 완성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실제로 이 작가는 사천왕 불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철’이라는 재료와의 팽팽한 기 대결에 정면승부를 하고자 철판 위에서 낮잠을 자다가 기겁을 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사천왕을 지탱하는 첫 철판을 세운 후부터, 사천왕의 어떤 조각이 더해지지 않았을 때에도, 한 장 한 장의 철판에서 뿜어내는 강력한 기운에 눌려 한여름에도 더위를 모르고 지나갔다는 이 작가의 말이 농담이 아님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사천왕이 만들어지는 작업 공간 안에서의 공기는 독특했다.
인간을 보호하고 신들을 수호하는, 수미산 중간계의 F4 사천왕의 진짜 매력
수미산 중턱의 가장 넓은 독립 천을 가지고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고 인간계를 두루 살피는 네 명의 호법 신장, 그들이 바로 사천왕이다. 고대인도 힌두교의 방위신이었던 사천왕은 인간을 보호하고 신들을 수호하는 존재로 천상과 지상 사이를 누비는 중간계의 꽃미남 F4라고 할 수 있다.
사천왕은 부처님의 가장 가까우면서도 낮은 곳에서 곁을 지키며 부처님을 보필하기도 하였다. 석가보살이 싯다르타 태자로 내려올 때 마야부인의 보디가드로,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치며 탄생하는 순간에도, 오랜 고민 끝에 출가를 결심하고 왕궁을 탈출할 때에도, 그리고 마왕이 부처님의 해탈을 방해하며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괴롭혔을 때에도 사천왕은 마군을 물리쳐 마왕을 굴복시키는 역할을 했다. 사천왕은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나고 출가해 열반에 이르기까지 항상 부처님을 지키고 보호하는 수호신이었다.
인간과 귀신 그리고 팔부신장들에게는 두려운 존재이지만 신들 중에서는 가장 지위가 낮은 사천왕은 최소한 일곱 번을 욕계에서 수행해야 그 다음 단계의 천상에서 태어날 수 있는 업보를 지닌 불법의 수행자이다. 번민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이들은 비록 하늘 중턱에서 살고 있지만 자칫 방만하면 악도에 떨어질 수 있다. 내 마음의 아수라를 없애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 번 극락정토와 지옥을 오고가는 우리네 마음은 사천왕과 똑같이 너무나 닮아 있는 것이 아닐까. 순수한 어린아이들은 사천왕을 그저 무섭다 느끼지만 어른이 되어가면서 그 무섭고 공포스러운 얼굴의 사천왕에게서 묘한 친근감을 느끼는 것은 비록 하늘에 살지만 피곤한 업무에 시달리며 윤회의 업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동질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조계사 사천왕을 일주문 앞에서 만나 볼 수 있는 11월이 기다려진다.
나를 끌어 절문으로 발을 들이자 이곳저곳 보느라 현기증 날 판
거대한 신령이 우뚝 서 있어 팔다리 느닷없이 벌벌 떨리네
벌린 입은 눈까지 찢어져 있고 불거진 눈알엔 황금 칠했네
귓속에서 뽑아낸 두 마리 뱀은 꿈틀꿈틀 안개를 뿜는 듯하네
한가히 비파를 안기도 하고 쓸쓸히 칼자루를 쥐고 있는데
발로는 귀신 배를 힘껏 밟아서 그 귀신 눈과 혀가 모두 빠져 나왔네
-박지원 해인사(海印寺) 중에서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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